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봠&망원

KNACKHEE 2016. 11. 2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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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첫눈을 부암동에서 맞았다, 탱과 함께.

 

시국 때문에 종로-광화문 일대 교통이 마비돼 종각에서 7212에 퇴짜를 맞아 발을 동동 구르며 건너편으로 가 7018에 구애를 했다. 걱정을 한가득 담아 /기사님, 부암동 가나요?/ 하고 물었고 기사님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것도 정오 전이라 가능한 일이었다는 걸 민지민지가 정오가 넘은 시각에 종각역에서 옴싹달싹 못하게 된 후에야 알게 됐다. 탱이랑은 파란대문에서 세 점의 스테이크가 올라간 나시고랭과 서너 점의 새우가 들어간 로제 파스타를 먹었다. 무슨 조합인가 싶었지만 둘 다 맛있었다. 늦잠을 자서 식사를 함께하지 못한 민지민지를 위해 탱이 추천한 작은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서는 내가 반했던 야나문에 갔다. 지난번 커플이 말다툼 끝에 헤어짐으로 결론을 냈던 아늑한 구석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 자리엔 이런 화려한 조명이 있었는데 탱의 dslr로 찍은 말끔한 사진과 내 핸드폰으로 찍은 번진 사진을 보며 다시 한 번 카메라 구매의 의지를 다졌다. 탱도 이곳을 좋아해 줬다. 한창 성향이 무척이나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연애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일전에 이 자리에서 헤어졌던 커플이 그런 이유로 언쟁을 하고 있었다) 민지민지가 빨갛게 상기된 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고생했네. 그리고 어쩐지 우리는 잡담회 같은 걸 결성했다. 이름은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둘에게 노나준 핫팩의 패키지에 /뜨거운 생활/이라고 쓰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와 그걸로 낙점. 가위바위보로 첫 발제자를 정했는데(기분이라도 좋으라고 이긴 사람이 하기로 했다) 내가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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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서 오늘 인적성을 본 보람이를 만나러 망원에 갔다. 호시절에서 두꺼운 문제집을 보고 있는 보람이를 끌어내서 조금 이른 저녁을 먹으려 했는데 봐둔 곳이 브레이크 타임이라 더는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이미 자리가 없기도 했고. 어쩌지 어쩌지 하다가 일단 걸었다. 보람이가 간판도 없는 곳에 음식 이름이 써 있는 것을 발견해서 자세히 보니 음식점인 것 같아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저, ... 지금 식사 할 수 있나요?/ 일본 영화 속 음식점 주인의 느낌을 풍기는 아주머니께서 웃으며 /그럼요!/ 하셨다. 함박스테이크와 코코넛이 들어간 카레를 주문했는데 둘 다 정말 맛있었다! 곁들인 버드와이저도, 건강한 요거트가 뿌려진 건강한 샐러드도 좋았다. 우리는 여기서 오래오래 식사를 했다.

 

 

 

 

 

 

 

조금 길을 헤매다 찾아간 /우아하게/는 오래된 식물원의 느낌이 났다. 남자 두 분이 하시는 것 같았는데 남자의 감성이라곤 믿기 어려워 그런 취향인 건가, 하고 의심해 보기도 했다. 주문을 받으시는 분은 엄청 소근소근 얘기하셔서 귀 기울여 듣게 됐다. 보람이가 주문한 에그커피는 에스프레소 위에 커스타드 크림 같은 에그폼이 올라가는데 진짜, 진짜, 진짜! 맛있다. 짱맛. 다음에 또 와서 저걸 먹어야지 싶었다. 내가 주문한 청귤차도 좋았다. 카페에는 길고양이들이 와서 손님들의 애정을 담뿍 받아 가곤 했는데 서로 껴안고 자는 녀석들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그들을 한참 들여다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늘 그렇지만 우리는 근황을 이야기하고 주워듣거나 목격한 동기들의 근황도 덧붙이고 첨언하지 않을 수 없는 나라의 상황이나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가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보람이는 최근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과 스터디에서 눈에 들어온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해줬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자기가 가고 싶었던 교육 회사에 최근 최종 합격한 남자 동기 T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그는 그걸 위해서 그렇게 애쓰지는 않았다. 교육 봉사며 멘토링이며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지금 합격한 곳에서 인턴도 짧게 하고. 심지어 최종 면접을 보는 12명 중에 남자는 그 애뿐이었다고 했다. 물론 어느 정도 준비가 돼 있었으니 그런 기회도 잡을 수 있는 거였겠지만서도. 그 아이가 그곳에 합격해 기고만장해서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는 보람이에게 한 말은 곱씹을수록 괘씸하다. /그런데 그게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야?/라니. 보람이는 까놓고 얘기해서 딱히 하고 싶은 일은 없다고 했다. 돈을 벌어서 가계를 영위하고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예전부터 생각해본 문제인데, '꿈'으로 포장된 하고 싶은 무언가가 확고한 사람들은 자신이 그 자체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싶다. 확고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하고 싶은 게 없었던 사람도 그냥 할 만 하겠다고 생각해 들어간 곳에서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설령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도 문제가 될 건 없다. 보람이의 경우처럼 하고 싶은 일은 정확하지 않을지라도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것은 무궁무진할 수도 있다. 어떤 것도 확실하게 옳지 않고 어떤 것도 확실하게 틀리지 않았다. 각자의 삶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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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동 준비. 발이 커서 좋은 날이 올 줄이야. 맨 라인도 문제 없다. 함께 온 스티커는 짱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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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선배가 여자 친구 자랑을 하도 해대기에 /니 연애 너나 재밌지!/ 하고 길바닥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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