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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식물원 온실 같았던 도시의 첫인상

KNACKHEE 2024. 6. 12. 23:04

두 시간이면 통근 편도랑 비슷하잖아, 하고 가뿐하게 떠난 대만 여행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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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첫인상은 거대한 식물원 온실이었다.(feat. 알 수 없는 규칙으로 작동하는 스프링쿨러가 돌아가는) 그리고 그곳에서의 첫 번째 일정은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 미술관에 가려고 버스 안의 승객에게 길을 물으니 남은 정류장 수를 알려주고 본인이 먼저 내리게 되자 기사님에게 우리를 부탁하셨다. 기사님은 잊지 않고 우리에게 내릴 정류장을 알려 주셨고. 대만 여행 초장부터 감동 너무 심했지 뭐야.

 

 

 

 

지난여름, 에드워드 양 감독님 회고전 <A One and A Two> 소식을 접하고는 드디어 몇 년간 리스트에만 담아뒀던 영화들을 볼 때가 왔군,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밀림의 왕인 내게 그건 야무진 꿈이었고 결국 어떤 영화도 보지 못한 채로 전시장에 들어섰다. 어흥.
전시를 보면서는 내가 이 감독님의 팬이 아닌 게 내내 송구했다. 그 정도로 감독님의 팬도, 특정 영화의 팬도 모두 만족할 만한 구성의 전시였다고 생각한다. 작품 속 공간과 무드, 오브제의 구현은 기본이고 감독님의 친필 시나리오, 그에게 영감을 준 LP 컬렉션, 촬영 현장 스틸, 의상 디테일, 스토리보드, 촬영 스케줄 등의 자료도 살펴볼 수 있었다. 덕후에게 찐비하인드의 무언가를 준다? 진짜 텍 마 머니, 텍 마 타임, 텤 마 핥! 아닌지.
심지어 이 전시는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아카이브 자료를 토대로 3년간 그의 세계관과 사유를 연구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해당 분야와 인물에 대한 전문가 덕후가 기획한 전시인 셈. 그리고 이 연구가 가능했던 건 감독님의 아내인 Kaili Peng이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 자료를 Taiwan Film and Audiovisual Institute에 기증한 덕분이라고. 진짜 이분도 김향안 님이나 조세핀 호퍼처럼 거의 매니지먼트의 역할을 해낸 게 아닌가, 싶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영화가 시대를 기록한 사료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지각했다. 게다가 에드워드 양 감독님처럼 사회를 면밀히 관찰하고 이를 자신만의 언어로 꾸준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분의 창작물이라면 더더욱. 노년에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등 새로운 것을 수용하고 활용하는 데에 거부감도, 무리도 없었던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나도. 나도 머무르지 않는 사람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맞이할 테다.
아, 대만의 미술관에서도 배우의 오디오 도슨트가 진행되고 있어서 어디서나 셀럽 마케팅이 짱이네, 싶기도 했다. 전시는 연대기순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청소년기를 대표하는 수식이 SOMEWHAT AMBITIOUS였던 것도 좋았다. 사랑과 희망이 원천인 야망가들 너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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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