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두 번 쓰는 생일 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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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무 계획 없이 잠들었는데, 무작정 올라탄 버스에서 찾아보니 보고 싶은 영화가 없었다. 정확히는, 있었지만 원하는 시간대에 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설렁설렁 옆동네를 걷다가 하나은행에 들어가서 유효기간이 만료된 체크카드를 갱신했다. 친절한 은행원 언니가 버스 카드 기능을 넣어 줄까요, 하고 묻기에 그게 좋겠다고 했더니 연한 하늘색 바탕에 카카오 프렌즈 중 튜브의 얼굴이 들어가 있는 카드를 내게 보여줬다. 나는 입에 손을 올리며 헉, 했고 언니는 웃으며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 했다. 하나은행 계좌는 자동이체용으로만 쓰고 있었는데 자동이체용 계좌를 옮기고 하나은행 체크카드를 쓸 궁리를 해야지 싶었다. 짱귀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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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 김에 미뤄뒀던 국민은행 체크카드 교체도 해버리자 싶어 옆에 있는 국민은행도 들렀다. 번호표를 뽑으니 내 앞으로 40명이 넘게 있었다. 빠르게 포기하고 가려던 참에 아영이를 만났다. 우린 서로 진짜 놀랐다. 6년 만. 서로가 서로를 단번에 알아봤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어색하면서도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나는 요즘 늘 시간이 많으니 네가 쉬는 날 보자,는 말을 끝으로 헤어졌다. 생일선물 같은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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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도레에 가서는 조금 고민하다 축하해케이크를 주문했다. 이곳의 당근 케이크가 썩 내 취향이 아니었던 기억 때문이다. 결국 축하해, 앞에 굴복했다. 케이크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아서야 핸드폰이 없음을 깨달았다. 순간 드디어 핸드폰을 바꾸는 건가? 하는 설렘과 그렇지만 나는 지금 백수인걸, 하는 걱정이 교차했다.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그런데 카페의 전화를 좀 쓸 수 있겠냐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해서 근처에서 일한다던 아영이를 찾아갔다. 시계 줄을 줄여주고 있는 아영이를 붙잡고 내 번호로 전화를 해 달라며 민폐를 끼쳤다. 핸드폰은 아영이를 만났던 국민은행 1번 창구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다음 만남에서 밥은 내가 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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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생일 케이크.
Goodbye, Happy B-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