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반짝이는 날씨, 아름다운 전시, 그리고 찝찝한 구매 경험 본문
아니 제가 해외여행 갈 때도 교통편이랑 숙소만 예약하고 계획을 끝내는 빠워 P인데 전시를 볼 수 있는 날은 일주일에 하루뿐이고(주말 하루는 서울 안 나가야 돌아오는 한 주 인간 비슷한 몰골로 살 수 있음) 또 인천러라 서울 나가면 일정 꽉꽉 채워야 해서 토요일에만 유일하게 빠워 J 되거든요, ... 그래서 오늘도 바지런히 일어나서 10시 반 오픈 맞춰서 도착했는데 문이 잠겼더라고요. 전화했더니 온늘은 11시 10분쯤 연다고 하셔서 근처에서 냄새도 이상하고 응대도 꾸물꾸물한 데 가서 아이스크림 하나 때렸거든요. 그러고 시간 맞춰 갔더니 여전히 잠겨 있어서 또 전화를 했더니 11시 30분쯤 열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12시에 일정이 있는데, ... 그리고 직감적으로 알았어요. 이건 11시 30분이 돼도 열지 않을 각이다. 휴. 제가 오늘 전예진 작가님 작품 데려가려고 총알도 장전해왔는데, ... 이런 건 인서타 공지라도 좀 해주십셔.
겨울 저물녘의 서늘한 빛과 여름 저물녘의 맹렬한 빛. 그 세심한 무게와 농도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폭을 대하고 앉으면 눈에 떠오는 것은 하루해가 어둠에 잠기기 직전 새들의 동작이다. 어둡기 전에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야 한다는 새들의 강박관념. 그 작고 따스한 날개를 파닥거리며 나는 몸짓에서 황혼녘의 인생이 현신顯身된다. 창공을 향해 힘껏 나는 새의 모습에서 황혼이 꺼지기 전 새로운 삶의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희망과 몸부림을 읽어낸다.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자세로 나는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인지 내 앞에는 황혼녘이 즐겨 전개되고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새의 대표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_ 윤중식, <어둡기 전에 작품을 끝내고> 중에서
작품도 좋았지만 곳곳에 자리한 작가의 문장의 깊이와 유려함에 넋을 잃었다. 자신과 세계를 끊임없이 반추해야만 얻을 수 있는 깊이. 이를 바탕에 두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적확한 언어로 펼쳐내는 유려함. 원숙한 창작자가 오랜 시간을 들여 구축한 내밀하고 밀도 높은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작가는 생전에 자신의 작품을 흩트리지 않으려 애썼고 가능하면 판매도 지양하며 추후 개인 미술관에 보존되길 바랐다고 한다. 이미 자신의 작품은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가질 수 있었던 지향점일 테다. 내가 내놓는 대부분의 것을 의심하는 나로서는 좀 부러운 지점이었다. 저렇게나 크고 견고한 확신이라니.
타오르는 황혼과 대비되는 전시 공간 곳곳의 색과 그 시간대의 색 필터를 입힌 듯한 창은 전시의 몰입을 돕고 작품의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장치로 작용했다. 그렇게 한참 노을에 젖어 있다 나왔는데 마주한 초여름의 눈부신 화창함이란! 꼭 시차 같기도 해서 기내식을 두 번은 먹어야 닿을 수 있는, 낯설어 설레는 곳에서의 여행이 시작된 듯한 기분이었다.
B와의 2/4분기 만남도 클리어.
그리고 이제 이거 전시 끝나면 내 거. B와 헤어지고 결국 갤러리에 다시 갔고, 고민 끝에 이 작품을 골랐다. 지금껏 산 작품 중에 제일 크고 비싸다. 나로써는 작가님 작품을 너무 소장하고 싶어서 큰맘을 먹은 건데 갤러리 입장에서는 별것 아닌 일이었는지 구매 경험 자체가 정말 별로였다. 일단 카드로 하겠다고 하니까 계좌이체를 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랬더니 옆에 카페에 가서 결제를 해주겠다고 했다. 가면서는 오늘 작품을 바로 가져가도 된다는 말을 하길래 띠용, 해서 "아직 전시 중인데요?" 했고, 갤러리 대표는 기획자한테 물어보고, ... 하면서 얼버무렸다. 카페에서는 이것저것을 떄려 넣어 작품 가격을 맞추고는 결제를 하라고 했다. 너무 찜찜해서 카드 내밀기를 주저하니까 갤러리에서 하는 카페라고 했다. 그래도 그림을 식음료 품목으로 긁는 기분이 영 별로였고 믿음직스럽지도 않아서 아트마켓 개념의 전시에서는 팔린 작품을 다른 작품으로 걸어 놓기도 하니까, 라는 합리화를 하며 작품을 오늘 가져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대표는 기획자에게 확인했고 반려당했다. 너무 신뢰가 안 돼서 전화번호를 남기면서 보증서도 같이 주시는 거죠? 하고 확인했고 대표의 명함도 챙겼다. 그러고 돌아가는 길에서도 내내 기분이 별로였다. 그래서 지난 화랑미술제에서 이 작가님과 시리즈에 대해 애정 가득한 설명을 해줬던 큐레이터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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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큐레이터님! 반짝이는 초여름의 나날들 보내고 계신가요? :) 제가 오늘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전예진 작가님의 작품을 구매했는데, 구매 과정에 대한 경험이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으로 이어졌어요. 만약 화랑미술제에서 큐레이터님의 디테일하고 애정 어린 작품 설명을 듣지 못한 채로 이 갤러리에서 처음 작가님의 작품을 만났다면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작품의 매력을 더 깊이 있게 알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신 큐레이터님께 감사하다는 인사 드리고 싶어서 메시지 드려요! ㅎㅎ 고맙습니다, 덕분에 멋진 작품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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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진심이다. 너무 단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한 판단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런 갤러리가 오랜 기간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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