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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마침내

KNACKHEE 2023. 9. 2. 22:20

호암 미술관은 차가 없으면 리움에서 셔틀을 타는 등 루트가 쉽지는 않아서 언제 가보려나, 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대학원 동기분의 차를 얻어 타고 다녀올 수 있었다. 감격.

 

 

숙차를 처음 마셔봤는데, 정말 신세계였다. 이렇게나 부드럽고 고소한 차라니. 근데 진짜 비싸더라고,...

 

 

진입로에서 미술관 도착까지만 30-40분 걸렸고요,... 에버랜드와 호암으로 나눠지는 갈림길에서 모든 차가 호암 쪽에 서 있는 걸 보고 정말 놀랐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 진짜 다들 전시 열심히 보러 다니는 듯. 질 수 없지. (?

 

 

2층에서 시작되는 전시를 보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그러고는 다시 내려와 1층 전시실을 통과한 후에는 미술관 밖으로 이어진 자연을 마주했다. 이러한 동선과 연대기식 전시 구성은 우리 삶의 흐름과 닮아 있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작가의 문장들이 정말 좋아서 몇 번이나 눈가가 뜨끈해졌다. 언제든 꺼내읽을 수 있게 기록해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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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양 사람이요, 한국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하더라도 내 이상의 것을 할 수 없다. (중략) 우리 것이 아닌 그것은 틀림없이 모방 아니면 복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항아리만을 그리다가 달로 옮겨진 것은 그 형태가 항아리처럼 둥근 달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고 또한 그 내용아 은은한 것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불란서 사람들 말에 '달 같은 바보'라는 말이 있다. 태양처럼 찬란한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내 마음은 항상 뜨거운 것을 잃지 않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선과 점을 좀 더 밀고 가보자."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 거다. 꽃의 개념이 생기기 전, 꽃이란 이름이 있기 전을 생각해 본다. 막연한 추상일 뿐이다."

"새벽부터 비가 왔나보다. 죽을 날도 가까워 왔는데 무슨 생각을 해야 되나. 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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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는 위와 같은 식의 작업기가 작품마다 연혁 형식으로 적혀 있었고, 이렇게 더해진 맥락은 작품이 더 극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특히 그가 임종을 앞두고 그렸던 무채색의 작품들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평생을, 죽을 때까지 온 힘을 다해 그리는 것. 동행 중 한 분은 '좋아하는 일'이기에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그건 너무 가볍다. 이것은 삶 전체로 쌓아 나간 예술에 대한 구도이고 소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무채색의 작품들을 보면서는 오래 전 piknic에서 봤던 故류이치 사카모토의 <Life, Life>전을 떠올렸다. 왜인지 그가 일상에서 가져와 여러 실험을 거친 소리의 조각들은 계속해서 죽음을 생각하게 했고, 소리의 파동은 온몸의 세포를 검게 물들여 이내 녹여버릴 것만 같았다. 미술관에 놓인 검은 작품들에서는 그때의 공기가 느껴졌고, 특히 <9-V-74 #332>는 주마등의 순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