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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병원가는 길에 소환

KNACKHEE 2017. 10. 26. 18:43

바지런히 병원에 가는 길에 부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팀원들 모두 사무실로 소환돼 하는 수 없이 빨간색 부직포 백에 약 세 박스를 들고 하루 종일 청담-신촌-연희동을 횡단해야 했다.

 

요는, 대개 진술서를 내밀면 쪽팔림에 알아서 그만두게 돼 있는데 지읒은 모든 것을 부정하며 보이는 사람마다 붙들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는 거다. 잘못 내보내면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을 것 같으니 강등되는 조건으로 같이 일을 하는 건 어떻겠느냐고 했다. Y님이 똑부러지게 대리는 부서장이 없을 때 부서장을 대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지읒에겐 그런 능력이 없으니 어려울 것 같다고, 차라리 다른 부서로 갔으면 좋겠다고 일갈했다.

 

나는 부장님만 믿고 가려던 회사에도 안 가겠다고 말했는데 정말 이러시면 안 된다고 하소연하듯 얘기했더니 부장님은 껄껄 웃으며 왜 그렇게 성급했느냐고 하셨다. 나는 꺽꺽 울고 싶었다.

 

혼란한 대화를 끝내고 사무실을 나와 각자의 길로 뿔뿔이 흩어져 있을 때 다시 전화가 왔다. 지읒이 다른 부서로 가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그대로 하는 조건이면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팀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모두 괜찮다,고 했고 다만 각서를 쓸 때 우리를 근거 없이 비방하거나 우리의 일을 고의적으로 훼방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넣어야 할 것 같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이를 정리해서 전달했고 부장님은 일단 알았다,고 하셨다.

 

뭐가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근태와 법인카드 만으로도 자를 근거는 충분하다고 했으면서. 아. 나오는 길에 피하려 했던 푸룬을 만났다. 지읒과 썸을 타던 푸룬은 온갖 인생의 선배인 척은 다 하면서 너네가 힘들었던 건 알겠는데, 어떻게 회사에 믿을 사람이 하나 없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윗선으로 바로 일을 가지고 올라갔냐, 그건 명백한 너네의 잘못이란 것만 알아둬, 라고 했다. 억울했지만 얘기해봤자 입만 아플 사람이라 입을 다물었다.

 

다시 한 번 분명히 해야 할 건, 우리는 모든 걸 함구하고 여길 떠나려 했었는데, 외부에서 일이 터져서 우리에게 진실을 말할 기회가 주어진 것뿐이다. 그리고 시발. 자잘못을 따지기 전에, 사람을, 그것도 두 명씩이나 죽고 싶은 경지로까지 몰아넣은 인간을, 매일 눈앞에 놓인 죽음의 기회가 왜 나를 덮치지 않는지를 고민하게 했던 인간을 옹호하며 우리에게 돌을 던진다는 자체로 이미 글렀다, 당신은. 그래놓고 우리가 왜 당신에게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느냐고 묻는 건 어째서 짚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들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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