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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관계가 끝났다

KNACKHEE 2018. 3. 28. 19:55

또 하나의 관계가 끝났다.

대표랑 본인이 직접 해결한다기에 번호를 알려줬고, 그동안 아무 얘기가 없어서 나는 원고료 문제가 해결된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G는 전화를 받자마자 고소니 뭐니 법을 들먹였다. 회사를 옮기고 네가 힘들어하는 것 같길래 자기가 알아서 해결해 보려고 했다며 나를 엄청 배려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그리고 자기가 느낀 내 좋은 점들을 나열하며 그런데 이 관계가 겨우 이십만 원 때문에 어그러졌다며 자신은 고료를 제때 주지 않은 내 전 회사 대표에게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자신에게 예전처럼 좋은 태도로 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서운해했다. 또 가정까지 있는 사람이 당장 20만 원이 없어서 원고료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고, 이건 분명 줄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반박하고 싶었다. 우선. 나는 거의 일년여 만의 연락이라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원고료 얘기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설사 그 얘기를 꺼낸다 해도 우리 사이의 공백을 메운 다음이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상황을 고려해 나를 배려해준 건 고마운 일이지만, 그 뒤로 나를 들여다봐 줄 생각도 하지 않아 놓고 그렇게까지 나를 생각해줬다고 얘기하는 태도에는 웃음이 났다. 그리고 나도 내가 낯설 정도로 지난한 시간을 지나 왔는데, 그동안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먼저 한 연락에도 그 정돈 별거 아닌 사회 생활의 당연한 문제란 식으로 말했던 사람이, 이제 와서 왜 너는 내게 이전처럼 대하지 않는 거냐 물으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그리고 이십만 원에 대해서. 그래. 씨발. 그 이십만 원. 그놈의 원고료. 상황이 제대로 종결됐는지 알아보지 않고 책임져 주지 않은 건 원고를 청탁했던 내 잘못이 맞다. 그런데 나는 정말 궁금한 게, 얘는 지금 당장 이십만 원이 없어서 큰일이 나나?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집에 아무런 보탬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당장 이십만 원이 그렇게 급한가? 어떻게 가장에게 이십만 원이 없을 수 있느냐고? 없을 수 있지. 대기업에 뒤통수 맞아서 통장이란 통장은 다 압류가 됐는데.(대표는 G와 통화를 하면서 이 상황까지 다 깠다고 했다.) 지난달에야 겨우 압류가 풀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에게 줄 이십만 원이 그 사람에게 가장 급할 수는 없다. 네 말대로, 그 사람은 가장이니까.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을 테지. 제때 고료를 주지 않은 건 나도 그 사람도 나빴지만, G의 이런 방식과 태도는 안 그래도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지금의 나를 들쑤셨다. 내가 잘못해 놓고도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데는, G가 취재 당시 보였던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도 있다. 일단, G는 가장 기본인 취재 시간에 늦었다. 그래놓고 취재도 엉망으로 했고 우리 회사의 클라이언트였던 사람에게 취재가 자신의 본업이 아니라 자신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는 걸 밝혔다. 아니 굳이 왜. 솔직히 그건 자기의 위치를 자랑하고 싶었던 것밖에 더 되나?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했겠나. G는 계속해서 일전에 했던 기자 일에 미련을 두었고 나는 내가 그것을 조금은 해갈해줄 수 있는 상황이 됐기에 G를 믿고 부탁한 건데, G는 0부터 10까지 모두 망쳤다. 심지어 마감 기한을 넘겨 원고를 줬다. 물론 G의 그런 태도와 관계 없이 일을 했으니 고료를 제때 줘야 하는 게 맞다. G가 이쪽의 상황을 봐줘야 하는 이유는 없다. 안다. 그런데 굳이 이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는 건. 너만 모든 걸 참고 이해한 게 아니라, 나도 그랬다고.


그런데 나도 진짜 씨발년인 게 그 짧은 순간에 한때 친구였던 사람에게 쓸 단어로 /그쪽/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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