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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아닌 밤중에 음감회_WINGS

KNACKHEE 2016. 10. 11. 00:40

 

01. Intro : Boy Meets Evil

소년은 악마를 만났다. 주위는 캄캄했고 둘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소년은 죄의식을 느꼈다. 눈을 감았다. 악마는 부드러운 손길로 소년의 입술을 벌려 달콤한 사탕을 밀어 넣었다. 입 안 가득 진득하고 달콤한 침이 고였다.

 

02. 피 땀 눈물

소년은 지금 추고 있는 춤을 멈추고 싶었다. 안정된 호흡이 필요했다. 하지만 소년의 몸은 소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는 제멋대로 스탭을 밟으며 작지도 크지도 않은 공간을 휘저었다. 소년은 공간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이 공간 안에서 소년의 의지는 아무런 힘을 갖지 못했다. 제멋대로인 몸에 휘둘리면서 소년은 생각했다. 어떻게 어떻게 이 공간을 나간다고 해도, 아마 자신은 이 공간을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 그 그리움의 방향이 어느 쪽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분명, 이 공간이 미칠듯이 그리워 다시 자신의 발로 이 공간을 찾아오게 될 거라고. 확신에 찬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지금은.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03. Begin

제멋대로 움직이던 몸은 어느새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모든 힘을 소진한 소년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몸을 웅크렸다. 땀이 식으며 온몸에 한기가 서렸다. 소년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구해줘/ 무력했다. 그렇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앞코가 긴 검은색 구두를 떠올리게 하는 단정한 발소리에 소년은 눈을 떴다. 여전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구두 소리를 내며 들어온 남자가 소년과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남자는 소년을 향해 자신의 매끈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너와 같이 울어주겠노라고. 너를 이 공간에서 꺼내 주겠노라고.

 

04. Lie

소년의 입에선 자신의 마음과 정 반대의 말이 나왔다. /꺼져/ 마음으로 수없이 /아니야, 진심이 아니야!/하고 외쳤지만 소년을 향해 손을 내밀었던 남자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소년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하곤 입으론 남자를 향해 계속 사라지라고 말했다. 남자는 혼란스러웠다. 소년의 말과 표정 중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소년의 호흡이 가빠졌다. /제발 내 거짓말을 눈치 채 줘/

 

05. Stigma

남자는 떠났다. 공간에 들어올 때와 같은 단정한 구두 소리와 함께. 그제야 소년의 속에서만 울리던 울음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소년은 끅끅대며 울었다. 미안해서. 남자는 또다시 죄의식에 휩싸여 살아갈 것이다. 소년은 또 다시 남자에게 긴 흉터를 남기게 될 테다. 사라지지 않을.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거짓말을 눈치 채 주지 못한 남자를 원망하다 결국 자신을 원망하게 되는 것뿐이다.

 

06. First Love

피아노의 흰 건반은 너무도 새하얗고 순결해서 소년은 자신이 건반을 하나씩 누를 때마다 마치 피아노를 범하는 기분이었다. 소년은 조심스럽게 건반을 어루만졌다. 몇 날 며칠을 피아노 앞에만 앉아 있었다. 그런 소년을 두고 주위에서는 혀를 찼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도 될까 말까인데/ 소년은 두려워졌다. 하지만 피아노 앞을 떠날 수 없었다. 유일하게 소년이 눌러 내는 피아노의 음만이 소년을 위로했다. 너는 할 수 있다고. 잘 될 거라고, 분명.

 

07. Reflection

소년은 자신의 인생이 마치 영화같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괜찮은 영화 감독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소년이 쓴 시나리오와 디렉션은 종종 방향을 잃고 길을 헤맸다. 그럴 때마다 소년은 어릴 때 자신이 앉아 있던 피아노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던지던 말들이 생각나 두려웠다. /그때 그만뒀어야 하는 게 아니까. 나는 지금 너무 멀리, 잘못된 길을 걸어온 건 아닐까. 그런데 이만큼 온 길인데, 지금에서야 여기서 벗어난다면? 그러면, ... 그러면, ... 그 다음은?/ 소년은 스스로 어둠 속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자신을 마주했다. 자신의 손을 잡아줄 수 있게 될 때까지. 오래오래 자신을 응시하고 또 응시했다.

 

08. MAMA

소년은 어둠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엄마의 손을 잡고 매달렸다. 이 길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흔들리는 눈동자로 말했다. 엄마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매달 소년의 손에 레슨비를 쥐어 주었다. 소년은 자신의 손에 들린 흰 봉투 안에 자신이 갉아먹은 엄마의 삶이 들어 있는 것 같아 무거웠다. 하지만 피아노의 속삭임을 외면할 수 없었다. 소년은 엄마의 삶을 담보로 자신의 꿈을 꾸어 보자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소년은, 소년의 피아노는 그리고 소년의 엄마는 틀리지 않을 것이다.

 

09. Awake

소년의 손끝에는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혔다. 가끔은 손끝이 터져 흰 건반 위를 붉게 물들이곤 했다. 그때마다 소년은 엄마가 손에 쥐어 주던 흰 봉투의 촉감을 떠올렸다. 입술을 깨물었다. 무서웠다. 피아노를 치면 칠수록 소년은 자신에게 천부적인 재능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가 보고 싶었다. 조금 더 피아노를 자신의 삶의 중심에 두고 싶었다.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고 싶었다. 정해져 있는 최상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신만의 연주를 하고 싶었다. 그래도. 그거라면. 계속해도 괜찮지 않을까.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10. Lost

마음은 한 번 정했다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만의 연주를 찾는 것에 매진한 후에도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흔들렸다. 어둠이 내린 좁은 방에 이불을 발끝까지 덮고 누우면 불안에 잠식당하는 날이 많았다. 소년은 늘 생각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그리고 또 생각했다. /이대로 괜찮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하루는 소년이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박수를 쳤다. 소년은 당황해 남자를 빤히 바라봤다. 꽤 오래 박수를 치던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계속 연주를 했으면 좋겠어. 나도 네 길 위에 함께 할게. 조금 더디더라도 우리 함께 가 보지 않을래?/ 소년은 길을 잃은 것 같기도, 길을 찾은 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들었다.

 

11. BTS Cypher 4

/제 연주는 너무 정도에서 벗어난대요. 그게 문제래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모두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아니, 본인이 정말 본인 연주가 그렇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거예요/ /, ... 아뇨/ /그런데 뭐가 문제죠?/ /정도를 걸을 수가 없잖아요/ /꼭 정도를 걸어야 해요? 기존의 길이 아니면 틀린 길이라고 생각해요?/ /, .../ /대답하기 어렵죠? 나도 그래요. 그런데 아마 괜찮을 거예요. 안 죽어/ /죽지야 않겠죠/ /음. 안 죽고 어쩌면 가장 오래 살아남을지도 몰라요/ /아/

 

12. Am I Wrong

/좀 미칠 필요가 있어요/ /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데 혼자 제정신이면 살기 힘들거든요/ /그렇다고 같이 미쳐버리면, .../ /더 미치는 거예요, 미친 세상 사람들보다 더/ /아. 이 구역의 미친X은 나다, 뭐 이런?/ /오. 좋아요. 발전하고 있네요. 필요할 땐 우리 좀 편해져요/

 

13. 21세기 소녀

남자는 소년이 안타까웠다. 남자가 보기에 소년은 충분했다. 문제는 자꾸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약점만을 파고들어 스스로 어둠에 갇혀 버리는 것이었다. 자신의 길을 닦아 나갈 능력이 있음에도 기존의 기준에만 자신을 맞추려 했다. 남자는 소년이 자신에게 자신을 갖길 바랐다. 그렇게 될 수 있게 소년의 길 위에서 함께 걸어주고 싶었다.

 

14. 둘! 셋!(그래도 좋은 날이 더 많기를)

행복한 일만 있길, 좋은 일만 있길 바라는 것이 얼마나 천진한 생각인지 남자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소년이 앞으로 걸을 길 위에 좌절의 구덩이보다는 한 번이라도 더 웃는 날이 많았으면 하는 마음인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쓸데없는 죄의식으로 자신을 갉아먹어 흉이 진 소년의 상처 위에 색이 고운 꽃을 올려 주고 싶었다. 남자는 계속해서 자신을 황당하게 바라보는 소년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부질없는 말임을, 소년의 마음에 닿지 않을 수도 있는 말임을 알면서도 남자는 말했다. /괜찮아/

 

15. Interlude : Wings

작지도 크지도 않은 공간에 홀로 남겨진 소년은 온힘을 다해 자신에게 있던 날개를 떠올렸다. 어렸을 때 잠깐 있다가 사라진, 남자를 만난 후로 잠시 돋아나는 듯 했다가 스스로 꺾어 버린 그것을. 소년은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곤 어둠 속 먼지 구덩이에 있는 갈색 피아노를 찾아 뚜껑 위의 먼지를 후- 불었다. 손바닥으로 의자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앉아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처음 피아노를 마주했을 때 피아노의 흰 건반이 줬던 순결한 느낌이 되살아났다. 한 손가락으로 흰 건반을 누르니 청아한 음이 공간을 채웠다. 소년은 무언가에 홀린듯 피아노를 연주했다. 조금 전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몸을 움직여 진이 빠졌다면 이번엔 자신의 의지로 피아노를 연주해 진이 빠졌다. 무력하게 진이 빠진 후에 찾아온 감정이 두려움이었다면, 의지적으로 진이 빠진 후 찾아온 감정은 희열이었다. 소년은 남자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괜찮아. 괜찮아요/ 하고. 그 말을 중얼거릴수록 몸에 새로운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피아노 앞에서 일어난 소년은 캄캄한 복도로 연결된 문을 향해 달렸다. 소년이 공간을 빠져나가는 순간, 그 작지도 크지도 않은 공간은 잿빛 연기가 돼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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