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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다

KNACKHEE 2018. 3. 1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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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아먹었다고 생각했던 자존심이 이젠 나의 자긍심 돼 내 팬들아 떳떳이 고개들길 누가 나만큼 해 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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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팬미팅에서의 사고(이자 본 취향으로의 회귀)로 윤기가 최애로 등극하면서 윤기의 믹테를 다시 들었다. 신기한 건, 본래 이런 쎈 음악들은 취향이 아니라 듣기가 어려웠는데 마음이 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가사고 뭐고 오롯이 최애의 목소리로 채워진 트랙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이점으로 작용해 거리낌 없이 듣게 된다는 거다. 최근에 호석이 믹테까지 나오면서 플레이 리스트를 랩라의 믹테로만 채워서 듣고 있는데 그 결들이 다 달라서 흥미로웠다.

남준이는 대체로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학 때 많이 하던 고민들. 특히 무언가 창작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주로 하게 되는 고민들. 내 목소리를 내고 싶고, 그걸 어떤 방향으로 어떤 창구로 내면 좋을지. 또 그렇게 해서 보여주고 싶은 나의 알맹이는 어떤 것인지. 얼핏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강한 믿음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아이는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법을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모두 알지 못하지만 언론에 드러난 이 아이의 경제적 환경에 비춰 봤을 때 믹테의 고민들은 전반적으로 책상 앞의 고민이다. 물론 데뷔 후에는 '삶의 현장'에 떨어뜨려졌지만 믹테 작업 시작 시점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믹테에서 생활과 생존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그리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에 윤기의 믹테는 생활과 생존에 대한 치열함과 그에 대한 분노로 가득하다. 아마 아니쥬 이전에 믹테가 나왔으면 지금의 믹테에서 보여주고 있는 약간의 희망조차 없지 않았을까. 믹테에서 계속 곱씹게 되는 가사 중 하나가 /성공이 궁해? 아니 난 돈이 궁해/다. 미디를 처음 만지기 시작한 어린 소년은 성공을 하고 싶었겠지. 처음엔 그랬겠지. 하지만 상경이란 루트로 자신을 /삶의 현장/에 떨어뜨린 아이는 점점 '생존'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계는 어려워지고 성공은 묘연하기만 하고 설상가상으로 건강까지 박살난다. 역시 이 아이의 기저에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지만 생활이 궁지에 몰리면 그 믿음은 희석될 수밖에 없다. 희석이 시작되는 순간 삶의 의지도 희석되겠지. 그러다 약간의 '성공'을 맛본 후에 풀어내는 마음이 극적인데, 알다시피 데뷔 때만 해도 /힙합/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아이는 자신이 힙합의 '자존심'을 팔아먹았다고 생각했을 테다. 주위의 시선도 그랬겠지. 그런데 아이는 아이돌의 문법을 아주 벗어나진 않았지만 힙합을 한다. 믹테도 내고 그 외의 개인 작업도 한다. 처음엔 고민했겠지. 자괴감이 들기도 했겠지.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어떤 중요한 것을 세상과 '타협'했다고. 그러다 다시 생각했겠지. 어?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걸 하고 있잖아? 심지어 사람들의 반응도 뜨겁고. 타협했다고 생각한 결과물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이를 테면 믹테 같은 결과물에도 사람들은 반응했다. 비껴가고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긍정적 동력을 얻는 과정이었다. 아이는 여전히 삶에 대해 의심하고 삶의 이벤트 앞에 초연한 얼굴을 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젠 생존의 무게가 덜어졌으니 역시나 초연한 얼굴로, 여전히 의심하면서 제가 가장 잘 하는 걸 해 나간다. 세상을 아주 조금은 긍정하는 마음을 덧붙여서.

호석이 믹테는 색감부터 호석이었다. 빌보드 이후의 믹테라 앞의 두 믹테와는 결이 확연히 다르다. 사람의 결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장 많은 희망과 앞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어려움도 이야기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 나름의 고민을 녹여냈지만 앞의 두 믹테보다 덜 진하게 읽히는 건,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자기 이야기를 써 온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믹테는 모든 감상을 떠나서 '덜 이야기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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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믹테들의 결을 빌어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생존/의 위협을 느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내보낼 수 있는 것엔 확실한 차이가 있다는 것,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평행 그 결핍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거다.

+180328 이후 덧
어른이란 사람이 어떻게 이십만 원이 없을 수 있느냐는 말을 들었고, 나는 그게 아주. 아주. 아주.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십만 원은커녕 이천 원도 없을 수 있는 게 가난한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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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는 길엔 자꾸 마음이 텅 빈다. 나는 언제나 쓰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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