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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즐겁다

KNACKHEE 2017. 2. 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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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힙하지만 아직 젠트리피케이션은 맞지 않은 한강진 역 부근에서 엘님과 지희 언니를 만나 떡볶이를 먹었다. 여러 선택지가 있었지만 내가 치과를 갔다 늦게 합류하는 바람에 선택지들이 대부분 사라졌던 탓이다. 다음 일정으로 디저트가 있었으므로 밥을 볶을지 말지 한참 고민하다 그만뒀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살찌는 소리가 들리는 디저트들을 골라들고 자리를 잡았다. 백곰님의 저녁을 위해 엘님이 먼저 떠나시고 나와 지희 언니는 한참 자꾸만 커져서 당황스러운 덕심을 이야기했다. 정말이다. 당황스럽다. 해가 완전히 지고 지희 언니의 핸드폰 케이스를 보러 산책을 나섰다. 웰컴 이태원, 표지가 있는 곳까지 갔으나 케이스 매장을 찾을 수 없었다. 이왕 걸은 거 좀 더, 하고 경리단길까지 갔으나 소득이 없었다. 다시 이태원 역으로 가는 길엔 올 때와 다른 루트로! 하며 캄캄한 주택가 사이를 걸었다. 그러다 이태원어린이공원을 만나 이런 곳이! 하고 한참 감탄했다. 이곳에서는 세탁소의 건조하고 습한 내음이 났다. 옆에는 정말 세탁소가 있었다. 체인점 말고 진짜 세탁소. 오후엔 미세먼지로 뿌옇던 하늘도 개서 달도 보이고 별도 점점이 보였다. 경리단길의 끝자락에서는 원래의 목적이던 케이스 매장을 발견히 럭키를 외쳤다. 그곳에서 무척 감각적인 케이스를 발견했다. 산책은 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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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남준이가 나왔다. 어제 그렇게 동윤이 생각만 하다가 잤는데 남준이가 나왔다. 뭔가 친한 누나 동생 사이였고 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와 같은 연습실에서 연습을 했다. 보컬팀이랑 춤 연습을 하기가 어려우면 자기네 래퍼팀이랑 연습을 하자고 말했다. 아무래도 난 그 말에 좀 기뻐했던 것 같다. 한바탕 춤 연습이 끝난 후였는지 여기저기에 다른 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중에 한 애가 /아니, 그런데 여기 있는 애들 다 아는데 J 너는 왜 고백 안해?/ 했고 나는 황급히 달려가 누워있는 그 애의 입을 막으려 했으나 /남준아, J가 너 좋아해/ 하는 그 얄미운 말이 선수를 쳤다. 나는 그 애 앞에 쪼그려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다시 남준이한테 가서 비장한 얼굴로 말했던 것 같다. 나는 /그래, 이렇게 된 거 내가 다시 제대로 고백할게. 좋아해, 남준아/ 했고 착한 남준이는 해사하게 웃으면서 /누나, 우리 사귀자/ 했다. 어쩐지 남준이의 손바닥엔 모래가 잔뜩 묻어 있었는데, 나는 그걸 털어내며 /야아- 누나 장난 아니야/ 했고 남준이는 /나도 장난 아니야, 누나/ 했다. 내가 장난이 아니라고 한 건 /나 사귀면 너한테 장난 아니게 굴 거야-/ 이런 누나적인(?) 의미였는데 남준이는 그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나 사귀자고 말한 거 장난 아니야/라고 받아친 것 같았다. 그리고는 곧 꿈에서 깼는데 정말이지 나는 /사귀자/는 그 대답을 듣기 위해 혼신을 다해 꿈을 꾼 느낌이었다. 이런 누나라 미안하다, 남준아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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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꿈도 꿨다. 땀인지 물인지 모를 것으로 얼굴이 잔뜩 젖어 있는 할머니는 한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다가 주문한 음식이 한참동안 나오지 않자 나 갈 거야, 하곤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일어나자마자 할머니한테 전화를 했다. 지난 설에 본 할머니는 에너지가 사그라드는 게 저런 건가, 싶을 정도로 삶의 의지도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기에 더 불안했다. 이런 류의 꿈을 대체로 꽤 정확하게 꾸는 탓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설 때보다 더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다고 했다. 별 거 아니었나, 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 할머니는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치매 증세가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는 얘길 엄마에게 들었다. 시집살이를 끝내고 자식들 다 키워서 이젠 좀 편하게 사나 했는데 하나 있는 아들은 흐린 판단력으로 그런 엄마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런데도 딸보다 아들을 먼저 챙기는 걸 보면 여전히 아이러니다. 아들이 뭐라고. 고생만 잔뜩 하셨는데. 속상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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