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저기야 본문

DAILY LOG

저기야

KNACKHEE 2022. 12. 3. 21:14

 

작가가 본격적인 추상 작업을 시작하기 전의 초기 작품들이 많아서 그 파트만으로도 신선하고 흥미로운 전시였다. 특정 사조가 있고 그 무리 중 하나로 인정받는 건 물론 여러 측면에서 좋은 일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의 작품 세계를, 조금 극단적으로는 작가의 삶을 아주 납작하게 만들어 버리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봄의 소리>는 겨울의 끝자락에 봄을 알리며 내리는 봄비 소리 같았다. 점들이 전하는 차분한 율동감이 좋아서 전시 동선을 따라가며 보고, <우주>가 놓인 분리된 공간에 갔다가도 다시 와서 보고, 전시장의 출구를 마주했다가도 다시 이 작품 앞으로 돌아와서 봤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중력에 의해 밀도 높게 떨어지는, 끝이자 시작을 알리는, 그런 비. 그렇다면 이건 그냥 삶 자체다. 이 작품은 1970년대 뉴욕 시기의 완전한 추상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시초가 되는 그림이라 미술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한다. 뉴욕 시기의 점으로 이루어진 대표작들은 꼭 어떤 수도修道를 위한 작업같이 느껴졌다.
벽 한 면 가득 그려 놓은 연표에 맞춰 전시된 작품들을 섬네일로 배치해둔 기획이 정말 좋았다. 이런 친절이라니. <우주>를 밀폐된 공간에 넣고 블랙월을 만들어 보여준 것도 진짜 좋았고. 갤러리 대표님이 어떤 분이길래 이런 작품들을 한데 모아 전시를 열 수 있는 거지, 하고 궁금해 찾아보니 2019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우주>를 구매한 컬렉터셨다.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이 국외로 반출되는 걸 우려하는 지인의 말을 듣고 고민 끝에 소장하셨다고.(이 지인은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님이라고 한다) 시대마다 놓인 이러한 다소 절박한 사명감 덕분에 많은 '우리의 것'이 유지되고 있는 것일 테다.

그에게 푸른 색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해졌다.

 

 

첫 일정과 마지막 일정 틈새에 덕메랑 석진이 생일도 챙겼지.

 

침대에 누워 자기 전에 하는 일 중 하나는 새로운 음악 탐색이다. 좋아하던 아티스트의 신보도 들어보고 누군가가 테마를 정해 큐레이션한 곡들도 들어보고 새로 나온 앨범 중 커버가 취향인 앨범도 들어본다. 최유리 님은 재작년, 그런 여름밤을 보내다 만나게 된 아티스트다. 싱글 앨범으로 발매된 '동네'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래도 되나. 이렇게 좋아도 되는 건가.'
이번 공연은 새로운 EP 앨범 발매를 기념하는 자리였는데 공연이 있던 주는 무언가를 향유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새 앨범에 있던 '저기야'를 공연장에서 처음 들었고, 듣는 내내 심장이 덜컥 덜컥 내려앉았다. 저기야 다신 이름처럼 소중한 건 부를 순 없겠다,라니. 공연 끝나고 나가면서 친구한테 제발 이 곡 좀 들어보라며 음원 링크를 보냈다. 진짜 천재만재억재. 유리 님 목소리 꼭 다쿠아즈 같다. 단데 담백하고 느슨한데 찰기가 돈다.
공연에서 또 한 번의 눈물버튼은 포토타임 때 들린 "최유리 사랑해!!!"라는 고함에 가까운 응원이었다. 힘찬 응원 앞에서는 속절이 없지.

_

 

꿈에서도 내 꿈은 여전히 내가 되는 것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은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냥 오롯이 나이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상담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나 말고 싫어하는 나까지도 나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단단함을 다짐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