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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 Bossanova,

워크숍으로 떠났지만 그림을 본 자유 시간의 기록만 남아 있는 도쿄 여행_03_ 도쿄 워크숍의 마지막 일정은 국립 서양 미술관 관람이었다. 마침 퐁피두 소장품을 기반으로 한 큐비즘 특별전이 진행 중이었다. 프랑스까지 가지 않고도 그곳의 작품을 볼 수 있다니. 진짜 행운이다. 일잘러의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것 중 하나는 'why'다. 내가, 우리 팀이, 이 회사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왜' 이렇게 하는 것인지 스스로와 팀에 질문해야 한다고. 조금 거칠게 축약하면 이런 거다. "일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생명을 허투루 쓰지 않게 만드는 질문. 일은 삶의 아주 큰 부분이니까.그리고 이러한 이들은 착실히 쌓아올린 현재로 가장 먼저 미래의 토대를 만든다. 큐비즘도 그렇고, 기존의 주류나 사..

워크숍으로 떠났지만 그림을 본 자유 시간의 기록만 남아 있는 도쿄 여행_02_ 자유시간이 주어졌던 둘째 날에는 많이 보고 부지런히 멈춰 서고 자주 버스를 탔다.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는 뜻이다. 출판사에 다닐 때는 삶을 잘 가꾸고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욕심을 내는 이들을 타깃으로 한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를 주로 기획(해야)했다. 그들은 지금 일하는 곳의 타깃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진짜 버릴 경험 하나 없다. 커리어의 출발이자 내 직업인의 정체성을 잡지 에디터에 둔 덕에 일정 퀄리티의 콘텐츠를 빠른 속도로 쳐내는 훈련을 할 수 있었고, 이는 모든 업무에 유용하다. 또 그때 기획을 하느라 접했던 여러 분야의 정보들을 지금 하는 일에 적용해보고 있기도 하고. 가끔은 너무 설명이 많이 필요한 경로를 지나왔다는 생..

워크숍으로 떠났지만 그림을 본 자유 시간의 기록만 남아 있는 도쿄 여행_01_대만에서 돌아온 바로 그 다음날은 일본으로 워크숍을 갔다. 비행기가 2시간 이상 지연되어서 저녁이 다 되어서야 일본에 도착했고, 위워크 도쿄타워 지점의 빌려둔 회의실에서 얼기설기 워크숍 비슷한 흉내를 내고는 헤매다 찾아간 꼬치집에서 인원수를 말하니 ",... 이빠이데쓰"라는 말과 함께 퇴짜를 맞았던 날. 하는 수 없이 그 옆의 넓지만 사람이 없고, 꼬치집이지만 현지인이 하지 않는 애매한 곳에서 애매한 맛의 음식들을 먹었다. 워크숍을 간다면 좀 더 준비라는 게 필요하겠구나, 싶었지. 이날의 기록은 전혀 없고, 이 정도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_ 20231012

두 시간이면 통근 편도랑 비슷하잖아, 하고 가뿐하게 떠난 대만 여행_04-05_ 실질적인 여행 마지막 날의 첫 번째 일정은 약국에서 다래끼 약을 사는 것이었다. 몇 년 전의 동유럽 여행에서 다래끼가 난 이후로 종종 다래끼가 나서 째보기도 하고 먹는 약이나 눈에 넣는 물약을 써보기도 했는데 바르는 연고를 처방받은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반신반의했는데 증세가 금세 호전돼서 감탄했다. 할머니 약사님 채고시다. 약국을 나와서는 카페에 앉아 시집을 읽다가 앱으로 '[여행은 명상] 낯선 곳에서 커피 한잔' 테마의 짧은 명상을 했다. 여행은 일상에서 물리적, 마음적 거리를 두고 왜 그렇게 별일 아닌 것에 종종거렸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기에 여행지에서의 커피가 생각보다 맛이 있든 없..

두 시간이면 통근 편도랑 비슷하잖아, 하고 가뿐하게 떠난 대만 여행_03_ 대체로 대만의 수도에서 시간을 보냈으니까 이 국가가 보여주고 싶은 최상의 모습만 보다 돌아가는 거겠지. 그런 면에서는 어제 타이중에서 같은 테마의 전시를 본 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일이라는 영역에 국한된 것이지만 어느 일부라도 요즘의 세대가 생각하는 이 나라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쓱 볼 수 있었던 거니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는 도착한 첫날 편의점에서 비닐 장우산을 산 것이었다. 고양이 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런데 고양이들이 모두 정말 컸다. 허우통은 어쩌다 고양이들이 모여들어 고양이 마을이 된 걸까. 카페에 있던 고양이의 선명한 입 모양이 인상적이었다. 마스코트 고양이가 캐릭터로 그려진 코스터 뒷면에 방명록..

두 시간이면 통근 편도랑 비슷하잖아, 하고 가뿐하게 떠난 대만 여행_02_ 타이중에 가기 위해 플랫폼에 서서 어디가 우리 칸의 줄인지 웅성웅성했더니 앞의 여성분이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돌아서서 알려주고, 우리가 이동하고 나서는 제대로 서 있는지 확인하러 와주기까지 했다. 어쩜 이렇게 친절하지. 주일라서, 이동하는 중에는 김기석 목사님의 설교(시편 131장 1절-3절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를 들었다. 내게 필요했던 말씀이라 기록해둬야지._ 추석은 내 삶이 사랑의 빚임을 알아차리는 일종의 초대의 시간이다. 내 삶이 사랑의 빚이 아니라 요구할 것만 많다고 생각할 때 성정이 거칠어지고 다른 사람들과 담을 쌓게 된다. 요구할 것은 많고 세상이 내게 대우해주는 게 마땅치 않다고 느낄 때 우리는 화를 ..

두 시간이면 통근 편도랑 비슷하잖아, 하고 가뿐하게 떠난 대만 여행_01_ 대만의 첫인상은 거대한 식물원 온실이었다.(feat. 알 수 없는 규칙으로 작동하는 스프링쿨러가 돌아가는) 그리고 그곳에서의 첫 번째 일정은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 미술관에 가려고 버스 안의 승객에게 길을 물으니 남은 정류장 수를 알려주고 본인이 먼저 내리게 되자 기사님에게 우리를 부탁하셨다. 기사님은 잊지 않고 우리에게 내릴 정류장을 알려 주셨고. 대만 여행 초장부터 감동 너무 심했지 뭐야. 지난여름, 에드워드 양 감독님 회고전 소식을 접하고는 드디어 몇 년간 리스트에만 담아뒀던 영화들을 볼 때가 왔군,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밀림의 왕인 내게 그건 야무진 꿈이었고 결국 어떤 영화도 보지 못한 채로 전시장에 들어섰다...

요즘 내 문장에 찰기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도가 너무 낮네. 이후에는 소설을 좀 읽어야겠다. ktx에서 옆 사람이 청량마요 먹태깡 먹는 냄새가 너무 역해서 순간 멀미할 뻔했다. 배 말고는 멀미 안 하는 새럼인데! 환기 안 되는 공간에서 냄새 심한 거 못 먹게 했으면 좋겠다.무언가를 좋아하는 게 너무 피로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좋아하는 걸 더 오래 좋아하려면 이런 적폐들은 계속 까발려지고 바로 잡혀야지 그게 맞지 싶고. 피곤하네. 하2브 얘기 하는 거 맞다.ktx를 타고 있다가 생각했다. 나는 대체로 만나러 가는 사람이네, 하고. 지방에서 지내는 이들과 만날 땐 대부분 내가 움직인다. 서울에서 친구를 만날 때도 그렇지. 매일 일을 하기 위해서도 짧지 않은 거리를 움직인다. 매거진, 엔터..

연차를 내고 비행기를 타면서 회사 일정을 낑겨 보너스 연차를 종종 받아낸다. 이번에는 부산에 배달해야 하는 그림이 있는데 걔가 혼자 무언가를 타고 가는 것보다는 내게 반차를 더해주고 비행기 편도 값을 대주는 게 더 이득이라서, 잡아뒀던 부산행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다시 끊었다. 또 법카 찬스로 공항에서 그림 배달 장소까지 택시를 탔는데 마침 퇴근 시간이라 택시 기사님과 긴 얘기를 나눴다. 5시 정도였는데 길이 막히길래 "이 시간에 왜 길이 막히죠?" "어, 아무래도 퇴근 시간이라 그런 것 같은데요." "헙, 정말요? 5시인데 다들 이 시간에 퇴근을 한다고요? 허업- 짱이다!"에서부터 서로 대화가 트여서 기사님이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택시 기사를 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택시도 부업이..

어딜 가나 문제인 건 마찬가지라 이왕이면 멀리 떠난, 뜨거운 생활 in 제주_04_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늦잠을 자고 숙소의 체크아웃 시간을 꽉 채운 뒤에 M이 찾아둔 브런치 카페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여행 내내 우리는 나 있는 곳이 내 집이다,라는 한 교수님이 했던 말을 자주 주고받았다. 농담의 농도가 짙은 말이었지만 왜 하필 그 말이었을까. 겨우 이틀을 머물 숙소를 집, 이라고 부르면서도 왜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우리가 함께이지 않았어도 우리의 숙소가 아늑하고 따뜻했을까. 친구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닐 것 같다,고 생각했다.여행에서는 시간에 맞춰 해내야 하는 게 없는 것이 가장 좋았다. 데드라인은 나를 일하게 만들고 종종 효율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그동안 '데드라인'의 탈을 쓰고..

어딜 가나 문제인 건 마찬가지라 이왕이면 멀리 떠난, 뜨거운 생활 in 제주_03_ 자정에 새로운 뮤비가 공개됐고 내내 아, 덕후인 거 너무 힘들다! 덕후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하고 투덜거렸다. 아침에는 옆방의 소란함에 일찍 잠에서 깼고, 다시 잠들 수는 없었지만 침대에서 나오지는 않았다. 아침 이불 속 행복이라니. 바지런한 T는 나와 M이 이불 속에서 밍기적대는 동안 아침 수영을 다녀왔다. 내일도 T가 아침 수영을 가면 우리의 수영장 이용권을 알차게 쓸 수 있겠구나 싶어 괜히 좋았다.T가 돌아오고 지난 밤에 사둔 샌드위치를 아침으로 먹었다. 정해둔 일정은 2시에 있는 수풍석 뮤지엄이 전부여서 오전에는 뭘 할까 하다가 D가 근처에 있는 수목원을 추천한 게 생각났다. T와 M은 선뜻 수목원이란 선택지에 V..

어딜 가나 문제인 건 마찬가지라 이왕이면 멀리 떠난, 뜨거운 생활 in 제주_02 _ 아침에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문득 그동안 너무 많은 남의 인생을 생각하며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대부분은 질투를 하고 부러워하느라. 그리고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볕이 너무 강렬해서 어제에 이어 다시 한 번 티를 더 챙겨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정말 자칫하면 옷을 사야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너로 티에 니트가 아니라 티만 입는 걸 염두에 두고 짐을 챙겼어야 했다. 앱은 도착까지 2시간을 잡아줬는데 기사님이 엉덩이가 아프도록 달려준 덕분에 1시간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 로비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앉아 가져온 시집을 꺼냈다. 잠시 후 출장을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