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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당은 역사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KNACKHEE 2023. 12. 29. 20:03

 

폐허에서 소멸이 아닌 새로운 탄생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지.

안젤름 키퍼가 태어나던 날, 그의 가족은 집을 잃었다. 병원에서 온 가족이 그의 탄생을 지켜보는 동안 그의 집은 폭격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1945년의 독일이었다. 집을 잃었지만 사람은 지켰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모로코에서 만들어졌다는 벽돌로 쌓아올린 작품은 무너져 내리는 폐허 같기도, 쌓아올리는 중인 새로운 집 같기도 했다. 이 작품을 보다가 <창가의 토토>의 끝부분이 떠올랐다. 전쟁의 폭격으로 불타는 학교를 보며 원장 선생님이 "다음엔 어떤 학교를 만들까" 하고 말하던 장면. 사실 초등학생 때 읽어서 맞는 기억인지는 모르겠다.

전시를 분위기로만 접했을 때는 폐허의 가을인 줄 알았는데, 작가 인터뷰 영상을 보고 나니 찬란함의 가을이라는 걸 깨달았다. 영상 속 안젤름 키퍼는 유쾌했으며 10년 전,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만난 눈부신 가을날의 사진이 이번 작업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문인이 될지 화가가 될지 끝까지 고민했던 그는 수많은 시를 외우고 있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자연스레 그림에 붙는 시가 떠오른다고. 그렇지만 언어적 주제가 작업의 시작이 되는 경우는 드문데, 이번 전시의 신작들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을 다룬 시들에서 얻은 영감이 작업의 단초가 되었다고도 했다.

작품에서 낙엽은 생명의 끝인 동시에 시작을 의미한다. 땅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을 위한 거름이 되어주는 낙엽. 그렇기에 안젤름 키퍼는 연금술의 시작인 납으로 형태를 만들고 연금술의 끝인 금으로 박을 입혔다. 이때 납은 불완전하고 불순하지만 금이 될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우리 인간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전시가 진행 중인 헤레디움은 100년 전 동양척식회사로 사용되었던 공간이다. 민족의 서글픈 역사가 담긴 곳이 당시의 건축 요소들을 복원하며 새로운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는 점은 안젤름 키퍼의 작품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의 작품이 국현미 대신 헤레디움에서 전시되고 있는 이유였다.
작품에 따라서는 금박을 빛이 내리쬐는 위치를 표시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멀리서 바라볼수록 빛이 닿는 지점이 선명해졌다. 어떤 찬란함은 가까이에서 볼수록 뭉개지고 초점이 흐려져 본질을 잃는다. 처음엔 빛이 거기에 있던 이유를 잊고 나중엔 그것이 빛이라는 것도 모르게 된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을 때만이 볼 수 있는 빛이 있다.
모든 사물은 각각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기에 우리의 일상은 결코 가난하지 않으며, 시인과 예술가는 바로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했던 인터뷰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성심당은 역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번 달 65번째 모임을 앞두고 있는 독서 모임을 빙자한 뜨거운생활의 지난 37번째 주제는 디올DIOR이었다. 발제 준비를 위해 자료를 찾던 나는 "와, 미쳤다" 하며 노트북 모니터에 가까이 다가갔다. 덕후의 심장을 뛰게 한 단어는 헤리티지Heritage였다. 그때 이와 관련해 조사한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명품의 주요한 기준은 헤리티지다. 품질과 재료의 희소성, 장인 정신 등은 기본이다. 디올은 2007년 헤리티지 부서를 신설했다. 디올에 관해 연구하고 그 결과를 기록으로 남겨 공유하는 것이 이 부서의 주요한 역할이다. 이들은 경매, 빈티지 숍 등을 통한 브랜드 유물 발굴, 크리스찬 디올이 살았던 샤토 드 라 콜 누와르 성 복원, 노르망디의 디올 박물관을 관리, 브랜드가 주최하는 전시회 콘텐츠 제공 등의 일을 해오고 있다. 헤리티지의 이해와 공유는 제품에 브랜드의 꿈과 역사적 의미를 더하는 일이고, 소비자들은 제품과 함께 그 이면에 놓인 브랜드의 문화적, 심미적 유산을 구매하게 된다."

지난 연말, 대전에 갔을 때 성심당 앞에 길게 늘어선 줄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성심당 문화원'의 존재였다. 그곳의 4-5층 갤러리 라루에서는 <성심당 빵굽는 산타마을>이라는 타이틀로 2024 성심당 캘린더 작업을 함께한 홍빛나 작가님의 작품을 곁들인 크리스마스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전시 공간에서는 198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크리스마스 시즌 성심당의 풍경과 관련 아카이빙 자료들도 살펴볼 수 있었다. 기록하고 분류해서 의미가 되는 일. 나는 이것이 단단해져 있을 미래를 기대하며 역사가 되기를 준비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사보 회사에서 일할 때, 당시 60주년을 맞은 성심당의 임영진 대표님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때 그 인터뷰 기사를 이렇게 마무리했고 지금도 여전히, 같은 마음이다.

"처음 성심당과 마주했을 때는 단순히 장구한 역사를 지닌 성심당의 스토리가 궁금했다. 임 대표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성심당이 제시하는 새로운 경영 모델에 마음이 설렜고, 성심당의 목표를 듣고 난 후엔 그 목표를 힘껏 응원하고 싶어졌다. 우리가 고객으로서 또는 직원으로서 마주하게 되는 모든 곳에 성심당이 띄워 낸 무지개가 찬란히 떠 있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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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전 당일치기 여행은 이제 아기 엄마가 된 센세와 함께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학 때의 운은 센세를 만다는 데 다 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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