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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11 _ 이번 주 말씀

KNACKHEE 2016. 12. 11. 20:51

★마태복음 01장 18절-25절 "의로운 사람, 요셉" _ 김기석 목사님

마음의 고요함이란 단견을 갖고 살게 하는 것들에 머물러 있는 우리의 시선을 차단했을 때 얻을 수 있다. 이를 테면 생존 같은 것들. 물론 생존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생존 너머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코앞의 생존에서 조금만 떨어져서 상황을 바라보면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넘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오늘 본문에는 /낳고, 낳고, 낳고-/가 반복해서 나온다. 사실 이 족보는 의도적으로 3대를 생략해 완전함을 나타내는 수 14에 맞췄기 때문에 아주 정확하지는 않다. 혹자는 이를 두고 성경의 미심쩍음을 주장하지만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완벽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뤄진 것임을 거듭 강조하기 위한 것일 뿐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는 언제나 예수님과 동정녀 마리아만 부각돼 왔다. 그녀는 서양 미술사에서 늘 영원한 젊음과 완벽한 모성으로 표현돼 왔다. 그에 비해 요셉은 늙고 연약한 모습으로 표현됨으로써 철저히 배제됐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다. 약혼자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듣고는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 가만히' 파혼하려 했다. 이때 '가만히' 행동했다는 건 자신이 받은 상처를 드러내지 않기 위함이고 이는 철저히 타자 중심적인 사고다. 어쩌면 이것이 그의 '의로움'인지도 모르겠다. '임마누엘'을 자각하는 때는 내 곁에 아무도 없을 때다. 내 곁에 아무도 없어 외롭다고 느끼는 고통과 눈물의 자리에서 우리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깨닫는다. 또한 고통받는 이들의 자리로 다가설 때 임마누엘의 주님을 느낄 수 있다. 오늘날 오시는 주님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아픔과 눈물의 자리다. 우리는 지금 누구의 자리, 누구의 곁으로 가고 있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요셉은 가장 취약한 상태에 있는 마리아의 곁에서 그를 보호해줬다. 그가 보여준 행동은 순종의 본보기이기도 하다. 우리의 품이 커져서 우리를 통해 주님이 이 땅에 오실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아침에 교회를 가려고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너어어어어무 추운 거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발을 동동 구르며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는데 옆에 서 있던 외국인 아저씨가 크게 웃더니 춥냐고 물었다. 나는 진심을 담아 잇츠 베리 코올드! 했고 아저씨는 또 웃더니 내게 너 정말 웃기다,고 했다. 왜죠. 남영에 사는 거냐고 묻기에 그건 아니고 교회에 가려고 왔다고 했더니 굳이 또 어느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어서 청파처r치, 하고 답했다. 그 뒤에 아저씨가 또 뭐라고 했는데 나는 알아 듣지 못해서 그냥 웃었다. 마침 신호가 바뀌어서 너무 기뻤다. 횡단보도 끝에서 아저씨가 번호를 알 수 있느냐고 물어서 조금 주저주저 하다가 오케이, 했더니 아저씨는 의외로 명함을 내밀었다. 나도 주섬주섬 명함을 꺼내 내밀고는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는 아저씨의 어설픈 한국말을 끝으로 각자의 길을 갔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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