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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20200318-19/21_-보고 싶다

KNACKHEE 2020. 3. 21. 23:20

20200318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런 책은 필요 없어요, 는 아무래도 좀 너무하지 않았나. 밥을 먹다가도 자꾸 그 말이 떠올라 울컥했다. H대리님과 촬영을 가는 길엔 제가 나이를 서른이나 먹었는데 아직도 여기저기서 혼이나 나고! 하면서 절규했다. 촬영이 끝나고 내 하소연을 들은 대리님은 마음이 쓰이셨는지 시간을 내서 얘기를 나눠주셨다. 정말이지 생각지 못한 다정.
Y대리님의 퇴사가 하루 앞당겨지고 재택은 연장되면서 오늘이 마지막이란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났다. 대리님은 계속 보면 되고 아무래도 다음 주 수요일에 짐 가지러 잠깐 들러야 할 것 같다며 위로해주셨지만 이별 앞에선 도무지 담담해지기가 어렵다. 나이를 서른이나 먹었는데도.
서른이나 됐는데 여전히 억울하고 화가 나면 눈물부터 난다. 맨날 주저앉아 울기만 해서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속이 탄다. 나아지고 있다고,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돌연 이런 생각이 급습할 때면 마음을 지키기가 어렵다. 고백하자면, 친구의 생일을 찾으러 들어간 페이스북에서 거의 랜선 지인인 두 사람의 근황을 보게 됐는데, 둘 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과 맞닿아 있었다. 한쪽은 여유로웠고 한쪽은 유망한 커리어를 지녔다. 누워서 핸드폰을 보다 벌떡 일어나서 두 손을 맞잡았다. 내게 주신 삶의 에너지를 시기와 질투와 분노에 쓰고 싶지 않다고, 마음을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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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자신의 가수에게 하는 특별할 것 없는 말인데 왜인지 이 댓글은 보는 순간 코끝이 찌르르 했다.


20200319
출퇴근에 들이는 시간이 사라지자 똑같은 시간 동안 일을 해도 확실히 컨디션이 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진짜 해롭네 출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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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시간 릴레이 기도가 있는 날이었다. 신청한 시간에 기도를 시작하며 우선 인정받길 원하는 욕망 속에서 허우적대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자꾸만 판단자의 자리에 서서 타인을 판단하고 내 삶에 영향력을 끼칠 권한을 쥐어주고, 그러면서 스스로를 그런 감옥에 가둬 죄수가 되게 만드는, 판단자이자 죄수가 되는 모순에 대해서도 꺼내놨다. 성경에선 사람이 만들어진 목적인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자체가 죄라고 했는데, 나는 매일 그 죄를 짓고 있음을 고백했다. 그런 후에는 나의 시야가 나의 작은 주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시선이 닿는 곳이 어딘지 간구함으로 나아가 그곳에 이를 수 있기를, 그곳에서 나의 쓸모를 다할 수 있기를, 세상의 쓸모를 눈치보는 것에서는 조금 더 자유할 수 있기를, 겸손하되 담대하고 자유함 안에서 지혜로 행동할 수 있기를, 오늘만큼은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이 당신의 평강 안에서 평안하기를 기도했다. 외로움과 죽음을 생각하는 메마른 땅을 느끼게 하셨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다시 한 번 그런 곳에서의 나의 쓸모를 구했다. 단발성의 마음이나 충동적인 고백이 아니라 지속적인 간구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기도하는 내내 /오직 주만이/란 찬양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20200321
고통뿐 아니라 사랑도. 그 사람이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주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 가족이 해외의 작은 전원 주택에서 함께 살게 되는 꿈을 꿨다. 비용을 마련하게 된다면 한국에서 살던 집과 이곳의 집 중 어디를 사는 게 좋을지 한참 고민했다. 아마 해외의 것을 사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것 같다. 그러고는 입고 있던 청바지가 그냥 바지인 줄 알았는데 멜빵바지라는 걸 깨달았다. 요즘 좀 입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좀이 아니라 많이였던 듯? 낄낄. 그런데 마지막엔 숨이 안 쉬어져서 힘들어하다가 깼다.
치과에 가려고 삼 일 만에 집 밖으로 나갔다가 봄이 온 걸 알았다. 꽃이 핀 걸 보고 있으니 괜히 기분이 환해졌다. 피어나는 계절이 왔네. 겨울을 좋아해서 봄을 기다린 적은 없는데 아, 그래도 이런 기분 때문에 봄이 좋았지, 싶었다. 집에 와서는 겨울 옷들을 분류해 세탁기를 돌리고 행거에서 코트와 재킷의 위치를 바꿔놨다.
뭐가 하고 싶다, 뭐가 먹고 싶다 등은 결국 직간접적인 경험이 밑바탕되는 생각인데 오늘은 문득 그래도 경험치가 아주 낮은 인생은 아니었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보고 싶다,는 말을 먼저 떠올리고 그 대상에 대해 생각했는데 이 말을 전할 사람이 별로 없어서 조금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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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의 아미집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멤버들에게 공통적으로 '인생을 영화 속 전개에 비교해봤을 때, 어디쯤에 온 것 같나요?'라는 질문을 했고 다른 멤버들은 모두 이제 초반인 것 같다는 식의 답을 했다. 그런데 석진은 달랐다.
"영화의 엔딩 정도이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행복하고 스펙터클한 스토리들이 많이 나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서 또 다른 스토리가 나오면 전체적인 영화 흐름이 지루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만약에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면 새로운 영화에 담고 싶어요."
'매듭'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니. 이 답을 오래오래, 자주 떠올리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