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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THE WINGS TOUR

KNACKHEE 2017. 2. 18. 21:43

 

 

 

 

 

 

 

그래도 우리 또래가 많지 않을까 싶었는데 중학생이 많았다. 가은이와 나는 잠시 현타가 왔다가 밥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2층 앞자리에 앉아서는 생각보다 시야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중앙이 아니라 스크린 위치에서 무대가 시작돼 당황했다. 사실 애들이 중앙으로 와도 매한가지로 안 보이긴 했다. 우리 애들 눈코입은 제대로 있는지, ... 어쨌든 콘서트에 왔으니 애들을 눈에 담고는 싶은데 또 스크린을 보지 않으면 디테일이 전혀 안 보이니 눈동자가 바빴다. 조명까지 더해져 거의 실루엣만 보이다시피 하는데도 남준이 비율 좋은 거랑 지민이 몸 선 예쁜 건 알겠더라.

 

랩라인들 무대가 정말 좋았다. 윤기의 무대 장악력에 놀랐다. 무대를 씹어먹는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건가 싶었다. First Love는 원체 좋아하는 곡이기도 한데 이 노래가 이렇게 무대를 꽉 채울 수 있는 노래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아노가 애매하게 오르락 내리락 한 무대 연출은 좀 아쉬웠지만. 남준이 Reflection 무대는 Whalien 52를 모티브로 영상과 무대 연출이 준비돼 있어서 Reflection만 들었음에도 마치 두 곡을 모두 들은 기분이었다. 고래처럼 유영하던 푸른 삼각 조명이 아름다웠다. 윤기 무대부터 마음이 뭉글뭉글 해졌다가 남준이 무대에서 좀 울컥, 했다. 그 감정이 석진이 Awake 무대에서 터져버린 건 사실 지금 내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Awake의 가사처럼. 어떤 확신을 가지고 믿는 게 아니라 버텨보는 거다. 정말이지 할 줄 아는 게 지금은 이것뿐이니까. 나는 결코 화려해질 수 없을 테다. 그정도의 날개는 내게 없다. 그래서 어느 날은 그게 정말 무섭다. 때론 걷고 또 아주 가끔은 뛰어 보기도 한다.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사라지지 않으니까. 그래서 일단 계속 가보는 거다. 최근에 이런 마음들이 부유했다. 그래서 난 좀 눈물이 났다. 가장 기대했던 봄날 무대가 가장 좋았는데 이렇게나 서정적인 노래에 다소 격한 안무가 곁들여져서 하루만,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 엔딩 무대 전에 남준이가 뮤비에서는 자기들끼리만 손을 잡고 갔지만 여기서 우리 모두 함께 손잡고 봄날로 가자는 멘트를 한 게 괜히 좋았다. 특별할 것도 없고 어떻게 보면 식상할 수도 있는 그 멘트가, 나는 못내, 좋았다. 눈꽃이 떨어지고 벚꽃이 핀다. 누군가는 그 시기를 맞이하지 못하고 세상과 맞잡은 손을 놓아 버려 가끔은 그게 원망스럽다. 속상함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마음에 혼란스러워하다 이내, 지워버린다. 아니, 지우겠다고 했지만 실은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마음에 잘 간직하고 내 옆에 있는 이들에게 다시 한 번 손 내밀고 좀 더 머물러 달라고, 좀 더 머물러 보자,고 말한다. 내가 함께하겠다고. 정말이지. 너희들의 이야기를 전력을 다해 들려줘서 고맙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제대로 들어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래서 부디, 올해 벚꽃이 필 즈음엔 정말 봄날이길 바라본다. 생각해보니 대학 졸업 이후 한 번도 벚꽃을 즐거운 마음으로 본 적이 없다. 2014년에는 백수였고 2015년에는 회사를 견디지 못해 퇴사를 앞두고 있었고 2016년에는 요행을 바라다 나의 자존을 내가 갉아먹었다. 그러니 올해는 다르길.

 

뜻밖에 좋았던 무대는 싸이퍼. 사실 음원으로는 잘 안 듣게 되는 곡인데 무대로 보니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애들은 고맙단 말을, 사랑한단 말을 가장 많이 했다. 아이들은 많은 사랑을 받고 또 그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어떤 기자는 아이들의 멘트가 /좀 진심인 것 같기도 하다/고 표현했지만 정말 진심일 테다. 그날 했던 모든 말은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계속 자기들에게 묶어두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아이들은 그런 말을 계획하고 눈물을 꾸며낼 수 있는 부류가 아니다. 설령 그게 내가 오해한 그들의 모습일지라도, 나는 그들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대로 그들을 오해할 테다, 기꺼이.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익숙함에서 비롯된 타성이 아니라 경험이 쌓여 좀 더 잘 하게 됐을 뿐이다. 그뿐일 테다. 봄날 무대 전 둘!셋! 무대는 팬송인 만큼 많은 부분 마이크가 꺼지고 팬들이 떼창을 했다. 내가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이었으면 그 모아진 목소리들이 마음을 적셨을 것 같다. 이런 하나됨이라니.

 

콘서트가 끝나고는 현실감이 없었다. 마치 꿈을 꾼 듯한 기분이었다. 그 와중에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말은 딱 하나였다. /너무 좋다!/ 동방신기 이후 착실한 안방수니였기에 콘서트 일정이 떠도 되면 좋고 안 되면 말지 뭐, 귀찮은데- 이런 마음이었다면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기분이다. 자리 욕심도 나고 올콘 욕심도 난다. 못 가게 돼도 그 전과 같이 편안한 마음일 수 없을 것 같다.

 

일단 지금은. 충분하고 충만하다. 덕분에. 다시 힘을 내볼 수 있을 것 같다. 또 보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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