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갉아먹는 건강

KNACKHEE 2017. 8. 3.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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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야근을 하느라 저녁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 들렀는데 당황스럽게 테이크아웃 잔이 아닌 머그에 커피를 내주셨다. 어쩌지 어쩌지 하다 까짓 거! 하고 P씨와 잠깐 테이블에 턱을 괬다. 뜻밖의 여유를 선물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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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나서 포켓볼을 샀는데 생전 처음 보는 포켓몬이 나와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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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죽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 생각을 반복하다 보니 /일어나면/과 /죽어 있었으면/이 한 문장에 있는 게 말이 안 돼서 이 센세에게 교정을 요청했다. 이 센세는 눈을 뜨면 천국이었으면 좋겠다,로 고쳐줬다. 멋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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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부암동에서였다. 잡지 만드는 일로 벌어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움튼 게. 졸업하고 조각난 경력들이지만 그래도 꽤나 착실하게 3년 가까이 잡지를 만들어 왔다. 기획 고자인 내게 막막함을 헤쳐나가는 과정은 고통스러우면서도 희열을 느끼게 했다. 누군가 나의 글을 읽어주는 건 부끄러움이면서도 기쁨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는 막막함 뒤에 더 큰 막막함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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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엔 감정이 극에 달해 결국 울었다. 카톡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는 거짓말쟁이는 그룹웨어가 도입돼 핸드폰으로도 결재를 해줄 수 있음에도 이를 전혀 활용하지 못한다. 덕분에 우리는 일이 더 힘들어졌다. 페이퍼로 처리를 할 때는 그냥 뽑아 가서 바로 사인을 받으면 됐지만 이제는 사무실에 잘 나오지 않는 거짓말쟁이가 컴퓨터 앞에 앉는 타이밍에 맞춰 계속해서 결재를 요청해야 한다. 그런데 거짓말쟁이가 자꾸 사무실에 나오지도 않고 자기 메일로 오는 청구서를 우리에게 전달해주지도 않아 품의서를 제때 올릴 수 없었고 자주 추가 요금을 더해 품의서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재무팀에서 전화를 해 한숨을 푹푹 내쉬고 따박따박 따지며 나를 몰아세웠고 나는 억울하고 서러워서 그야말로 눈물이 핑- 돌았다. 다른 팀에 갈 일이 있었던 거짓말쟁이는 나를 동반했고, 그곳에서 서열을 무시한 거짓말쟁이의 태도에 P과장님이 나를 불러 /아무리 상황이 그렇다고 해도 그건 좀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나는 죄송하다고 했고 과장님은 /아니 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고. 어쨌든 이건 아니라는 거야. 넌 또 와서 너네 팀장 때문에 욕먹네/ 하며 웃었다. 그게 또 괜히 마음에 닿아서 자꾸 눈물이 나 곤란해졌다. 여기까지도 견디기 어려웠는데 거짓말쟁이는 내가 과장님과 다 해결한 걸 굳이 또 자기가 서열을 무시했던 실장님께 가서 한 번 더 여쭤보라고 헀다. 내가 과장님과 정리한 걸 몰랐던 실장님은 굳이 큰 소리로 과장님을 불러 일을 해결하려 했고 과장님은 왜 자기랑 해결한 걸 또 실장님께 가져갔느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자꾸만 눈이 빨개졌다.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와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로 가 화장실에서 물을 콸콸 틀어놓고 콸콸 울었다. 그런데 또 사랑스러운 P씨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나서 나는 굉장히 곤란해져버렸다. 옆 팀의 L씨는 나의 갑작스런 울음에 어쩔 줄을 몰라하다 퇴근을 했다. 그러고는 늦은 밤에 이하이 한숨 MV 링크를 보내줬다. 나는 잠든 룸메 옆에서 또 곤란하게 그걸 보며 끅끅 울었다. 내가 나를 어쩔 수 없는, 그런 날이 있다. 서러움이 레이어처럼 켜켜이 쌓이는 날이 있고 그런 날은 다정이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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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쉐어하우스에 이번 달까지만 살겠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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