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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올해의 마지막 뜨거운 생활

KNACKHEE 2017. 12. 23.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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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의 자취방 협찬으로 공간 대여료가 굳어 올해의 마지막 뜨거운 생활이자 연말 모임을 하면서 좀 더 많이! 먹을 수 있었다. 민지는 돼지두루치기 같은 것을 대접했고 연마, 했다는 말에 어울리게 맛이 아주 좋았다. 우리는 상을 치우자마자 탱이 사온 독일식 크리스마스 빵과 블루베리가 잔뜩 들어간 파이를 먹었고 역시, 맛이 없을 리 없었다. 심지어 탱은 보온병에 커피까지 담아 오는 정성을 보였다! 민지는 오늘을 위해 사둔 귤도 꺼내고 정말 아무 맛이 안 난다며 모과 차도 내어 주었다.

 

열 번째 뜨거운 생활의 주제는 내가 선정한 포틀랜드,였다. <매거진 B> '포틀랜드' 편을 중점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경쟁하지 않고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힘껏 하는 그 사회가 이상,이라고 생각해 이번 주제를 정했는데 민지는 결국 그 도시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부유한 주변 도시가 있어 포틀랜드의 소상공인들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게 아닐까,라고 했다. 그리고 책 속의 인터뷰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우리도 겪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이야기했다. 포틀랜드가 어떤 요소로 인해 주목받을수록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그것 말이다. 우리 사회가 소상공인들의 제품의 가치를 인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지의 문제도 남아 있었고, 이날의 킬링 포인트였던 소속이 주는 안정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탱이 이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은 예전부터 어느 날 전국 노래자랑에 나갔는데 스물다섯 탱입니다!라고 외쳤을 때 방송 화면에 '탱(25) / 무직'이라고 뜨게 될까봐 걱정이 됐다고 했다. 모임이 진행되는 내내 나는 뜬금없이 이 예시가 생각나 웃음이 터졌고, 결국 우리의 신세 한탄으로 흐른 이야기 때문에 분위기가 쳐질 때마다 탱은 이것을 반복해줬다.

 

 

탱이 사온 빵을 다 먹을 때즈음 언제나처럼 확실한 마무리 없이 뜨거운 생활이 끝났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지. 맛보다는 즐거움에 중점을 두고 고른 케이크에 초를 꽂고 전등을 껐다. 방에 장식해 놓은 전등들이 주기적으로 점멸할 때마다 스미스키는 더 환하게 빛났다. 불을 붙이고 뭘 했는지는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초를 끄자마자 전등을 켜고 케이크를 잘라 먹었던 것 같다. 모임을 하면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다들 공백이 생길 것을 우려했던 것 같은데 우리는 역대급으로 말을 많이 해 스스로에 놀랐다. 그리고 이 모임이 할 말이 없어서 끝내야 하는 날은 오지 않겠구나 싶었다.

 

 

 

(민지의 집엔 오리가 많았다)

 

 

마지막에 했던 젠가와 브루마블이 정말 모임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특히 브루마블은 역시, 한번 꺽인 날개는 다시 펴지지 않는다는 걸 되새김질 하게 했다. 사실 나는 재미없는 인생 살기의 최고봉이라 두 보드 게임을 처음 해 봤는데, 자꾸만 하고 싶을 만큼 중독성이 강한 게임이었다. 꿀잼.

 

덧. 탱의 새로운 필카.

 

아. 이날은 파자마 룩을 입어 보자! 라고 해서 무려 6개월 할부로 긁은 파자마를 준비했더랬다. 사실 그렇게 비싼 건 아닌데 당시 상황이 좀 그랬다. 그래서 정말 똑같은 스타일로 더 찰랑찰랑한 걸 사고 싶었는데 가격이 거의 2배 가까이 차이나 입문용 파자마니까, 하며 포기했다. 파자마라는 개념의 것을 입은 것도 참말 오랜 만이었는데, 자기 전에 갈아 입고 자면 괜히 잘 잘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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