Write Bossanova,
마지막 상담이 끝났다 본문
마지막 상담을 마치고 기억 나는 대화의 조각들.
마지막 상담이어서일까. 선생님은 전에 없이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무엇보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음, 그래요? 저는 이게 꽤 괜찮고 마음에 드는데요,"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타인의 눈에, 심지어는 나의 눈에도 좀 부족해 보이는 결과물이더라도 내가 애써서 만들어낸 것이니까 좀 더 귀하게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그래야지. 내가 만든 것들을, 그게 무엇이든 지금보다 좀 더 인정해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사실 나는 타인의 비난이 두려워서 내 결과물 보여주기를 주저하는 면이 있었다. 그것들은 내가 되게 노력해서 만들어낸 거니까. 나 뭐든 좀 열심히 하거든. 선생님은 그래서 내가 어떤 피드백을 받았을 때 와, 이걸 처음부터 다시? 하는 생각이 들어서 상황에 갇힌 것 같고 더 나아질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아 생의 반대 편으로 도피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고 하셨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무언가를 내놨을 때 지지받은 경험보다는 부정당하거나 개선점을 돌려받은 경험이 많았다. 당연한 과정이고 더 나아질 발판으로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스스로도 다른 결과물들과 비교하며 아직 내놓을 만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 더 단련하는 시간을 갖는 쪽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도 같다. 선생님은 비난을 무작정 두려워만 하기 보다는 그걸 들었을 때 수용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먼저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 말들을 내 안에 두지 않는 연습도 해야 할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상대에게 내 노력의 과정을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도 덧붙이셨다. 그래야 더 정확하고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을 양분 삼아 다음에 더 좋은 결과물을 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거 정말 어렵다. 내 경험과 이야기가 저 사람의 시간을 쓰면서까지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서 내 이야기는 대부분 건너 뛰는 편이다. 심지어 친구들이랑 얘기를 할 때도 내 얘기는 재미가 없을 텐데, 이런 얘기로 저 애의 귀한 시간을 뺏으면 안 되는데, 싶어서 마음이 급해 자주 횡설수설한다. 그런데 내 발전에 필요하다니 노력은 해봐야지 싶고, ...
무엇보다 상담을 하면서 내가 내 얘길 이렇게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이렇게 할 얘기가 많을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좀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고. 상담의 말미에 선생님이 '이런 이런 부분들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하는 것들은 과제처럼 생각해가기도 했다. 적지 않은 비용을 쓰면서도 상담의 효과에 대해서는 좀 긴가민가했는데 6월쯤부터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 선생님이 원인과 결과로 추측되는 과정을 얘기해주셔서 오, 그런 것 같아요, 했는데 상담실을 나오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까비. 뭔가 그동안 상담을 하면서 '저 이런 시도들을 해봤어요,' 했던 것들, 그러니까 어쩌다 마주한 환경의 변화나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노력한 것들이 쌓여서 오늘의 상태에 다다를 수 있었을 거라는 식의 얘기였던 것 같기도 하고.
한 명의 슈퍼 컬렉터가 대량으로 수집하지 않은 작품들의 아카이빙과 헤리티지는 어떤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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