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20200112_말씀 본문
준비 찬양이 끝나고 잠깐 기도하는 시간에 내 생명이 주님께 달렸으니 이제는 내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겠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겠다는 로마서의 고백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습니다.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형제를 비판하고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_ 로마서 14장 08절-10절(KLB)/
이어지는 말씀을 보다가 요즘 커뮤니티 방에서 말씀 묵상을 나누기 어려운 게, 나눔의 내용조차 남들과 비교했기 때문이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가 우리를 괜찮은 존재로 여기는 건 타인과의 끊임 없는 비교에서 비롯된다는 지난 말씀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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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말씀 / 마태복음 09장 36절-38절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추수는 일꾼이 있을 때, 그리고 씨 뿌리는 계절 이후에 일어난다. 그렇기에 관찰자가 일꾼으로 바뀌어야 하며 반드시 씨 뿌리는 행위가 필요하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권위를 의심하던 시기였다. 어느 곳에서도 영적 부흥이 일어나지 않았고 자신이 보기에 옳은 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추수의 때라고 이야기할 만한 단서들이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우리는 추수를 준비해야 한다. 예수님께선 곧 풍성히 추수의 때가 올 것이므로 가장 어두울 때도 이를 준비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세상보다 세상을 더 닮은 사람이진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추수가 일어나려면 관찰자들이 일꾼이 되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일꾼은 예수님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태도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기에 후천적인 노력으로 만들 수 있다. 나의 태도로 예수님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 어떻게 보이는지는 중요한 지점이다.
고난은 우리를 추수를 위해 필요한 일꾼이 되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진정한 크리스천은 예수님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삶과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의 노력만으로 진정한 크리스천, 추수의 일꾼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시켜주실 때에만 가능하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 시대가 당면할 문제인 우울의 깊이와 외로움을 아셨다. 이 가혹한 세상에서 타인을 위로하려면 불 가운데에서 단련되어야만 한다. 이런 경험이 없으면 더 기도해, 성경을 더 읽어, 같은 얘길 해주는 게 전부일 테다.
내 삶에서 가장 어두운 날, 그렇게 불 가운데를 지나면서 하나님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는가? 하나님께서 이 시기로 나를 단련시키시고, 나를 넘어서는 내게 되게 하심으로써 일꾼으로 사용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불을 지나본 사람만이 추수를 할 수 있다. 그 불을 지난 사람들은 긍휼의 마음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겨우 메시지 하나를 깨닫게 하시려고 나를 치시는 게 아니다. 성품을 만들어 주님의 군사로 성장하게 하기 위함이다. 곧, 추수의 때가 온다.
> 나의 고통이 감사의 대상이라는 건 이런 의미도 있겠구나 싶었다. 자기합리화일 수 있지만, 내가 인생의 암흑기라고 생각하는 시기들이 타인에게 표면적인 위로가 아닌 짙은 공감에서 비롯된 위로를 전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만 예전부터 계속 느끼는 건, 그 긍휼과 연민이 타인이 아닌 나를 향하고 있다는 거다. 긍휼의 방향을 바꾸고 크기를 키워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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