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더위와 웨이팅의 균형을 맞춰준 달다구리와 잦은 친절 본문
두 시간이면 통근 편도랑 비슷하잖아, 하고 가뿐하게 떠난 대만 여행_02
_
타이중에 가기 위해 플랫폼에 서서 어디가 우리 칸의 줄인지 웅성웅성했더니 앞의 여성분이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돌아서서 알려주고, 우리가 이동하고 나서는 제대로 서 있는지 확인하러 와주기까지 했다. 어쩜 이렇게 친절하지. 주일라서, 이동하는 중에는 김기석 목사님의 설교(시편 131장 1절-3절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를 들었다. 내게 필요했던 말씀이라 기록해둬야지.
_
추석은 내 삶이 사랑의 빚임을 알아차리는 일종의 초대의 시간이다. 내 삶이 사랑의 빚이 아니라 요구할 것만 많다고 생각할 때 성정이 거칠어지고 다른 사람들과 담을 쌓게 된다. 요구할 것은 많고 세상이 내게 대우해주는 게 마땅치 않다고 느낄 때 우리는 화를 내기도 하고 명랑함을 잃는다. 무심하게 살며 시간 속에 헐떡이다 보면 내가 인생에 어떤 때를 살고 있는지, 어떤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지 잃은 채 살게 된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자기를 성찰하는 내면의 능력이 있어야 하고 내 삶을 하나님의 현존 앞에 갖다 놓고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시기를 소망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주님 앞에 나갈 때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할까.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하나님 앞에 간다는 건 이 땅에 공의를 실천하는 것, 인자함을 내면화하고 살아가는 것,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것. 그 삶의 내용은 경외심을 품고 사는 것. 내 삶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것.
세상에는 무신론자들이 있다. 과학적 실증주의자들은 이론적으로 신이 없다고 하고 누군가는 경험적으로 신이 있다면 이럴 수 없다며 무신론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무신론은 그리 위험하지 않다. 제일 위험한 무신론자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지만 삶을 통해 하나님을 부정하는 실천적 무신론자들이다. 신앙에는 이것이 더 위험하다. 하나님 앞에 산다는 건 내 삶에 경외심을 갖는 것이다.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모세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주님은 모세에게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요구하셨다. 신은 인생을 사는 동안 내가 만든 나라고 하는 정체성이다. 내 생각, 가치관, 세계관, 지향 등.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이것을 벗어야 한다. 자기의 옳음, 판단, 이념 등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현존 앞에 진실하게 설 수 없다는 게 성경이 우리에게 일관되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교만함은 자기를 높이는 마음이다. 자화자찬,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포장해서 근사하게 보이는 것. 나의 의지와 이해가 머무는 자리가 내 마음이다. 내 의지와 나의 이해력이 남들 앞에 내세울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왕관을 쓴 채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어릴 때는 큰 꿈을 품지만 중년쯤 이르고 보면 현명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어렵고 드물다는 걸 알게 된다. 노인이 되어 겨우 알게 되는 것은 내가 참 부족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깨달음이다. 그러니 누구를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겠는가.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큰 꿈을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는. 내가 크게 되고 싶은 마음에는 영향력 있고 내 의지를 관철시키는, 숫자로 남들을 압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담겨 있다. 내 힘이 압도적이었으면 좋겠는 마음. 이걸 성공이라고 얘기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대개 함부로 말하고 머뭇거림이 없다. 타인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할 때가 많아 타인을 깎아내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 숫자도 그렇다. 기준이 마련되고 나면 거기에 미치려고 허덕이게 된다. 권력도 그렇다. 그런 삶이야말로 지옥으로의 탈주와 같다. 주님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힘 있는 사람들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겨야 한다고. 세상이 마련해 놓은 기준을 따라 살다 보면 승자와 패자가 갈리도록 되어 있다. 기준이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저마다에게 주어진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 내가 비록 가진 것은 저 사람보다 적지만 내가 향유하는 삶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느낄 수 있는 세상. 내가 가진 힘은 저 사람보다 적지만 내가 가진 능력으로 이 세상을 섬길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싶은.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은 남과 나를 구별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다. 불행의 근원은 자족할 수 있는 내면의 능력을 잃은 것에서 시작된다. 이걸 위해 애쓰는 동안 기쁨과 감사의 능력이 사라지고 사랑해야 할 가족과 이웃은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자 경쟁자가 된다. 자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불안의 유일한 해독제다. 내가 누리고 있는 내 삶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지 알아차려야 한다. 내 삶이 은총이라는 것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내가 사랑하고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놀라운가. 이것을 깨달을 때 감사의 마음이 찾아온다.
자족하라는 말을 오해하면 그냥 현실에 순응하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좋은 게 좋은 거지,로 들릴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불의와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주변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살 권리를 찾기 위해 대신 싸워줄 수 있어야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싸우면서도 거칠어지지 않고 자기 속이 유연해야 한다. 명랑함과 따뜻함이 있어야 한다. 싸움에 매몰돼 경이로움과 따뜻함을 잃어선 안 된다. 싸우다 보면 세상에 가득 차 있는 하나님의 숨결을 인식하는 예민함을 잃기 쉽다. 이것이 우리가 잃어버릴 수 있는 가장 큰 손해다. 내 영혼이 둔감해지는 것. 교만한 마음, 오만한 눈 버리고 큰 일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평안이 찾아온다. 욕망은 우리의 의지가 특정한 방향을 향해 내달리도록 만든다. 그렇기에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늘 숨이 가쁘다. 다른 이들을 돌아볼 여백이 없기에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의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가련한 인생이다. 불둑불둑 일어서는 우리의 거친 마음은 하나님 앞에 가져가야만 고요해진다.
2절에서의 마음은 1절의 마음과 다르다. 1절은 의지와 이해의 자리다. 2절의 마음은 인간이 지닌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하는 강한 욕망이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마음 내려놓으면 욕망이 나를 함부로 끌고 다니지 못하고 마음의 숨이 가지런해진다. 숨가쁜 질주를 멈출 때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런데 믿음이 내 영혼의 평온함을 누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내 삶의 경험,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나의 평온함, 이것을 주변에도 넘겨줘야 한다. 그것은 한지에 스며드는 먹물처럼 조용히 확산되는 방식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딱딱한 경계를 부들하고 느슨하게 만들어야 한다. 조용하지만 근원적인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내 삶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사람들이 내 삶을 카피하고 싶을 정도로 살아야 한다. 이게 진짜 선교다.
고요하고 평온한 사람이어야 다른 사람들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 삶이 무거운 건 자기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나의 지성, 감성, 의지가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인지 깨닫는 게 인생이다. 주님을 의지한다는 건 주님을 깊이 신뢰하고 나를 그분에게 맡기는 것이다. 물론, 믿는다고 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다만 어려운 일, 쓰라린 일이 다가와도 믿음의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 잠시 어렵고 쓰라리지만 주님의 사랑이 그 모든 시련들을 이기게 만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잠시 어둡지만 주님의 빛이 우리를 선한 길로 이끌 것을 믿는 것이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어렵다면 노여움, 격분, 불평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내 길을 맡겨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등불 삼아 걸어갈 때 우리는 마침내 의가 이루어진 세상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_
청수당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했다. 지도를 봐도 헷갈려서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분에게 방향을 물었더니 같이 있던 친구들을 모두 끌고 우리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셨다. 처음엔 그분들도 모르는 눈치여서 땡큐, 하고는 그냥 가려는데 우리를 붙잡더니 자신들의 폰으로 길을 찾아보고는 번역기를 돌려 데려다 줄 테니 따라오라고 했다. 그분들도 타이중에 사는 건 아니고 주말이라 놀러오신 거라고. 가는 길도 아닌데 일부러 데려다준 게 너무 감사해 Thank you for your big favor, 하고 문법에 맞는지도 모를 문장에 고마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건넸다. 헤어질 때는 손인사와 꾸벅 인사를 번갈아 했지 뭐야. 다음에 대만에 올 때는 이런 분들과 나눌 수 있는 작은 무언가를 좀 사와야겠다고 생각했다.
100% 폭우라는 예보와 달리 우리의 한여름같이 맑고 덥한 날씨였고, 나는 자주 캐리어 안에 두고 온 선글라스를 떠올려야만 했다. 마이 아이즈.
청수당은 버블티와 우육면이 아주 맛있었다. 유명한 맛집답게 웨이팅이 있었는데 서티 미닛,에 물러서지 않고 기다린 건 좋은 결정이었다. 15분 정도 기다리고 들어간 듯. 앞접시를 부탁드린 스태프분이 무척 친절하셨는데, 외국인이라고 우리를 자주 살펴주셔서 부탁하려고 할 때마다 눈이 바로 마주쳤다.
먹고는 걸어서 23분 거리의 미술관에 어떻게 갈까 고민하다가 너무 덥고 미술관에서도 많이 걸을 테니 우버를 타기로 결정했다. 5분 정도 걸렸나. 유치원 봉고 같은 크기의 우버가 와서 놀랐다. 나의 첫 우버 경험. 그런데 왜인지 5대만 달러를 할인해 주셨다.
국립 대만 미술관 1층에서 진행 중인 <ARE YOU WORKING NOW?>는 전시 타이틀에서부터 이미 마음을 사로잡힌 채로 관람을 시작했다. 일을 대상화하고 그것을 마주하는 태도에 대한 질문은 내 삶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니까.
전시에 참여한 13명의 아티스트들은 노동과 일에 대한 개념이 크게 달라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와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고 구축할 수 있을지 묻는다. 또한 '석탄 채굴에서 데이터 채굴로 / 자기 착취 / 퇴근'을 주요 테마로 다루며 일에 대한 개념과 시야를 개인에서 사회로 확장한다. 그중 더 알고 싶었던 작가와 작품은 다음과 같다.
• Simon Denny, <Metaverse Landscape 36: The Sandbox LAND (-100, 161) & (-135, -34)>(2023) (3-4)
사이먼 데니는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뉴질랜드 아티스트다. 테크/미디어 기업의 광고 홍보, 패키지 등에서 영감을 얻는 그는 조각, 설치, 비디오, 판화, 게임의 영역을 아우르는 작업을 한다. 'Metaverse Landscape' 시리즈는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과 희소성에 대한 담론을 모더니즘 추상화 및 식민지 회화의 역사와 연결한 작품이다.
• Your Bros. Filmmaking Group, <Dorm>(2023) (5-6)
유어 브라더스 그룹은 컨템퍼러리 아티스트 So Yo-hen과 건축가 Tien Zong-yuan, 역사학자 Liao Hsiu-hui로 구성된다. 이들은 현장 조사, 대화하며 책 읽기, 연기자들로 조직된 크리에이티브 워크숍, 공적 서사 훈련 등을 활용해 'workshop film'을 제작한다. <Dorm>은 대만에서 3교대로 일하는 베트남 이주 여성들의 실제 서사를 기반으로 한다.
• Tehching Hsieh, <One Year Performance 1980-1981>(1981) (7-8)
테칭 시에는 20세기의 주요 행위예술가로 평가받는 대만 아티스트다.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기꺼이 미국의 불법체류자로 지내기도 했다. 그는 지금껏 여섯 개의 퍼포먼스 작업을 했고 이것은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그는 일 년 동안 매 시간 타임카드를 찍고 자신을 촬영해 총 8760장의 사진으로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했다.
• Maurice Benayoun, <Value of Values Trading Dashboard>(2022) and <City Ads Values>(2022) (9-10)
모리스 베나윤은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알제리 아티스트다. 주로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작품을 기획하며 현재 집중하는 영역은 사회를 묘사하는 데이터다. <Value of Values Trading Dashboard>는 앞선 개인전에서 관람객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가치에 형태를 부여하고 이러한 진화를 평가한 결과물이며, <City Ads Values>는 공공 커뮤니케이션과 상업 광고를 통해 도시가 가치를 설계하고 규정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2층에서는 은퇴한 관장님의 전시를 크게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의 진지한 취미가 프로의 세계로 진입하는 데에는 권력과 명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3층의 소장품 하이라이트전도 재미있었다. 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대만 근현대 미술이 어떤 흐름으로 변모해왔는지 훑어볼 수 있었도 미술관의 지향 또한 가볍게 알 수 있었지. 물론 금새 까먹을 테니 돌아가서 공부할 필요가 있을 테다. Moon 시리즈로 시와 그림을 곁들인 작품이 정말 서정적이고 좋았다. 국문과 가닥 어디 안 가지.
잠깐 걸어서 연남동 같은 핫플 구역에 갔고 수많은 인파가 몰린 플리마켓 거리를 한바퀴 돌고 빠져나와 옆 블럭의 조용한 LIFE&PEOPLE 카페에서 안식을 찾았다. 사장님이 우리가 들어갈 때부터 안절부절 하시기에 왜인가 했더니 메뉴판에 영어 표기가 없어서였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사장님은 직접 메뉴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였고 모든 음료와 디저트를 정말이지 장인정신으로 제조하고 플레이팅해 주셨다. 그래서 한 테이블의 메뉴가 한꺼번에 트레이에 담겨 나오는 게 아니고 하나씩 코스 요리처럼 나오는 게 아닌가. 메뉴마다의 나오는 텀도 길었고. 그런데 카푸치노가 정말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나서 깊이 감동했다. 사장님이 디저트를 가져다주러 오셨을 때 이 커피 진짜 쏘 쏘 굿이고 어썸이라고 양손 엄지척과 함께 감동을 표현했다. 그리고 이렇게 일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부끄럼 없이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왜, 굳이, 그렇게까지의 생활.
또 버스를 타고 궁원안과,라는 오래된 안과 건물을 개조한 기념품숍 같은 곳에 갔다. 비싸고 패키지가 예뻤지. 패키지를 앨범, LP 커버처럼 만들고 공간 인테리어와 디피도 그런 식으로 한 게 인상적이었다. 그 건물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는데 너무 줄이 길어서 포기하고 조금 걷다 보니 그 건물에 있는 다른 지점이 있어 금방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엔 지점도 줄이 좀 있어서 그냥 지나쳐 G가 기념품을 사려는 디저트 가게에 갔다. 그러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줄이 확 줄어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 줄을 한번 서 봤지. 줄을 서 있는 동안 점원이 돌아다니며 먼저 아이패드로 주문을 받아서 넣은 뒤 번호가 적인 페이퍼를 줬고, 순서가 됐을 때 그걸 내밀고 계산한 후 다시 번호표를 받아 아이스크림을 제공받는 형식이었다. 계산해준 분이 우리를 기억했다가 부러 우리 순서를 자신이 불러주고 토핑을 고를 때도 천천히 살펴볼 수 있게 시간을 줬다. 진짜 자꾸 감동 너무 심하네. 감넘심. 다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는 레몬 케이크를 파는 가게에 들렀는데 중간에 들어오신 남자 점원분이 들어오자마자 뭘 도와줄까, 하고 물었는데 묻는 얼굴과 말투가 정말 친절했다. 대만 진짜 무슨일이지.
더위와 웨이팅에 지쳐 에너지가 바닥났다가 달다구리 연료를 넣고 잦은 친절에 에너지가 채워지기를 반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대만에서는 정말 잘 먹었다. 1일 1식에 1일 3디저트라니. 고체 치약을 챙겨갔는데 계속 먹느라 씹을 타이밍을 놓쳤지 뭐야. 대만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건 모두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다. 붐비는 곳에서도 사람들이 우악스럽지 않아서 한국에서처럼 마음이 날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왕이면 좀 더 겨울일 때. 아, 대만의 편의점에서는 어딜 가든 우육면 냄새 같은 게 났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식으로 특정되는 냄새가 있을지 궁금했다. 역시 마늘일까.
_
20231008
'TEMP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숨김 없이 다정하고 움츠러듦 없이 쾌활한 느낌의 나라 (0) | 2024.06.12 |
---|---|
차원이 다른 아기자기함을 지닌 곳 (0) | 2024.06.12 |
거대한 식물원 온실 같았던 도시의 첫인상 (0) | 2024.06.12 |
20240426-27_닿고 싶은 곳이 있으면 기꺼이 길을 나서는 사람 (0) | 2024.04.28 |
20221208-10_내년에는 서로 고비를 잘 넘기고 만나자, 우리 (0) | 2022.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