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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르르

KNACKHEE 2017. 10. 12. 23:16
그녀가 ㅈ 될 거라는 기대에 설렜지만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귀찮은 일 만들기 싫었겠지.

그녀가 10월에 그만두겠다는 나를 연말까지 잡아두려는 이유를 알았다. 연초에 유학을 간다고 거짓말을 하려던 거였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는 11월까지 근무하겠다고 했던 말도 철회할 수밖에 없다. 유학 갈 돈을 주든지. 끝까지 유학이란 거짓 패를 들이밀면 상태 메시지에 쓸 거다. 유학은 개뿔.

어쨌든 그 일로 야근 금지령이 내려졌고 우리(를 가장한 그녀)는 업무 내용과 업무 시간 내 이동 사유를 매일 적어서 부장님께 내야 했다. 전자에 대해선 다른 팀처럼 집이나 카페에서 야근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다른 팀 누구? 그리고 그런 식으로 또 야근을 시키면 회사에 돌아와 퇴근 도장을 찍을 거다. 후자에 대해선 이제 자기가 아침에 반차를 쓰거나 늦게 출근을 하게 해 주거나 오후에 조기 퇴근을 하게 해 줄 수 없게 됐다며 우리에게 굉장히 안 된 일이란 식으로 말했다. 그런데 제 시간에 출근해 제 시간에 퇴근을 하면 다음 날 늦게 출근할 일도 없다. 그리고 그 늦은 출근은 사내 규정에 따른 정당한 것이기도 했고. 그녀가 5시즈음 조기 퇴근을 시켜준 건 입사 이래 딱 하루였다. 우리가 매일같이 11시가 넘어 퇴근을 하던 때였고 우리의 건강이 최악을 달리던 때였다.

그녀는 우리뿐 아니라 자신도 야근을 할 수 없게 됐다며 자기는 집에선 일을 못 하는 스타일이라 야근을 해야 하는데 큰일이라고 했다. 아니, 당신은 그냥 일을 안 하는 스타일이지 않나. 할줄 아는 거라곤 카톡밖에 없으면서. 메일 하나도 확인할 줄을 몰라 같은 메일을 받고도 수십 장에 달하는 파일을 캡쳐해서 카톡으로 달라고 말한다.

이따위 말을 지껄이는 그녀의 입 주위엔 퍼런 주사 멍이 들어 있었다. 어젠 퇴근 시간쯤 약국에 간다고 나가선 돌아오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가 컨펌을 해줘야 진행할 수 있는 일이 산더미인데. 사랑스러운 P씨는 그녀의 답을 기다리느라 10시까지 사무실을 지켰다. 돌아오지 않을 거면 들어가보겠다고 7시쯤 보낸 문자를 일부러 9시가 넘어서 확인하고는 가라고 했다.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 그걸 못 봤을 리 없다. 이녀의 카톡엔 자기 열받게 했다고 답을 하는 걸로도 모자라 전화를 했으니까. 그래놓곤 어제 약국에 가다 근육이 뒤틀려 링겔을 맞으러 갔었단다. 나름 머리를 굴린다고 팔꿈치 안쪽에 동그란 밴드도 붙이고 왔더라. 그 밴드 얼굴에도 좀 붙이지 그랬니.

그녀는 엽서를 옆서라고 쓰고 휴게소를 휴계소라고 쓰고 넣어줘를 너어줘라고 쓰고 어떡해를 어떻해라고 쓰고 교보문고가 교보문구인 줄 안다.

그녀는 컴퓨터 앞에 앉아 뭘 해야 할지 몰라 계속 부산스럽다. 자꾸 우리의 모니터를 봤다가 몇 시간 동안 메이크업을 다시 한다. 그러다 정말 할 게 없어지면 회의,를 하자고 한다. 그것도 맨날 퇴근 시간즈음이나 퇴근 시간 이후에. 말이 회의지 일방적으로 그녀의 망상을 듣는 시간에 불과하다.

잠시였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젖어 행복했었다, 우린. 너무 힘을 들여 설렜던 까닭에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허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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