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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ACKHEE 2016. 3. 21. 21:07


이곳으로 이사온 지 반 년이 다 됐는데 집 바로 옆에 있는 산을 이제야 올라봤다. 가까이 있다고 혹은 다 갖춰져 있다고 뭔가를 하는 건 역시 아니다. 어떤 경로로 갈까 고민하다, 정상이 멀지 않은 것 같아서 이왕 왔으면 정상은 찍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정상으로 가는 코스를 택했다. 경사가 가팔라서, 올라가는 건 별 문제가 안 되지만 이 길 그대로 내려오려면 고생 좀 하겠다, 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산을 올랐다. 정상에 도착해선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나무 사이로 지는 해를 보며 생각지 않은 묵상을 하게 됐다. 성경에는 인간을 만들 때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고 기술돼 있다. 하나님께선 인간에게만 자신의 형상을 부여하셨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창조물에는 의도하지 않아도 창작자의 성향이 담기기 마련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자연에도 분명, 만드신 분의 성품이 담겼으리라고 생각한다. 자연은 종종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낳기도 하지만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며  대체로 인간의 마음에 평안과 쉼을 준다. 의도하지 않은 자연에도 그분의 존엄과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이 담겼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라면. 그분의 성품을 더 잘 담아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 심장박동수가 차분해질 즈음 내려가는 길을 고민했다. 올라온 곳 반대편에 계단으로 만들어진 길이 있었다. 올라오시는 분께 이 길의 끝이 어디인지 묻자, 내가 출발했던 곳 바로 옆임을 알려주셨다. 생각지도 못한 길이 있었다. 삶이구나. 집에 도착할 쯤의 하늘은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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