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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한낮

KNACKHEE 2016. 6. 8. 23:43

 

 

한낮.

햇볕의 춤.

혼자 버스를 몰고 온 군인애가 차를 세우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다 담배를 발로 눌러 끄고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 내게 와서 동네 피씨방을 물었다. 아는 게 없어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누나가 미안해.

일 년여 만에 수린이를 만났다. 어제 내가 훔치듯 잡은 약속이었다. 카페에 앉아 세 시간을 떠들었다. 나는 자꾸 그 아이에게 이 만남이 어색하진 않은지, 잠깐씩 찾아오는 침묵의 시간들이 괜찮은지 확인했다. 아이는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내가 그런 게 아니냐며. 아주 아닌 건 아닐지 모른다. 그러면서 헤어질 때 또 만나 줄거냐고 물었다. 아이는 이번엔 저가 먼저 연락하겠다고 했다. 오. 나는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쌓여야 편해지는 촌스러운 사람이라. 막상 만나면 아주 편하지 않을 거면서 자꾸 아이에게 연락하는 건 이어가고 싶은 인연이라 그렇다. 그리고 사실 모든 관계가 편할 필요는 없다. 그럴 수도 없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를 조금 이어서 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옆에 앉은 화사한 할머니께서 머리카락을 요란하지 않게 참 예쁜 색으로 염색했다고 말을 거는 바람에 깨서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드렸다. 학생이냐는 물음에 잠시 버퍼링이 걸렸다가 졸업하고 회사 다니다가 지금은 그만두고 다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쓸데없이 자세했다. 학자금대출에 대해 궁금해 하시길래 절차와 상환 과정에 대해서 아는 대로 알려드렸다. 할머니는 내내 같이 살다 남편이 돈을 잘 못 벌어다 주면 같이 벌 생각은 안 하고 자식도 버리고 집을 나가버리는 여자들이 있단 얘길 하셨다. 나는 아하하하, 하고 웃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하하하.

지난 월요일의 또오해영에서 예쁜 오해영이 다 상관없다고, 오빠가 날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니냐고, 난 아직도 오빠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에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소름끼치게 무섭고 징그러웠다. 그런 사랑해,라니. 그냥 오해영의 감정 표현도 파괴적이었다. 제정신인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박지윤 씨의 새 앨범을 듣는다. 두 곡 모두 좋다. 후덥지근한 날 강가에서 맞는, 몽글몽글하면서도 청량한 바람의 느낌이다.

편두통이 찾아올 때면 꼭 두피가 물렁해진 느낌이 든다. 실제로 만져보면 손끝에 닿는 두피는 단단하기 그지없는데 동시에 물렁한 감각을 느꼈다는 생각을 한다. 무척 이상한 말인데, 진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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