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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ERATURE

차원이 다른 아기자기함을 지닌 곳

KNACKHEE 2024. 6. 12. 23:14

두 시간이면 통근 편도랑 비슷하잖아, 하고 가뿐하게 떠난 대만 여행_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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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대만의 수도에서 시간을 보냈으니까 이 국가가 보여주고 싶은 최상의 모습만 보다 돌아가는 거겠지. 그런 면에서는 어제 타이중에서 <ARE YOU WORKING NOW?> 같은 테마의 전시를 본 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일이라는 영역에 국한된 것이지만 어느 일부라도 요즘의 세대가 생각하는 이 나라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쓱 볼 수 있었던 거니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는 도착한 첫날 편의점에서 비닐 장우산을 산 것이었다.

 

 

고양이 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런데 고양이들이 모두 정말 컸다. 허우통은 어쩌다 고양이들이 모여들어 고양이 마을이 된 걸까. 카페에 있던 고양이의 선명한 입 모양이 인상적이었다. 마스코트 고양이가 캐릭터로 그려진 코스터 뒷면에 방명록을 적어 카페 벽에 붙일 수 있어서 민윤기 전원우 임창균, 하고 나의 친애하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적었다. 그러고는 소원은 세계평화,를 덧붙였지. 이스라엘 전쟁 소식을 접하고는 행정병으로 근무 중인 사촌동생에게 괜찮은지 디엠을 보냈다. 괜찮다는 답변에 마음이 아주 조금 놓였지만 아프리카에서 귀국하자마자 징집돼 전선에 뛰어들게 될 다른 사촌이 걱정됐다.

 

 

비가 많이 와서 고양이 마을을 대충 둘러보고는 소품숍들이 즐비한 창의문화지구로 넘어갔다. 꼭 대림창고 같은 구성과 느낌이었고 이곳에서는 스스로에게 반팔 구매 미션을 부여했다. 첫날 입고 온 긴팔을 반팔로 갈아입는 바람에 들고 온 반팔이 모두 동났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가을인데, 하고 생각했던 게 큰 오산이었다. 이렇게까지 덥고 습한 줄은 몰랐지. 둘러보다가 마음의 결정을 내리게 한 브랜드를 만났다. 자수로 대만의 전통적이고 유니크한 문화요소들을 더하고 스토리로 풀어내는 방식을 취하는 브랜드였다. 여행지의 이야기를 심미적으로도 보기 좋은 형태로 풀어낸다는 점이 근사하게 느껴져서 더 고민하지 않고 이 브랜드의 티셔츠를 하나 샀다. 숍들은 다들 근사했지만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사게 되지는 않았다. 작은 데서 신중하고 큰 데서 아 몰라,가 되어버려 큰일이다.

그런데 대만은 정말 차원이 다른 아기자기함을 지닌 곳인 것 같다. 지하철 역 안 곳곳에 자연스러운 일러스트레이션이 많아서 공공예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일상 속 예술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했다. 아, 창의문화지구에서 한국 브랜드인 세컨드모닝의 팝업이 열리고 있었고 크지 않은 공간이긴 했지만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차 있는 광경을 목격해 신기했지.

 

 

한 정거장을 이동해 또 하나의 트렌디한 지역에 가서 1시간여의 웨이팅 끝에 딘타이펑을 먹었다. 웨이팅하는 동안 또 소품숍들을 돌고 큐레이터님이 대만에서 한 최고의 소비라고 했던 대만 스벅에서만 판다는 자몽청을 샀다. 팀호완이 대중적인 맛이었다면 딘타이펑은 맛이 조금 더 상세했다. 공심채 볶음이 진짜 맛있었고 닭고기 샤오룽바오의 뚜껑을 열자 딤섬 사이에 노란색 밀가루 반죽의 작은 병아리가 있어서 크게 앓으며 귀여워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진도 찍었고. 옆 테이블에는 노부부가 있었는데 내 리액션이 너무 커서 흥미로웠는지 할아버지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었다. 일본인지 한국인지. 내가 일본 드라마처럼 리액션을 했던 걸까. 또 한참을 먹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물컵을 가리키며 이건 맛있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차인데 무료이니 많이 마시라는 식의 코멘트를 덧붙였다. 재밌네.

핫플이라는 동네에 있다 보니 한국어가 자주 들렸다. 나도 먹고 회사에도 놓으려고 누가 크래커를 사러 간 곳에서 한국인 점원분을 만났다. 대만에서 공부 중이시라고. 잠시 일 년 정도 나도 여기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스스로 취소했다. 가을도 이런데 여름의 습도와 온도를 어떻게 견뎌.

 

 

양손이 무거워 짐을 숙소에 두고 오며가며 건물이 멋져서 궁금했던 필름박물관에 갔다. 상상마당 같은 곳이었고 영화를 보지 않으니 굿즈를 사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건물이 멋있으니 됐니. 나와서는 나흘이나 지내는 동네인데, 하고 숙소 인근을 산책하며 홍대와 연남과 경의선 철길과 망원을 차례로 떠올렸다. 이곳도 맛집은 웨이팅이 늦은 시간에도 어마어마하더라고.

 

 

과일을 사러 갔던 까르푸에서는 손질해 파는 과일이 애매해 초콜릿이나 두 봉지 사서 G가 봐뒀다는 과일가게에 갔다. 세 팩에 50대만 달러, 그러니까 2000-2500원 정도였고 궁금했던 석가를 먹어볼 수 있다는 생각에 흥이 났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의사소통의 오류로 석가가 아닌 사과를 사왔더라고. 그렇지만 사과는 언제 어떻게 먹어도 맛있으니 노프라블럼이다.

 

G는 걸음도 빠르고 목적지를 찍고 나면 길을 둘러보지도 않고 직진하는 편이라 이것저것 두리번대고 사진을 찍느라 뒤처지는 나를 자꾸 기다려주는 모양새가 됐다. 마음이 너무 불편했지. 그리고 삼 일째 혼자만의 시간 없이 모든 일정을 같이 하다 보니 좀 숨구멍이 필요해져서 내일 오전에는 혼자 카페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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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