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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지윤

KNACKHEE 2017. 1. 20. 21:27



나는 지윤을 잘 모른다. 이날 만나서 대화를 하면서도 두어 번 어떤 말을 하기 전에 /나는 너를 잘 모르지만/을 수식으로 썼다. 나는 지윤을 잘 모르지만 지윤은 자신의 일을 차분히, 잘, 알아서 성실히 해 나가서 어느 공동체에서든 챙김을 받기보단 챙겨야 하는 위치에 있었을 것 같았다. 나는 지윤을 잘 모르지만 나는 지윤이 좀 좋다. 함께 준비했던 일곱 명 중에서 지윤은 가장 성실하게 기도 편지를 보냈고 다녀온 후에도 유일하게 만나자는 연락을 해 왔다. 나는 그게 못내 고마웠다. 지윤은 내게 애틀랜타에 가지 못하게 된 이후의 삶을 물어왔다. 나는 솔직히 처음엔 실패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알고 있었다. 수령이 있는 우리나라 북단과 가장 흥했다가 가장 무너진 유럽, 그 외엔 마음이 동하는 곳이 없었다. 내가 품었던 선교지 어디에도 미국이란 나라는 없었다. 당시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고 가장 괜찮은 핑계가 스틴트였으며 그런 마음이었으므로 주어진 선택지 중 가장 괜찮아 보이는 나라를 골랐을 뿐이다. 그뿐이다. 처음부터 갈 수가 없었던 거다.


나는 지윤의 중국계 친구 올리비아를 기억했다. 지윤의 성실한 기도 편지를 받아 놓고 성실히 읽고 성실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성실히였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꽤 성실히 지윤의 기도 제목들을 놓고 기도했다. 지윤은 올리비아를 기억해 준 건 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나는 괜히 쑥쓰러웠다. 지윤은 미국에서 돌아오며 미국에서만 볼 수 있는 걸 사오고 싶었는데 웬만한 건 다 한국에 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결국 롬바드 스트리트의 풍경이 담긴 엽서와 그랜드 캐니언의 장관이 담긴 책갈피를 데려왔다고. 소름이 돋았던 건, 롬바드 스트리트 엽서 뒤편에 Printed in Korea라고 써 있었단 거다. 지구는 둥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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