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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간절하고 커다란 부적

KNACKHEE 2023. 4. 22. 22:36

뭐랄까. 어떤 병풍은 복을 기원하는 장치라는 면에서 아주 커다랗고 매우 정성스럽고 무척 심미적인 부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나 정성껏 기원하는 복이라니. 요행을 바라는 것도 허투루 할 수 없는 것이다.
솔직히 한국적인 것, 한국의 것 등에 크게 마음이 동하는 편은 아니다. 이 전시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누군가 전시장에 놓인 <일월오봉도8폭병풍>의 사진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사진 속 병풍을 보는 순간 '와. 이게 뭐야. 치명적인 아름다움이다' 하고 감탄하면서 바로 전시를 예약했다. 층고가 높은 전시장에서 만난 일월오봉도는 이변 없이 아름다웠다. 병풍이 이렇게 흥미로운 건 줄 처음 알았네. 자세히 들여다봐야 마음이 생긴다. 자세히 들여다봄,의 무엇이 마음을 움직이는 걸까. 어쩌면 자세히 들여다보겠다는 태도에 이미 마음을 내어주겠단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된 병풍'이라는 콘셉트가 좋았다.
병풍에는 그리는 사람의 기원이 담긴다. 병풍이 놓일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오래도록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 같은 것들. 전시장에 머무는 동안 문빈 님을 자주 떠올렸다. 2017년의 종현도, 2019년의 설리 님과 구하라 님도. 다들 더는 행복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잘 지내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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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뿐만 아니라 이 소식을 접한 이후로 생각이 비면 자꾸 문빈 님 생각이 났다. 편해지긴 했겠지만 아쉽지는 않을까 해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 보고 싶었던 사람들에 아쉽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지나온 시간이기도 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단 마음으로 가득했던 시기. 나의 어떠한 노력도 쓸모가 없을 거라는 확신.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지만, 긴 시간을 지나온 후에도 완전히 괜찮아질 수는 없지만 죽음이 아쉬울 정도의 상태로 나아갈 수는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그때 죽음을 선택했다면, 지금의 나는 좀 아쉬웠을 것 같아서. 그래서. 안타깝고 속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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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들여다봐야 마음이 생긴다. 자세히 들여다봄,의 무엇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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