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뜨거운 생활 01 _ 계속해보겠습니다 본문

DAILY LOG

뜨거운 생활 01 _ 계속해보겠습니다

KNACKHEE 2017. 1. 22. 21:54

 

뜨거운 생활 01

 

일시 : 2017년 1월 22일

장소 : A.FLOAT HOUR

제제 :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_

 

J ; 다들 책은 다 읽으셨지요?

 

T ; 그럼. 욕심을 내서 황정은 다른 책들도 읽으려고 했는데 하나도 읽지 못하고, 오로지 이것뿐이야.

 

J ; 잘했어. 나도 아직 신작을 사놓고 읽지 못했어.

 

T ; 아무도 아닌?

 

J ; 어어.

 

T ; 우리 집에도 아무도 아닌, 백의 그림자, 야만적인 앨리스씨? 다 쌓여 있어.

 

J ; 책은 있으니까 언젠간 읽겠지 뭐. 나는 이 책을 깊이 읽지는 못했어. 깊이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내가 생각했을 때. 그래서 내가 표면적으로 이해한 걸 얘기해보면- 으하하하-

 

M ; 힘내라- 힘내라-

 

J ; 그러니까, 나는 가족이 삶을 이루는 최초이면서 최소의 공동체라고 생각해. 그거에 대해서 계속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가족에 대해서. 사실 이 셋의 가족은 다 결핍이 있잖아. 가족 구성원 자체로도 그렇고 있는 가족 구성원에게서 보편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의 역할을 받지 못해서 정서적인 결핍이 있지. 그런데 사실 모세 씨의 가족은 엄마 아빠 다 있고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이지만 그 역시도 소통의 결핍이 있고 그런 부분들이 있잖아. 결국 가족의 얘기이면서 결핍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우리는 결핍이 있는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잖아. 모든 것이 다 갖춰졌다고 해도 어떤 부분에서는 반드시 결핍이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 그래서 나는 나나 파트에서만 계속해보겠습니다,가 나오잖아. 그래서 나는 그 셋 중에는 나나가 가장 자기의 결핍을 깨기 위해서 노력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어. 내적으로라도. 그리고 또 생명을 갖게 되기도 했고 해서 계속해보겠습니다가 나나랑 굉장히 잘 어울리는 문장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면 나나에게서 태어날 아이는 분명히 가족 구성원의 결핍이 있을 거고 세상 외적인 부분에서도 분명히 결핍이 있을 텐데 엄마가 주는 정서적인 풍요가 있다면 이 아이는 나나처럼 좀 더 세상의 결핍들을 딛고 설 수 있는 아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어. 사실 가족이라는 게, 우리 엄마가 전에 가족도 폭력일 수 있을 것 같단 얘길 했거든. 그렇잖아. 내가 선택한 게 아니고 어쨌든 끊을 수 없는 존재이고 우리한테 주어진 최초의 과제이기도 하잖아. 이 사람들과 어떻게든 같이 살아가야 하니까. 그렇지만 때로는 지지고 볶다가도 위안이 되는 자리일 거고, 가족이란 공동체가. 결국 우리는 무언가를 계속해나가야 하는데 그 안에서 가족을 지키면서도 가족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나의 무언가가 생성돼야 하지 않을까. 가족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고 생각해 나는. 가족의 말 한마디라든지 그 사람들이 주는 게 좋은 면으로 크게 작용할 수도 있고 아주 사소한 말인데도 되게 상처가 될 수 있잖아. 그런 거. 가족으로부터 나를 분리하면서도 그들과 같이 가면서도 그런 자기의 자아라든지 내가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굳건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마음,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그래서 먼저 얘기해 보려고 가져온 건 11페이지랑 12페이지에 있는 건데. 그거는 가장 자기에게 있어서 본질적이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 걸 잃어버렸을 때 이런 마음들인 거잖아. 그래서 혹시 각자 삶에서 중요하거나 아니면 아 이것은 절대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할 본질적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들이 사라져서 허무하다거나 허망하다거나 삶이 무너져 내리는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있지. 넷이서 행복해지자며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일했는데. 가엾어. 어째서 그렇게 열심히 산 걸까. 애자는 나나와 나에게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준 뒤, 언제고 그런 식으로 중단될 수 있는 것이 인생이 라고 덧붙였다. 너희의 아버지는 비참한 죽음을 맞았지만 그가 특별해서 그런 일을 겪은 것은 아니란다. 그게 인생의 본질이란다. 허망하고. 그런 것이 인간의 삶이므로 무엇에도 애쓸 필요가 없단다.(pp.11~12)/

 

T ; 상실. 나는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애자라는 캐릭터가 남편이 죽고 나서 모든 걸 다 놔버리잖아. 자식들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도 다 놔버리고. 애자가 금주씨를 정말 사랑했지만 그게 사랑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매몰됐다고 생각했어. 과하게 매몰돼서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기가 되지 못했던 것 같아. 가족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면 가족의 개념을 확장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애자 씨는. 자기 딸들도 결국은 자기와 금주씨와의 사이에서 나온 거니까 안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데 금주씨가 없어짐으로 인해서, 질문에서 그렇게 말했잖아, 인생에서 본질적인 거라고 생각했던 게 사라졌던 게 있느냐. 그런데 그거 자체가 굉장히 위험한 것 같아. 그게 특히나 내 안에서 그 본질을 찾지 않고 금주라는 타인이나 내 외적인 거에서 이게 내 인생의 본질적인 거라고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굉장히 위험한 것 같아. 애자라는 캐릭터가 되게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고 되게 그 상처가, 그러니까 얘가 나나가 아이를 가졌을 때 나나 말고 맨 처음에 얘기한 애가 누구지? 소라. 소라는 나나가 애를 가졌는데 그러면 나나는 애자가 되려고 하나. 나나가 애자가 되버린 건가. 그 말을 할 때 그 목소리에서 뭔가 애기를 갖게 된 거에 대해 기뻐하는 게 아니라 나나는 애기를 가짐으로써 애자가 돼 버리고 말았어. 그런데 그건 되게 불쌍하고 슬픈 일인 것처럼 묘사가 되잖아. 너무 매몰돼도 안 되는 것 같아. 가족이란 거에. 아까 가족이란 게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그 말에 되게 공감을 했어.

 

J ; 그리고 나는 그러면서 이거랑 연관해서 엄마의 역할이랄까. 그런 거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봤었거든.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엄마의 역할들이 있잖아. 엄마는 이래야 하고 애들에겐 헌신적이어야 하고.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 엄마가 아닌가? 보면 순자와 애자가 대비되잖아. 순자는 정말 보편적인 어머니상이고 애자는 그냥 사랑을 하는 여자? 이런 느낌인데 뒤쪽에서 나나인가가 순자는 순자라고 부르지 못한다고. 나기 자체도 그렇게 부르지 않고 너무 어색하고. 그치만 애자는 애자인 거라고 말해버리잖아. 말하자면 엄마라고 인정을 좀 안 하는 느낌? 그런 느낌인데 엄마는 꼭 엄마여야 엄마일까? 그냥 이런? 자기 자식의 삶에 많이 터치하지 않고 그냥 자기 삶을 지키면 그건 엄마가 아닌 걸까?

 

T ; 그것 자체도 너무 폭력적인 것 같아. 엄마는 이래야 돼, 하는 인식 자체를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게. 되게 폭력적인 것 같아. 특히 우리는 여자니까 최상진 교수님의 말을 빌리자면 미래의 어머니들이여 - 이러시잖아. 정말 그런 시선 자체가 여자한텐 너무 폭력적인 것 같아.

 

M ; 그런데 아까 상실에서 애자는 더이상 일어나지 못한 사람이잖아. 엄마랑 비교해봤을 때 순자는 너무나 엄마의 역할을 하느라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이지만 만약에 애자가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더라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면, 그러니까 사랑에 헌신하거나, 엄마의 역할을 하지 않아도. 그랬으면 뭐 그런 맥락이랑 상실은 조금 다른 게 아닌가 싶어. 얘는 그러니까 애자라는 캐릭터는 엄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서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놓아버렸기 때문이니까. 얘가 애기들을 잘 못 돌봤지만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자기 인생을 찾았거나 하면 지금같은 캐릭터는 아닌데 나는 얘가 계속 두 자매한테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다 너네는 노력하지 말아라, 이렇게 부질없는 것을, 자꾸 주입을 하는 게. 자기가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그 점이 엄마로서 자기가 이렇게 망가졌다고 해서 자기 딸들에게 망가지는 걸 강요하는 그런 느낌이고. 나중에 나나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너 혼자 행복해지려고 하냐? 이런 거 있잖아. 그게 약간 그러니까 좀 뒤틀린 것 같은 느낌이야.

 

T ; 뒤틀렸다고? 어떻게?

 

M ; 얘는 엄마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거지.

 

J ; 자기가 없으니까.

 

T ; 자기가 없고 자기를 금주에게 모두 맡긴 것 같아. 본질 자체를.

 

M ; 아니면 J가 말했던 대로 금주를 너무 사랑해서 이렇게 됐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얘한테 사랑이란 가치가 너무 큰데 깨져버렸으니까 내가 없어진 상태로 존재하는 거지.

 

T ; 그게 어려운 것 같아. 요즘 그걸 많이 고민하거든. 나는 나 하나로 충분한 사람이 돼야지. 그렇게 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 혼자 있으면 혼자 있는대로 외롭고 사람이 그립고 그런데 남들이랑 섞여있으면 그 안에서 내가 없어지는 거아.

 

J ; 왜 너가 없어져?

 

T ; 그냥 의견을 수용하는 게 익숙해.

 

M ; 아닌데, T 말 되게 잘 하는데.

 

T ;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래서 뭔가 나의, 내가 나일 수 있는 사람이랑 같이 있고 싶어지는 거야, 이건 욕심이지만. 그런데 사실 그것도 되게 위험한 생각이잖아. 결국은 내가 나일 수 있게 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고 싶다, 그러면 그건 또 타인에 의해서 나를 정의하려고 하는, 타인이 있음으로 인해서 내가 정의되는. 나는 나로 충분한 사람이고 싶다고 늘 말하지만 사실 그걸 원하면서도 누군가와 같이 있길 바라는 거지. 남자친구라든지 언니라든지 친구라든지.

 

M ; 그런데 T가 이제 그러면 내가 나일 수 있게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정해졌고 내가 함께 있을 때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거잖아. 기호가 생긴 것 자체가 그게 너가 아닐까?

 

T ; 그런데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어. 후자는 그냥 절대적 다수야. 대부분의 사람들 속에서 나는 나를 잘 잃어버려.

 

J ; 너가 너일 수 있다는 건 그냥 너의 주장을 할 수 있다는 얘기야?

 

T ;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냥 그런 것 같아.

 

J ; 왜 말하기 어려워? 싫어할까봐?

 

T ; 그런 것 같아. 남 눈치를 많이 봐서.

 

M ; 그런데 그건 그런 의미가 아닐까? 너가 너일 수 있게 하는 사람은 너와 가까운 사람이잖아. 그 절대적 다수의 타인이 그중의 일부가 너에게 어느 정도 선에 가까워지면 그때부터는 네가 나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 아냐? 거리감의 문제가 아닐까? 그런 건 아닐까? 네 남자친구도 원래는 절대적 타인이었는데 네가 계속 만나고 얘기를 해서 너의 그 선을 넘어온 거잖아. 그러니까.

 

T ; 선을 안 넘어왔어.

 

M ; 선이란 말은 내가 나일 수 있는 사람을 구분하는 건제인 건데. 그건 그런데 다른 사람도 그렇지 않나?

 

J ; 남자친구랑 있을 때는 너야?

 

T ; 그것도 아니야.

 

M ; 뭐야아- 나는 누구인가. T는 누구인가.

 

T ; 어, 그런데 나는 진짜 고민이다. 만약에 남자친구랑 헤어진다고 하면 많이 붕괴될 것 같아.

 

M ; 헉. 애자애자-

 

T ; 어 애자.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 자 자체가 지금 D 아니고서라도 전 남자친구도 그랬고. 그 사람한테 많이 의지를 하고. 예전에 보면서 내가 뭔가 이런 의지하는 사람? 의지하는 경향이 되게 심한데 애자처럼 될 수도 있겠다. 남 얘기 같지 않고 되게 무서웠어. 내가 애자처럼 매몰되지 않아야 하는데. 어쩌다 이 얘기가 나왔지?

 

M ; 상실의 경험에 대해서 얘기해 보기로 했는데, 아무튼 T는 애자라는 걸 잘 알겠어.

 

T ; 상실의 기억에 대해 계속 얘기해봐.

 

M ; 아 그런데 잘 모르겠어.

 

T ; 단순한 상실의 기억은 많잖아. 그런데 본질적인 것의 상실의 기억이라고 하니까.

 

J ; 그러니까 본질적이보다는 내가 좀 많이 의지하고 있었던 거? 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던 거. T의 경우엔 남자친구일 수도 있고.

 

M ; 그렇네. (준비해온 질문지 보며) 허망, 허무. 그러면 J는 이럴 때가 있었어?

 

J ; 나는 그냥 잃고 나서 내가 꽤 큰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했던 게 아빠거든. 아빠가 돌아가신 게 아니고-

 

T ; 어, 잠깐만. 놀랐다.

 

M ; 금주씨.

 

J ; 그건 아니고 아빠의 경제적인 위치? 사회적인 위치? 이런 거에 대해서 되게 신뢰를 하고 있었던 거야. 의존을 많이 하고. 그게 없어졌을 때 약간 어,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던?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어떻게 보면 아빠라기보단 경제적인 거지. 경제적으로 탄탄한. 의외로 내가 경제적인 것을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부분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굳이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나는 거기에 대해서 되게. 이정도 있으니까 나는 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그게 없어졌을 때 되게 원망이 되더라고. 아빠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잘 해보려다 안 된 건데 그 사람을 원망한다는 자체가 내 삶의 큰 부분이었단 거잖아. 사실 그게 내가 이룬 것도 아니면서. 그래서 그런 상실이 왔을 때 깨달았어. 좀 음. 사실 삶에서 흔히 말하는 행복의 가장 구심점이 되는 건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불편하잖아. 그런 것들을 적응해 나가는 그런 기간들, 그리고 지금도 좀 그런 것 같아. 그래서 그런 경제적인 거에 대한 상실? 아빠에 대한 신뢰의 상실? 아빠가 그렇게 몰락해가는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들에 대한 실망이랄지 그 후에 우리 가족들에게 보여준 모습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나는 좀 종교적인 건데, 그걸 보면서 인간 사회라든지 인간의 물질적인 것이라든지 인간 자체라든지는 내가 의지할 대상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 의지하고 의존해야 할 것이 아니구나. 단순히 사람이라고 치면 사람은 사랑해야 할 대상이지 의존하고 의지해야 할 대상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좀 많이 했어. 그렇습니다.

 

M ;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아직은 없는 걸 수도 있고. 그냥 이렇게 크게 딱 생각나지 않는 건 아직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 J 말처럼 이게 내가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던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게 어느 순간 기본이 절대로 아니라는 걸 돈을 벌면서도 느끼고 그러는 게 좀 있는 것 같아.

 

T ; 나는 약간 본질적인 거가 약간 지금 이 순간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거? 위험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이걸 포기하면 난 정말 붕괴될 거야. 그런.

 

M ; 아, 그런 건 조금 있는 것 같아. 이제 내가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이런 걸 되게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 나 스스로가. 최근에 일하다 사고를 좀 쳤거든.

 

T ; M 과장이?

 

M ; 어, M 과장이. 내가 이 회사에서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되게 많고 인정을 받아서 되게 빠르게 승진을 했고 그런 게 있잖아. 그래서 내가 사고를 쳤을 때 그 모든 사태를 나 혼자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되게 큰 거야. 그게 책이면 책이 뭐 1000부 이렇게 잘못 들어왔을 때 잘라서 붙이는 것도 하거든. 나름 벤딩도 하고. 그래서 사고가 났을 때 보통은 다 같이 내려가서 하거나 죄송하지만 좀 도와주세요 해서 하는데 나는 이제 혼자 내려가서 조금씩 조금씩 내가 했단 말이야.

 

T ; 1000부를?

 

J ;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하고?

 

M ; 아니 물론 다 아는데 자기한테 말도 안 하고 자꾸 혼자 내려가서 하느냐고 하는데 뭔가 있잖아. 내가 이걸 크게 잘못했으니까 이걸 내가 수습해야겠다는 그게 되게 큰 거야.

 

T ; 책임감이,

 

M ; 어어- 나는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아. 인정받고 싶어 하고. 이게 내 몫인데 못했으니까 내가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만약에 뭐 취직을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되는 기간들이 있잖아. 그때가 사실 제일 의기소침하고 인생에서의 암흑기잖아.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고. 그치? 그런 거 인 것 같아. 내가 만약에 더 자꾸자꾸 사고를 쳐서 더 이상 이 사람들이 나를 더 이상 인정해 주지 않으면 되게 상심이 클 것 같아.

 

T ; 어떻게 보면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거잖아.

 

M ; 어 맞아.

 

T ; 너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J ;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면 되니? 이거 어떻게 마무리해야 돼? 으아 -

 

M, T ; 으아아- 우리 박수 쳐 줄까? 와아아아-

 

T ; 우리 모두 상실을 느끼고 있구나!

 

J ; 조용히 해-

 

M ; J를 부끄럽게 하는 게 너무 재밌다.

 

J ; 그 다음엔 32페이지에 있는 걸 좀 생각해 볼 건데.

 

/끈기고 뭐고 벌써 죽은 것이었는지도 몰랐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면 이렇지 않았을까. 상태가 몹시 부실했던 나방 한마리가 알을 낳으려고 아무 벽에나 달라붙었다가 죽어버렸어. 낳다 말고 기 력이 다해서. 나방은 다만 껍질로 벽에 붙어 있었을 뿐, 점점 더 껍질로 텅 비어갔을 뿐, 그러다 어느 바람 에 문득 떨어져 나갔어. 그렇지 않았을까.(p.32)/

 

J ; 이건 책의 맥락에서 좀 벗어나서 그냥 우리 세대에 대한 걸로 나는 좀 읽혔거든. 특히 아까 얘기 나온 취업 활동 그 기간들에 대한 그리고 그 후에 대한. 사실 내 자리, 어딘가에 있을 내 자리를 찾으려고 다들 되게 열심히 하고 언론에서는 다 그렇게 비춰지잖아. 청년들이 다 되게 열심히 해서 들어가서도 일을 막 이렇게 하는데, 사실은 그냥 걔네 자체가 그냥 다 빈 껍데기만 남은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해봤어. 언제든지 부셔져 버릴 수 있는 그런 상태인 건데 언론에서는 우리들을 그냥 단지 사회적인 게 안 따라줘서 줘서 그렇지 얘넨 너무 열정이 있는 애들이야,라고 너무 우리들의 감정이랄까 정서적인 건 전혀 고려하지 않고 표면적으로만 얘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해봤어.

 

T ; 그래, 뭔가 스펙 쌓고 이런 게 나는 선배님, 같이 일하는 선배님이 그만두고 나가고 나서 그때 달력에 써 놨거든. 선배님이 8월에 나가고 나서 9월이나 10월 달력에 내가 이때쯤 잘 하고 있을까? 진짜 어떻게 살까? 큰일 났다부터 막 난리를 쳤는데 지금은 그냥 회사생활이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고 있어. 선배님이 물론 일을 잘 가르쳐 주셔서 그대로 끼워춰서. 또 새로 오신 주임님이 잘 하니까. 굴러 가는 것도 있지만. 그냥 나는 선배님 만큼 멋있는 사람을 본 적도 없었다,라고 생각했었고 이상한 말이지만 그 누가 와서 이 자리를 메울 수 있을까, 하는. 그런데 또 아무렇지 않게 회사가 돌아가니까. 우린 그냥 톱니바퀴 같은 거구나. 그런데 취업이 안 될 때는 내가 맨날 술 먹으면 가족들이나 친구들한테 맨날 그랬거든. 나 진짜 빨리 톱니바퀴가 되고 싶다.

 

M ; 맞아, T 맨날 그 얘기 했는데.

 

T ; 어, 나 빨리 톱니바퀴가 되고 싶어. 돈을 벌고 싶어. 뭐라도 되고 싶어. 그랬는데 막상 톱니바퀴가 되고 보니까 우린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고 플라스틱 톱니바퀴 같은 느낌인데 그러면 여전히 취업이 안 돼서 힘든 친구들이 있으니까.

 

J ; 너 얘길 듣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시 정리해 봤는데, 그러니까 그런 거였어. 되게 그 자리에서 열심히 있으려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버티려고 하는 건 맞는데 사실 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냥 부품이 되고 있는 것 같단, 그런. 그래서 이런 모임이라든지 다른 모임이라든지 그런 것들을이 필요로 하게 되는 것 같아.

 

M ; 그런데 이 문장이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 자꾸 눈길이 간다. 끈기고 뭐고 벌써 죽은 것이었는지도 모르는데.

 

T ; 사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중에 어디로 이직을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어.

 

J ; 콘텐츠를 만드는 거잖아.

 

T ; 되게 애매해. 이건 지면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M 같은 경우는 책을 만들잖아. 너도 막 그런 걸 만들잖아. 책자로 뭔가 나오잖아. 나는 온라인팀이잖아.

 

J ; 그것도 결과물이 나오잖아.

 

T ; 그런데 그건 그냥 뭘 계속 싸지르는데 잘 모르겠어. 그냥 내가 만약에 이직을 하게 되면 이 경력에 대해서 무슨 경험이라고 말을 해야 되는 거지?

 

M ;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네가 아직 잘 모르겠는 건 좀 더 해봐야 되는 거야.

 

T ; 옛날보다는 조금 뚜렷해지긴 했어.

 

M ; 그러니까. 시간이 더 지나면 조금 더 큰 틀, 큰 틀, 큰 틀이 보이니까. 아직은 움직일 때가 아니라는 거지.

 

J ; T 얼마나 됐지?

 

T ; 1년 좀 넘었지. 1년 2개월?

 

M ; 아직은 아니라구!

 

T ; 그런데 진짜 1년 지나고 나니까 그런 게 보이기는 한다? 옛날보다는 이제, 입사 초창기에는 정신 없었고, 6개월 7개월 됐을 때는. 3, 6, 9로 온다고 하잖아. 이직할까 뭐 이런. 정신 없다가 선배님이 이직한다고 했을 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 내가 이직을 한다면. 내가 이 회사를 천 년 만 년 다닐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여길 그만두게 된다면 나는 이 시간 동안 내가 했던 일들을 뭐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J ; 너 선배랑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거잖아, 이직한 선배랑. 그럼 비슷한 류로 갈 수 있는 거 아냐?

 

T ; 선배님은 약간 OO이라고 패션? 그쪽에서 콘텐츠를 맡아서 콘텐츠 올리고 여전히 온라인, SNS 관리하고 이런 거 하시는데. 음. 모르겠어. 나한테 적성에 맞는지도 모르겠고.

 

M ; 그런 얘기를 차장님이 했는데 네가 1년 했으면 괜찮다는 뜻이야. 그 전에 때려치웠으면 아닌 거고. 그런데 이런 걸 고른 걸 보니 J가 요즘 힘든가보구나?

 

J ; 나?

 

T ; 일은 요즘 어때?

 

M ; 끈기고 뭐고 내가 빈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 그런 상황인 거야?

 

J ; 아니 그런 건, ... 그런 건가?

 

M ; 납득하면 지는거라고.

 

T ; 맞서 싸워야 돼!

 

J ; 그냥 좀 요즘 공허하단 느낌을 많이 받긴 해. 연말부터 해서. 그냥 내가 좀 뭐하는 거지? 이 일은 좋거든? 재미있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인데,

 

M ; 내가 그 대학원 다니던 친구는 초중고를 같이 다녔던 친구를 얼마 전에 만났어. 그런데 걔가 나한테 이러는 거야, 자기 이제 얘는 대학원 졸업하니까 꿈이 가득한 거지.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그리고 대학원 일 하면서 자기는 그동안 쉬지도 못하고 자꾸 일했으니까 돈은 좀 있고 앞으로 창창한 미래가 있어서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자꾸 얘기하는데 M 넌 뭘 하고 싶은데?라고 얘기하는데 나는 할 말이 없는 거야. 나는 뭐 일 얘기밖에는 할 얘기가 없는 거야. 걔가 자꾸 일 말고 너 자신이 하고 싶은 건 없느냐고 물어보는데 그걸 생각한 게 대학 졸업하고 나서는 없는 거야. 내가 뭔가를. T는 운동하잖아. 그런 거. 나를 위해서 뭘 해야겠다. 이렇게 한 적이 없었던 거야. 걔랑 자꾸 얘기하는데 힘들더라고. 이 반짝반짝한 애가 자꾸 나한테 막- 막 뭐라 하는데. 나는 좀 찌들어 있는 것 같고. 내가 고작 생각하는 거라곤 월요일에 회사 가서 뭘 해야지 이런 생각. 주말 되면 집에 그냥 있고 다시 또 회사 가고 그게 단 거야.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렇게 되니까 나를 위해서 하는 건 없구나. 내가 비었구나 이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

 

T ; 나는 다리를 다치고 운동을 못 하잖아. 운동을 못 하고 그냥 회사만 다니다 보니까 어느 순간 야근도 많이 하게 되더라고. 그 전에는 끝나면 운동 간다고 바로 튀어 나가고 그랬는데.

 

M ; 왜, 너 영어학원 다니잖아. 영어학원 아닌가?

 

T ; 일본어.

 

J ; 학원이야?

 

T ; 응. 회사 근처에 일본어 학원이 있어서.

 

M ; 봐라- 얜 뭘 하잖아.

 

T ; 아까 말했던 것처럼 회사 일을 함으로써, 글을 쓴다든지 인터뷰를 한다든지 하는데 그 글이 온전히 내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잖아. 회사의 목소리를 내야 하고 나는 최대한 나를 죽이고 글을 써야 하잖아. 그 어떤 이 콘텐츠 팀, 콘텐츠 에디터의 입장이니까 늘 조심스럽고 뭘 해도 그런 걸 신경쓰니까 나는 정작. 그래 뭐 나는 국문과 나와서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거는 그냥 내가 자위하는 것일 뿐인 거야. 사실 껍데기 같은 글을 쓰고 있는데. 정말 나방 껍데기 같은 글을 쓰고 있는데. 이거는 선배님이 하던 걸 흉내내고 있을 뿐이니까. 내 다음 자리에 누가 오든 그 사람도 역시 OO란 껍데기를 쓰고. 여긴 그냥 그런 자리인 거잖아. 그런데 늘 나도 그래. 아 난 내 글도 써야지. 남는 시간에 글도 쓰고 운동도 하고. 그런데 전혀 그게 안 되는 거야. 평일에 그냥 회사 갔다가 어거지로 학원 갔다가 복습 안 하고 그냥 자고. 피곤하니까.

 

J ; 나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생각해. 글러먹었구나. 아침에 출근해서 막 할 일들을 적잖아. 회사일 반, 내가 할일 반 적으면서 오늘은 영어 몇 챕터를 보고 책은 어디 챕터를 보고 해야지 하는데, ... (절레절레) 회사 갔다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거야.

 

M ; 나는 끈기고 뭐고 -

 

J ; 그러니까 -

 

T ; 진작에 죽었는지도 모른다.

 

J ; 그러니까. 사실 나도 이 회사에 계속 있을 게 아니라 그냥 1년 정도 있으려고 하거든. 그런데 다음을 생각했을 때 내가 뭔가 더 하나를 갖춰야 하는데 아니면 마음은 늘 유학을 가고 싶으니까 그런 걸 위해서 내가 늘 준비를 해야 하는데 뭐랄까 그냥 사실은 의지 부족인데 그래, 내가 오늘 너무 힘들어, 그렇게 자위하는 거랑. 또 어쨌든 2년을 출퇴근을 했는데 통장에 잔고는 없고. 연말에 좀 그랬어. 통장 잔고는 없고 연말에 H랑 B를 만나서 송년회를 하는데 걔네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다니는 회사가 다르니까 연봉 자체가 너무 다르고 인센티브랑 이런 게 다르니까 나는 재네보다 2년을 먼저 시작했는데 나는 뭘 했지?

 

M ; 맞아, 그런 게 자꾸 비교 돼.

 

J ; 나는 경력도 좀 조각난 경력들이니까. 지금 1년 있고 6개월 있고 여기서 지금 6개월인데 1년 버텨봤자 1년이고. 이러니까. 조금. 그래서 나는 조금 허무했어. 연말에 그런 감정들을 느꼈어.

 

M ; 나도 그 대학원 친구를 만나고 느낀 게 허무함이 아닐까 싶어.

 

T ; 한 회사, 지금 다니는 회사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어?

 

J ; 회사가 망할 것 같아.

 

M ;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아.

 

J ; 그것도 그렇고 대표님은, 나는 대표님이 업계에서 그래도 좀, 회사는 작지만 대표님의 뭐랄까 소문난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사람이어서 좋은 선배니까 그거 믿고 들어갔는데, 그 사람은 좋아. 사람도 좋고 자기 일도 잘 하는데 경영자 스타일은 아니고 그래서 회사가 늘 위태롭고 후배를 키울 줄 아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 그냥 자율권을 많이 주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봐,라고 하는데 이제 또 그렇게 혼자 클 수도 있지만 분명히 선배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잖아. 그런 것들이 좀 아쉬우니까. 1년, 내년 여름에, 올해 여름에 1년이 되는데 그때 좀 생각을 해보려고. 가장 베스트는 집에 뭔가가 해결이 돼서 유학을 가는 거? 막 이래.

 

M ; J도 꿈이 있구나!

 

T ; 어디로 유학가고 싶어?

 

J ; 스코틀랜드?

 

T ; 스코틀랜드?

 

J ; 어. 생각을 하는 건 공부하는 것도 거기 출판 전문 과정이 있더라고. 걔네는 그게 옛날부터 있었던 거니까 물론 출판은 계속 망해가고 있는 거지만 그래도 걔넨 뭔가 다른 걸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을까. 아니면 그 외에 아예 다른 걸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데.

 

M ; 어쨌든 여기보다 다른 곳을.

 

J ; 그런데 어쩌면 그냥 도피처로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여기 너무 진절머리 나니까. 거기 가도 사는 건 똑같겠지.

 

M ; 우린 이미 죽은 것이 아닌가.

 

T ; 이 나라는 이미 죽은 것이 아닌가.

 

M ; 아무튼 우린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T ; 출판 쪽에 이번에 5대 도매상인가? 송인서적 거기.

 

J ; 우리 대표님 연말에 책 냈는데, 거기 300권 넣어 놨는데. 그 전에 것도 좀 많이 있었대. 그래서 한 500만 원? 우리는 그 정도 날린 것 같아.

 

M ; 500만 원이 돈이냐.

 

T ; 도매상 그쪽을 잘 몰라서 그런데 책들을 사서 서점에 유통하는 데야?

 

M ; 어. 예전에 지금처럼 교보문고라든가 그런 큰 서점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는 그쪽이 지방 서점을 꽉 잡고 있었데. 그런데 여기 출판은 현금으로 왔다갔다하는 게 아니라 어음이라든가 그런 식으로 돌아가니까. 그리고 얘네가 그 돈을 지불하지 못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했던 거니까 이미 마이너스인 상태에서 그걸 자꾸 숨겨오다가 이번에 터진 거지.

 

T ; 우리 회사 공지가 떴거든. 송인서적 부도 났다고. 새로운 출판 어떤 출판에 대한 문화가 필요하다. 이대로는 다 죽는다. 근데 뭐가 있겠냐.

 

J ; 그런데 나는 웃겼던 게, 왜 텀블벅 있잖아. 거기 들어가서 종종 보는데 최근에 후원한 것 중하나가 자가출판 하고 싶은 사람들을 타깃으로 종이 종류나 판형이나 이런 것들을 소책자로 묶은 게 있었어. 달성률이 거의 1000%였어. 원래 필요한 금액보다 10배는 더 모인 거야. 그런 걸 보면 자기출판, 출판에 대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되게 많다는 거잖아. 그런데 책은 안 사. 늘 자기 얘기만 하고 싶은 거야.

 

M ; 맞아, 요즘에 좀 그렇지.

 

T ; 그런데 나는 오히려 반대로 내 글을 써야 하는데 읽기만 해. 귀찮으니까 남의 글만 읽는 거야. 아, 내 글은 언제 쓰지 이러고.

 

J ; 비축해 두는 거잖아. 너의 글을 쓸 수 있는 그런 걸.

 

M ; 넌 껍데기가 아니라구 -

 

T ; 끈기고 뭐고 다 죽었는지도 모른다. 꺼이꺼이.

 

J ; 외우실듯.

 

M ; 그런데 이거 진짜 굉장한 글귀인데.

 

T ; 잘 뽑았다.

 

M ; 자꾸 생각난다.

 

T ; 다음 질문 해 볼까?

 

J ; 네, 다음은- 이거는 나나가, 94페이지인데.

 

/그렇게 자꾸 나는 뒤쳐지고 나나는 뒤처지고 나도 나나도 뒤처지기를 반복해서 나나는 외롭습니다.(p.94)/

 

J ; 나나는 계속 자기를 나나라고 지칭하는데 이 부분에서 나가 등장하고 나와 나나를 혼용해서 쓰고 그리고 그 둘이 뒤쳐지기를 반복해서 외롭다고 표현하고 있잖아. 나하고 나나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는 걸까, 생각을 같이 해 보고 싶었어.

 

M ; 여기서 처음으로 나와 나나가 같이 나오는 거야?

 

J ; 나는 그렇게 생각을 했거든? 음. 어- 아니구나. 앞에도 종종 있는데 어쨌든 같은 문장에서 나하고 나나가 뒤쳐진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

 

T ; 자기를 분리하는 건가?

 

J ; 나는 어떤 자아고 나나는 어떤 자아일지?

 

M ; 나는 그런 생각했는데. 나는 내가 생각하는 그 감정? 빨리 가고 싶은 감정이 나야. 나는 빨리 가고 싶은데 아무래도 소라보단 늦고, 나나는 멀리서 본 나야. 내 육체 같은 거? 아무리 내가 멀리서 봐도 나는 뒤쳐지는 거야. 빨리 가고 싶은 나랑 내 몸뚱이가 마음을. 결과적으론 내 몸뚱이도 늦고 내 마음도.

 

T ; 에라이- 진짜 외롭습니다. 최근에 누군가를 만났는데 걔가 취직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힘든 거야. 쓴소리도 많이 듣고. 그 친구랑 나랑 막 점점 익숙해 지는 것 같아, 쓴소리 듣고 잔소리 듣고 이래도 옛날 같았으면 내가 울었을 텐데 안 울고 있더라, 신기하다 - 이런 얘기 하다가 그 친구가 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봤어, 그래서 뭔데, 했더니 자기를 분리한대. 누가 쓴소리 하면 지금 쓴소리 듣고 있는 건 다른 나야, 저런- 불쌍하다. 그래서 내가 그럼 그 차장님은 너무 불쌍하잖아! 그 생각이 났다, 갑자기 이거 보니까. 나나는 왜 자기를 3인칭으로 표현할까?

 

M ; 그런데 되게 말이, 이름 자체가 귀엽지 않아?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가, 나나는 이렇게 얘기했다가.

 

T ; T 과자 하나만 줘. 으하하하- T 커피 마셔야지, 이런 거 아냐?

 

M ;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 것 같은데.

 

T ; 되게 뭔가 어린 느낌.

 

J ; 그치? 자라지 못한 느낌?

 

T ; 딴 얘기지만 요즘 논란이 많이 되고 있는 롤리타 컨셉이 생각이 난다. 좀 애자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제때 사랑을 많이 받고 쑥쑥 성장해야 할 때 성장을 못 해서? 약간 어떤 이전의 한 부분이 발육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게 앙닐까?

 

M ; 그런데 나는 소라랑 나나가 있으면 나나가 더 어른스러운 것 같은데. 왠지 그런 생각이 들어.

 

J ; 그래 맞아. 나도.

 

M ; 얘가 더 나아갈, 네 말처럼 더 나아가려고 하는 게 있고 그 애자를 확실히 보고 있다는 느낌? 소라는 아직 애자의 그림자 안에 있다는 느낌이라서 애자가 눈앞에 있지만 보지 못하는 것도 그런 것 같고. 그런 게 어린 건가?

 

T ; 왜 나나는 나나라고 할까? 정말 분리해서 표현할 걸까?

 

M ; 아니 난 그냥 장난친 건데.

 

T ; 그때 애자가 보지 못한 게 소라였냐 나나였나?

 

J ; 소라. 소라가 뭘 사왔는데 뭘 사오면서 이건 애자 거, 라고 그런 식으로 애기했는데 나나가 애자 여기 있잖아 이러고.

 

M ; 그런데 소라가 애자를 못 보고.

 

(글씨가 빼곡히 적힌 M의 노트를 보고 다들 감탄하는 중)

 

M ; 그런데 문제는, 이거 이거는 열심히 읽었는데 얘는 진짜 할 말이 없더라. 아니 여기서 이렇게 세 장으로 나뉘는데 얘네 둘은 뭔가 연결된 느낌인데 얘는 영 다른 얘기 하더라.

 

T ; 그런 것 같았어. 약간 소라하고 나나하고 나기하고 어떻게 보면 되게 확장된 가족이라는 형태잖아. 집도 되게 특이하게 돼 있잖아, 벽 하나 사이에 두고. 또 순자가 얘네를 보듬어서 키우고. 핏줄이 아니어도 가족처럼 계속 오래오래 살 수 있는. 소라랑 나나는 나기한테 가족과 같은 그런 걸 가지고 있지만 나기는 좀 그러면서도 감추고 있고. 사실은 계속 혼자였던? 그런 느낌이었어. 갑자기 뜬금없이 독자들도 보다가 소외된, 나는 되게 소외된 느낌을 받았어, 나기한테. 난 나기랑 되게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뭐야, 너 이빨이 그래서, ...! 그런데 말도 안 하고. 남자! 아직도 좋아해?! 이게 뭐야- 가족들도 모르게 하고.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보면 나중에 대반전이잖아. 사실 엄마도 엄마의 삶이 있었다, 엄마의 남자 얘기가 갑자기 뜬금없이 튀어 나오고. 아- 나기도 나기의 삶이 있었어. 뭐라고 해야 할까. 뜬금없긴 했어. 왜 가족의 이 울타리 안의 이야기를 하다가 정말 바깥에 있는 새로운 걸 끌고 와서.

 

M ; 그런데 이거 재밌다. 페이지 같이 찾아가지고.

 

J ; 이거야. 너네도 다 기억할 텐데, 나기가 나나 뺨 때릴 때. 130쪽에.

 

/아프냐고 재차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프지 않아, 오라버니는 팔을 늘어뜨리고 서서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때렸으니까 너는 아파, 그런데 나는 조금도 아프지 않아. 전혀 아프지 않은 채로 너를 보고 있 어. 그럼 이렇게 되는 건가? 내가 아프지 않응니까 너도 아프지 않은 건가? (중략) 아파? 오라버니는 물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기억해둬,라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이걸 잊어버리면 남의 고통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되는 거야.(pp.130-131)/

 

J ; 가져온 질문은 누군가한테 괴물이 됐던 적이 있는지, 자기가. 아니면 그런 괴물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지. 그리고 난 최근에 소통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이거랑 좀 겹쳐서 읽혔거든. 소통이, 특히 사회적으로 얘기하는 소통 있잖아. 조직 내에서 소통이 잘 돼야 된다, 이런 것들이 정말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면 이 소통이라는 행위 자체가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했어.

 

T ; 강요되는 소통은?

 

J ; 어, 그것도 그렇고 경직된 조직에서는 위에서만 소통을 하잖아. 아래로 소통을 쏟아내는 느낌? 그리고 사실 침묵이 소통이 될 때가 있는데 그런 건 전혀 고려해주지 않고 있는?

 

M ; 그런데 얘가 나나 뺨 때릴 때 내가 다 아프더라. 나한테 막 뭐라고 하는 것 같아가지고.

 

J ; 지가 괜히 다른 데 가서 뺨 맞고 와서는 괜히 나나한테.

 

T ;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화풀이한 거 아냐.

 

J ; 큰 가르침을 주긴 하지만,

 

M ; 나는 내가 나기한테 혼난 것 같고, 맞은 것 같고 막. 근데 이건 진짜 자주 까먹는 거니까.

 

J ; 사실 나나의 행동은, 이때 나나는 어리기도 했고 어린애들이 정말 어린애기 때문에 저지르는 폭력들이 있잖아.

 

T ; 잔인하게 -

 

M ; 개미 죽이기 뭐 이런 것들. 그래서 나기가, 나나는 사실 나기의 아기를 낳고 싶어했잖아 그런데 그거는 처음 알을 깼을 때 엄마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한 게 이런 식으로 이런 걸 가르쳐주는. 애자는 그런 역할을 못 했으니까 나기가 얘를 때림으로써 이런 걸 가르쳐줬으니까 얘를 따르는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집착 그런 건가. 그건 또 사랑이 아닌가. 아무튼 나기는 남자를 좋아하지만. 나나는 몰라. 바보야.

 

T ; 우리도 바보였어! 우리를 이야기에서 쫓아냈잖아!

 

M ; 그런데 처음에 읽을 때는 여자 둘에 남자 하나인 구도잖아. 여자 둘 중에 하나랑 잘 되겠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

 

T ; 나기의 뒤통수.

 

J ; 나는 제일 가볍게는, 가볍다고 해도 되나? 교실에서 내가 방관한 것들.

 

T ; 솔직히 그 생각이 지금 제일 많이 나는데 말하기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많이 방관해왔으니까.

 

M ; 그런 순간이 되게 많았었는데. 나기처럼 누가 뺨을 안 때려줘가지고 지나간 것 같아. 그런데 이렇게 뺨 때려 줄 사람이 없잖아. 떳떳할 사람이 없으니까.

 

J ; 그런데 요즘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인데 내가 떳떳하지 않으면 남을 지적하면 안 되나? 명백한 잘못이어도? 그 자체가 너무 위악적이어도.

 

M ; 나는 좀 그런 게 있는 것 같아. 이 사람이 좀 그런 것 같아, 내가 생각했을 때. 그런데 내가 떳떳하지 못한거를 먼저 생각하는 것 같아. 내가 이걸 말할 자격이 되는가. 그런데 이제 그거는 애들이 잘못했을 때 말해주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나보다 윗사람이거나 나랑 비슷한 사람의 경우에 그렇게 자체 검열 같은 걸 하는 것 같아.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명백하게 너무나 누가 봐도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게 아니잖아, 사실은. 명백하게 분류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봤을 때 이 상황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했으니까 이렇게 해주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대부분일 텐데, 그리고 그거는 내가 생각했을 떄, 내 의견일 경우가 많은데 그 의견을 제시해서 내가 떳떳한가 아닌가가 좀 그런. 대부분 말을 안 하지만. 말을 못 하지만. 생각만 하지만. 난 좀 그런 것 같아. 그리고 이럴 기회가 별로 없잖아. 명백하게 잘못한 거에 대해서 너가 잘못했다,라고 말할 위치가 아니고 그럴 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고. 그래서. 특히 어른한테 뭔가 그건 아니잖아요, 이렇게 말하지 못해서 내가 진짜 비겁하다고 생각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

 

T ; 아, 그런 어른들이 있어?

 

M ; 어 생각보다 다양한 어른이 있거든.

 

T ; 아, 나는 그 생각이 난다. OO에서 잠깐 일했을 때,

 

M ; 그래, 그 어른은 진짜 나쁜 어른이야.

 

T ; 그 어르신이 그 OO대학교 알바하는 언니가 있었는데 엄청 예쁘게 생긴 언니였어. 가만 있어도 남자들이 계속 건드리게 생긴. 자기는 그냥 가만 있고 싶은데. 얼굴에 도화살인가 싶은 얼굴이었어. 선생님이 그 언니한테 자꾸 그러는 거야. 너 정말 남자를 홀리게 생겼어. 눈빛이. 너 정말 남자 홀릴 눈이야, 이 얘길 계속 하는 거야 밥 먹거나 그럴 때. 그 언니가 어느날 아침에 다 뭐할지 적고 있는데 언니가 내 옆에 앉아 있었어. 선생님 바로 앞에 앉았어, 자기 할 말 있다고. 잠깐만요, 저 할 말 있어요. 어 뭔데. 저 일 그만두려고요. 갑자기 그 얘길 막 하는 거야. 선생님 저한테 자꾸 저한테 눈빛이 어떻다는 둥, 어떻게 생겼다는 둥 말씀하시는데 기분이 좋지 않고요 그래서 여차저차 해서 일 안 하겠다고 말하는 거야. 선생님은 길길이 날뛰고, 화내고. 근데 이 언니는 되게 침착하게 그 얘기를, 선생님이 길길이 날뛰는데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또박또박 말을 하고 나는 너무 당황해서 선생님 좀 진정하시고요, 어- 어떡해, 이러고 있는데 그 언니는 막 얘길 하고 갑자기 나를 탁 쳐다보면서 그렇지 않아요? 이러는 거야. 그 순간 너무 당황해서 왜냐면 나는 여기서 일단 계속 일을 하고 있으니까. 아무 말이 안 나오고. 그래서 일단 선생님 진정하시고요, 그 정도 선까지밖에 못한 거야, 그 순 간에. 이게 뭐 나기한테 뺨 맞을 정도의 너가 남한테 상처를 줬어, 그건 아니지만 그 순간에 내가 되게 비겁하다고 느꼈어.

 

M ; 뺨 맞은 것 같겠다,

 

J ; 그 언니의 행동 자체가.

 

T ; 어 그 언니한테 어 내가 동조해주지 않고 맞아요, 선생님, 그 말씀은 너무하셨습니다, 사과하세요! 이런 정의의 사도, 이런 게 안 되는 거야. 그런데 지나고 나서 좀 많이 부끄러운 순간이었던 것 같아. 지났을 때. 이 언니는 어떻게 보면 그때 되게 체구도 작은 언니였는데 덩치도 큰 할아버지가 그거 가지고 기분 나쁘다고 난리 치고. 솔직히 얼마나 무서웠을까, 이 얘길 하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고. 그런데 그때 같은 여자로서 내가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아무 동조도 해주지 못하고 그렇게 앉아 있었다는 게. 그게 퇴사의 큰 원인이기도 한 것 같아. 회사도 이상했지만 그러고 나서. 그 주 지나고 그만뒀으니까. 그 순간 내가 되게 비겁한 괴물 같았어. 그런데 같은 순간이 도래했을 때도 그때는 또 다시 잘 하자, 라고 생각이 잘 안 돼. 같은 상황이 돼서 똑같이 그러고 있을 것 같아. 일단 진정하시구요, 그러고 있을 것 같아. 반성문 쓰시고, 이런 게 안 나와. 무서우니까.

 

M ; 그런데 그 언니 대단하네 진짜.

 

T ; 내가 물어봤어. 그러고 나서 같이 책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언니 언니 진짜 대단하신 것 같아요. 어떻게 그 말을 그렇게 침착하게 하세요, 그랬더니 그 언니가 뭐 이런 일 되게 많이 겪었었어요. 그런데 이런 일 많이 겪었는데 그때 이렇게 말을 안 하고 어렸을 때는 그냥 지나갔던 거야. 그런데 그때 말을 안 하고 그냥 지나가면 계속 반복돼요. 차라리 처음 들었을 때 아, 저는 이런 거 되게 불편해 합니다, 싫어합니다, 라고 말을 해야 다음에 그 사람도 조심하고. 왜냐면 자기가 참고 나만 속상해 하고 하면 이 사람하고 관계도 점점 더 이상해지는 거야. 이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건데 오히려 초반에 정리를 하면 이상한 사람이면 어, 이 여자애 뭐야, 하면서 관계를 끊거나 아니면 계속 관계를 이어가더라도 얘한테는 이런 장난 치지 말아야지, 이런 말 조심해야지 하니까 오히려 관계가 유지가 되는 그렇다더라고. 그런 일 많이 겪었을 것 같았어. 얼굴이 정말. 그리고 나는 이런 일 겪어본 적이 없어서.

 

M ; 괜찮아, 너는 잘생겼거든. 나는 그거 생각난다. 옛날에 강에서 놀다가 동생이랑 나랑 같이 물에 빠진 적이 있어. 그런데 그때 둘 다 같이 살려고 서로를 밟고 올라가려고 했던.

 

T ; 지금도 그때에 대해 얘기해?

 

M ; 아니, 얘길 하진 않지만 나는 가끔 생각해. 이게 내가 좋아하는 동생이고 그러더라도 막상 내가 죽게 되는 순간에는 살려고 발버둥치다 보니까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는 생각이 들어.

 

T ; 어렸을 때야?

 

M ; 응.

 

T ; 그때에 대해서 애기해본 적 있어, 동생이랑? 그때 기억나니?

 

M ; 아니 없어.

 

T ; 약간 암묵적으로 서로 말을 안 하는 거야?

 

J ; 동생도 기억하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는, ...

 

M ; 그것도 모르지. 그거에 대해서 얘기 해본 적이 없응니까. 그때 물에 빠져서 둘이 서로 막 잡아당기고 이렇게 이렇게 하고 있는데 눈 떠 보니까 뭍으로 실려 왔어.

 

T ; 어른들이 구해준 거야?

 

M ; 아니, 누군가가 구해줬어. 거기 놀던 사람이.

 

T ; 거의 죽을 뻔 했네. 의식을 잃었던 거잖아.

 

M ; 어, 그때 그래서 엄마한테 죽을 뻔했다고 하니까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더라고.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어.

 

T ; 동생도 무사히 뭍에 누워 있었어?

 

M ; 어어, 내 옆에 있더라고.

 

T ; 다행이다. 둘 다 의식을 잃었던 거네.

 

M ; 맞아, 그때 되게 서운했어, 엄마한테. 그러네 상실감이네 그게. 엄마에게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이거 있잖아. 남의 고통 같은 걸 생각하지 않는 괴물, 이라고 했지만 그런데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때 상황으로 돌아가도 나는또 그럴 것 같거든. 약간 이성의 영역을 넘어가는 거여가지고. 그래서 막 성자들을 대단하다고 하는 거겠지? 나는 그냥 범인인 거.

 

T ; 범인으로 살기가 가장 어렵단다. 나였어도 그랬을 거야. 우리 가녀린 언니를 밀어냈을 거야. J는?

 

J ; 나는 괴물이 됐던 것까지는 사실 잘 기억이 안 나고, 비겁해졌던 거는 직전 회사에서 그만둘 때 다 같이 가서 얘기를 했거든, 디자이너님이랑 나랑 동갑내기 기자랑 경리 애기까지 넷이 가서 너의, 그런데 그 말을, 뭐랄까 총대를 내가 안 맸어. 들어가서 누군가 얘길 했어야 하는 상황인데,

 

T ; 무슨 얘길?

 

J ; 너의 부당한 처사들 때문에 우리가 그만둘 거다, 그런 얘기를 할 때, 내가 총대를 안 맸어. 그냥 내 동갑내기 여자애가 얘기하게 둔 거야. 나는 거기서 그런 식으로 어쨌든 나 혼자 살아보겠다고 같이 얘기하러 갔지만 말을 안 한 거지. 가서 그냥 동조는 하지만, 동조하고 있었지만 내가 그 사람에게 직접적인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뭔가 하나의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놨다고 해야 하나. 그때의 나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어. 걔한테 어떻게 보면 내가 괴물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실컷 다 같이 얘기해 놓고 정작 거기 가서는 내가 한 마디도 안 하고 있으니까 쟤는 나를 되게 좀 소름끼친다고 생각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M ; 우리 독서 모임이 너무 자기 성찰의.

 

T ; 고해성사 시간.

 

J ; 책이 이래서 그래.

 

T ; 황정은 씨가 잘못했네.

 

M ; 그러니까. 이런 후벼파는 데가 있다니까. 다음으로 넘어가요. 어 숨막혀.

 

T ;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J ; 그 다음은 했던 얘기들, 아까 나왔던 얘기들. 어머니의 역할과 의무. 순자 애자. 그리고 다음 게 마지막인데, 맨 마지막 장. 227.

 

M ; 그러니까, 애자 너무 무서워.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p.227)/

 

M ; 요즘 애니메이션 많이 보니까 약간 애자가 끝대장 있잖아, 주인공의 마음을 왔다갔다, 힘 내지 마, 아무것도 아니야, 계속 그러는- 끝대장 같은 느낌이 들어서.

 

T ; 이건 아까 애자란 사람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정말 놔버린 사람이, 자기 자신을 놔버린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 아닐까.

 

J ; 그런데 나나는 이런 애자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하잖아. 그러니까 나나는 그런 걸 포용할 수 있는 어느정도 마음이 된 사람이고 그냥 그런 인간의 하찮음을 되게 사랑스럽게 바라봐줄 수 있는 사람인 거잖아. 그래서 혹시 본인이 사랑스럽다고 느껴질 때, 아니면 누군가가 사랑스럽다고 느껴질 때는 언제인지 얘기를 해 보면 어떨까. 그냥 인간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워 보일 때?

 

T ; 영화 아수라 봤어? 첫 대사가 그거야. 정우성이 주연이잖아. 회색빛 도시를 카메라가 옆으로 훑으면서 정우성 얼굴은 안 나오고 목소리만 나와. 영화 첫 대사가 그거야. 인간들이 정말 싫어요. 사람들이 정말 싫어요, 였나. 이렇게 말을 해. 나는 그때 아무 생각 없이 영화 보려고 극장 가서 앉아 있는데 되게 와 참 좋다, 첫 대사가 이모양이라니. 그 자체가 너무 좋았어. 요새는 마음이 미움으로 가득 차서 사람들이 정말 싫다는 생각을 많이 해. 사람들 사이에 계속 있으니까 지치고 이럴 때도 와 저 사람 참 싫다 저렇게 말하면서. 과장님 별로였지만 더 싫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인간이 아름다워보이는 순간들은 또 되게 자주 찾아와. 그런데 그게 어떤 그 사람이 나한테 잘 해줘서 사랑스럽다, 이럴 때도 있겠지만 정말 사소하게, 아예 모르는 사람이야. 작게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데 막대기를 잡고 있잖아, 손이. 어떤 여자가 이렇게 잡고 있는데 불거져 나온 마디나 이런 게 사랑스러운 거야. 정말 작은 파편들이. 그래서 얼굴은 일부러 안 봐. 얼굴 보면 실망할까봐. 그냥 그런 게. 뒷목이라든지. 졸고 있는 아저씨 뒷목? 그런 게 좀 그냥 가끔씩 그런 인간의 육체 자체가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 부분 부분, 장면들.

 

M ; 여교사 그 남자애 와-

 

T ; 여교사 봤어?

 

J ; 장난 아님.

 

T ; 야해?

 

J ; 안 야해, 1도 안 야해.

 

T ; 책은 되게 야하던데.

 

M, J ; 책이 있어?

 

T ; 책이 있는데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 처음에 한 번 펼쳤는데 누나 누나 하면서 뭐 이상한 장면인 거야. 그래서 얼른 덮었지. 영화도 되게 야할 줄 알았는데.

 

J ; 야하진 않아.

 

M ; 야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겐 야하지 않아.

 

T ; 아무튼 난 그런 것 같아. 사랑스러워.

 

M ; 그렇게 의미를 두지 않는 순간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 같아.

 

T ; 응 맞아. 기대를 안 해서 그런가, 타인한테?

 

J ; 그럼 내 주변 사람들이 사랑스러울 때는? 뭔가 관계가 있는 사람들.

 

T ; 그 사람들한테도 물론 그럴 때가 있어. 늘 보던 친구인데 그냥 그 친구가 정말 무심코 손을 던져둔 거야, 자기 손을. 근데 그 손이 예뻐 보이는 거야. 아니면 언니의 발목.

 

J ; 주로 신체적인, ...

 

T ; 어, 그러니까 -

 

J ; 페티시가, ...

 

T ; 옴폭 들어간 데 있잖아. 언니가 정말 골이 깊거든.

 

J ; 이를테면, M이 오늘 분홍색 후드를 입고 왔잖아. 이게 사랑스러운 거야. 그리고 T가 오늘 가방을 바리바리 싸 가지고 왔잖아. 그런 게 사랑스러운 거야. 그런데 사실 여기서 나나가 사랑스럽다고 느낀 것들처럼 우리도 뭔가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게 대단한 순간들이 아니잖아. 인간 군상 모습 자체가 그냥 안쓰러우면서도 그러니까 좀 사랑스러운 거잖아. 그래서 마무리가 이런 느낌이라 나는 좀 되게 좋았어.

 

T ; 맞아, 뭔가 위로받은 것 같은.

 

M ; 이렇게 막 후벼파다가 마지막에-

 

J ; 그래도 너흰 사랑스러워 이렇게?

 

T ; 막 너흰 하찮지만 사랑해주겠다 - 나는 이게 황정은 첫 소설이었거든. 내가 읽은 황정은 소설의. 그래서 되게 좋았던 것 같아. 이게 첫 소설이라.

 

J ; 나는 내내 읽으면서 M 생각이 많이 났거든. 나한테 M은 이런 문체의 느낌이야. 그래서 너 생각이 많이 났어.

 

T ; 맞아, 맞아. 맞아, 그랬던 것 같아. 너 생각이 났어.

 

M ; 이제 와서 동조하지 마.

 

T ; 아잇 정말이야.

 

J ; 혹시 자기가 사랑스러울 땐 언제야? 내가 아이씨, 내 자신 괜찮네, 약간 이런.

 

T ; 되게 부끄러운 거지만 내가 뭔가 말했을 때 사람들이 웃을 때. 타인에 의해 정의되는 게 위험한 거 알지만 내가 뭔가 말했는데 사람들이 하하하하 - 하고 웃으면 기분 좋아.

 

M ; 그런데 사람에 의해 정의내리는 게 아니라 피드백이 있으니까 내가 잘 했구나 이렇게 느낌이 오는 거잖아. 그건 뭐.

 

T ; 그리고 내가 어떤 감정을 짙게 느낄 때? 아 지금 이렇게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럴 때 사랑스럽지. 그런데 좀 무섭기도 해. 늙어가면 다 무뎌지잖아. 그래서 걱정이야.

 

M ; 아냐, 늙으면 애가 되잖아. 똑같애 똑같애. 우리가 19살 때랑 똑같은 것처럼. 똑같은 거 같아, 나이가 들어도.

 

T ; 우리가 느끼는 궤는 달라지겠지만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나중에는 못 느끼게 될까봐 좀 겁나. 그래서 그때그때 좀 빨리 써 놓으려는 것도 있어. 나중에 기억 못 하겠지. 미래의 T야 기억 못 하겠지, 지금 감정이 이래.

 

M ; T 진짜 열심히 쓰는 것 같아, 감정을.

 

T ; 너는 사랑스러울 때가 언제야?

 

M ; 어 나는 그럴 때 있어. M야, 이 말 너무 잘 했어!이런 거 있잖아. 이 순간에 이 말, 이런 거.

 

T ; 아 센스 있었어! 이런 거-

 

M ; 아우 말 잘했어.

 

T ; 정말 허를 찔렀다!

 

M ; 어 그럴 때. 잘했어, 잘했어. 일부러 막 보여주기도 해. 어우 잘 말했어.

 

T ; 어떤 말인데?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아니면은 내가 정말 아주 이 사람을 통쾌하게 한 방 먹였다 하는,

 

J ; 타이밍에 맞는?

 

M ; 어 타이밍에 맞는. 그런 거 맨날 이렇게 생각하는데. 약간 T 만나고 그게 더 심해졌는데. 아니 그런 거나 아니면 뭐 팀원들이 뭐 물어봤을 때, 과장님 이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세요 하고 나서 아, 그렇구나 이러고 자리에 가면 M아, 잘했어!

 

T ; 그 사람들 알까, 과장님이 이모양인 거.

 

M ; 아니야 난 다 보여줘. 잘했어 잘했어. 정말 잘 말하지 않았어요?

 

T ; 우리 과장님은 정말 푼순데. 여기 계신 거 아냐 막?

 

M ; 아냐,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맨날 나 스스로 사람들이 나보다 다 나이가 많거든. 제발 품위를 지키라면서. 내가 막 대답을 잘 해놓고도 너무 잘 말했죠? 잘했어 잘했어, 이래가지고.

 

T ; J는?

 

J ; 나는 사랑스럽다기보다는 그냥 내가 좀 괜찮다,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환경에 내가 무너지지 않았을 때? 왜 어떤 순간순간 상황에 사람이 무너질 수 있잖아. 사람의 말이라든지. 나는 그런 거에 되게 많이 흔들리는 스타일인데 그렇지 않고 약간 내가 덤덤하다고 느낄 때 아이씨 나 좀 괜찮은데? 그런 거.

 

M ; 나는 J 그 있잖아, 인스타? 인스타에 가끔 사진 올리고 그런 조각을 캐치할 때 그거 보면서 J가 되게 사랑스럽다고 느껴.

 

J ; 으아, 부끄럽다.

 

T ; 이제 더 신경 써서 봐야지. 더 파편을 찾아서.

 

M ; T는 D랑 헤어져야지, 헤어져야지 하면서 안 헤어지는 게 되게 사랑스러워. 그리고 얘 남자친구가 되게 아끼더라.

 

J ; 얘를?

 

M ; 어. 그때 그 덩치 있는 사람이 T아 이것 좀 먹어 막 이렇게 하고.

 

J ; T는 뭐랄까,

 

M ; 사랑스러워.

 

J ; 어, 넌 사랑스러워.

 

T ; 이녀석들 갑자기 왜 이래. 뭐 더 먹고 싶니?

 

J ; 난 수제버거. 너네가 건강한 연애를 하고 있는지 난 잘 모르지만 그냥 너가 보여주는 것들 있잖아, 인스타나 이런 데서. 얘가 진짜 즐거워 보여.

 

T ; 아, 원래 SNS는 즐거운 모습만 보여주는 거야.

 

J ; 아, 그런 거야?

 

M ; 아니이- 싸우고 잼 통을 던졌다 그랬나?

 

T ; 레몬청을 집어던졌었지.

 

M ; 그렇게 구질구질한 것도 사랑스러워.

 

J ; T야 넌 사랑스러워.

 

M ; 감정을 다한다는 게,

 

T ; 하긴 이전 연애들이랑 다른 건, 많이 싸우는 거. 싸울 때 되게 여과 없이 소리지르고 지랄했던 게 이전 연애랑은 좀 다른 것 같아. 이전에는 내가 말을 안 하고 화가 나도 이러고만 있었어. 제발 뭐가 화났는지 말 좀 하라고 늘 그랬었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은 소리지르고 싸우는 게.

 

J ; 그럼 네 목소리를 내는 거야?

 

T ; 어, 그런 거지. 심한 말도 서로 막 하고. 그런 게.

 

M ; T가 화나서 하는 심한 말도 되게 귀엽다?

 

J ; 뭐야?

 

M ; 얘기 들으면 그 울면서 막 그 막 되게 찌질한 바닥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걸.

 

T ; 진짜 찌질해 귀여운 게 아니라.

 

M ; 그거를 남을 신경쓰지 않고 내가 막 할 수 있다는 게 좀 사랑스러운 지점인 것 같아.

 

T ; 그러면 안 되는 건데.

 

M ; 어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맞아.

 

J ; 일단 내가 준비해 온 건 여기까지고 너네가 더 얘기 나눠보고 싶은 게 있으면 얘기해주겠니?

 

T ; M이 뭔가 준비를 많이 해왔어.

 

M ; 아니 나는 진짜 이걸 일찍 읽었어. J가 이걸 선정하고 나서 난 일주일 만에 다 읽었어.

 

J ; 나는, 내가 말했잖아. 이 모임이 없어질 줄 알았다고. 그렇기 때문에 준비를 안 하고 있었어. 진짜야.

 

T ; 우리는 계속 책 읽었니, 이러고 있었어.

 

J ; 나는 끝났구나,라고 생각했어, 진짜로.

 

M ; 뭔 소리야.

 

T ; 그럴 리가 있니.

 

J ; 그래서 책을 다 읽었다길래 하는 거야? 으하하. 나기 전까지 읽고 덮어뒀거든.

 

M ; 나기가 대반전인데. 그런데 난 자꾸 이걸 생각했어. 이걸 한 권의 책으로 묶을 수 있는 거. 이 책의 주제 같은 거? 너는 그렇게 얘기했잖아.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가족이라기보다는 나는 그 말 있잖아. 얘가 그 간장 소스를 이렇게 해서 우리는 서로 같은 부족이라고 얘기를 했는데 이게 결국 사랑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지 않나 싶은 거야. 가족이랑 좀 비슷한 개념인데, 이제 일그러진 사랑을 한 애자 밑에서 자꾸 애자는 자기만 괴롭고 고통스러우면 되지 소라랑 나나한테 자꾸 얘기하잖아. 막 이게 얼마나 덧없는 건지 아니, 이러면서. 너도 불행해라. 그 밑에서 자라난 두 명의 자매가 어떻게 다르게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나가는지를 보여주고 나기도 완전히 다른 사랑의 어떤 하나의 단면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어. 진짜 뜬금없지만. 그렇게 생각해서 보통 사랑은 좋은 거고 사랑에 대해 찬양하고 그런 게 보통이라면 얘네는 조금 일그러진 상황에서 그렇게 사랑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부족들의 모임이랄까 그런 식으로 읽었어.

 

J ; 나는 그 한 명이 하나의 부족으로 존재한다는 것도 좋았어. 굳이 여럿이 아니어도 그 하나만으로도 괜찮은 거잖아.

 

M ; 얼마나 사람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걸까.

 

T ; 이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되면서도.

 

M ; 나나는 애기를 잘 키울 것 같은데. 그런데 모세씨 어떡해? 되게 이유도 없이 차여가지고.

 

J ; 아버지가 요강 안 닦아서.

 

T ; 왠지 모세도 아내한테 똑같이 그렇게 할 것 같은 거야. 희생을 강요하고.

 

J ; 난 그것도 소름끼쳤어. 냬네 엄마가 그날이 길일이니까 그날 배를 갈라야된다고.

 

T ; 요새도 그런가, 실제로?

 

M, J ; 그런 사람들이 있겠지.

 

M ; 사람은 다양하니까?

 

J ; 그럼, 모두가 하나의 부족이니까. 그런 부족도 있겠지.

 

T ; 엄마가 되는 거에 대해서 생각해봤니?

 

J ; 나는 사실 그게 진짜 상상이 안 되는 부분 중에 하나야. 지금 만나는 사람도 없으니까 결혼 자체도 되게 멀리 느껴지고 안 할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하고. 엄마가 된다는 게 나만 생각하면 안 되잖아. 그 애한테 내가 가장 좋은 걸 줄 수 있는지? 나나도 그런 얘기 하잖아 모두가 그런 고민을 하면서 엄마가 될 준비를 하는지. 이 세계는 괜찮은지. 그런 것들도 좀. 만약에 애를 낳으면 여기서 안 키우고 싶다, 그런 생각은 좀 해. 애가 자랄 환경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하는 것 같아. 해외가 가장 좋겠지? 아니면 여기면 좀 지방으로 갈까? 막 이런 것들.

 

T ; 나는 엄마가 된다는 생각을 감히 못 하겠고. 겁이 나고. 그 애 하나를 한 인간을 책임져야 하는 거잖아. 늘 그렇게 생각을 해왔고 뭔가 그 애는 아직 만나본 적이 없으니까 정이 안 가는 거야. 모성애 같은 게 없잖아. 그러니까 얘가 뭔가 태어남으로 인해서 내가 포기해야 할 것들만 생각을 하게 되는 거야. 지금의 자유를 좋아하고 하니까. 그런데 가장 크게 겁이 났던 건 대학교 마지막 학기 때 인권에 관련된 수업들 들었다? 그 선생님이 전과도 있었어. 사회 운동하고 시위하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잡혀가고, 전과 7범인가 그랬어. 그런 교수님이셨는데 배움학기제인가 그런 걸로 초청된, 학생회에서 부른 선생님이었거든 그때 어느 수업이었던가 세월호 유가족을 모시는 자리를 마련한 거야. 나는 그게 솔직히 겁이 났어. 너무 큰 불행을 직면한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을 실제로 교실에서 본다는 게 너무 겁이 났어, 수업 전에. 와서 앉아서 그분들이 세 분인가 네 분인가 오셨는데,

 

J ; 그때가 세월호 직후였나?

 

T ; 1년 되기 전이었을 거야. 세월호가 2014년 4월 16일이었잖아. 내가 아마 그 다음해였을 거야. 2015년 1학기 때 그때 그 수업을 듣고 졸업했으니까 1년 좀 넘겼을 때? 그 사람들은 계속 싸워온 거야. 광화문에서 시위하고 서명하고. 그 사람들 얼굴이랑 표정이 너무 안 좋은 거야. 그리고 관련 영상을 틀어놨어, 그 분들을 앉혀 놓고. 보다가 한 분은, 정말 수없이 이 영상을 보셨을 텐데 또 뛰어 나가서 우시는 거야. 그걸 봤을 때 애를 낳는다는 건 되게 무서운 일이다. 나는 개를 키울 때도, 중학교 때 개를 처음 키웠는데 개가 너무 사랑스럽고 좋지만 겁도 났어. 얘가 나중에 죽었을 때 상실감을 견딜 수 있을까, 그걸 하나 더 늘리고 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만으로도 나중에 한 사람씩 사라져갔을 때 나한테는 엄청 큰 충격으로 다가왔단 말이야. 이런 존재를 늘려가는 게 나한테 맞는 걸까. 그걸 물론 나중에는 어른이 되면 겸허히 수용하고 관계성의 지속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애를 낳고 엄마가 된다는 건 더 큰 것 같아. 그 존재가 생긴다는 게. 10개월가량을 뱃속에 가지고 있다가 내가 걔를 낳고 이제는 걔랑 동고동락하면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니모를 찾아서처럼.

 

J ; M은 어때? 결혼이나 애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야?

 

M ; 나는 이제 막 언제 하고 그런 건 아니지만 되게 막연하게는 생각하는데 요즘에는 결혼도 안 한다는 사람도 많고 애도 안 낳겠다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태어나서 되게 행복했거든. 그래서 그 아이한테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나는 태어나서 행복했으니까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좀 있어. 나는 행복하니까. 그래서 나도 뭐 사실 뭐지, 그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런 건 있어. 내가 살면서 어떤 가치가 중요했는지를 생각하면서 애한테 어떤 걸 가르쳐주고 싶고 그렇게 막연히 생각하는 건 좀 있는 편이야. 나도 J처럼 만약에 애가 있다면 역시 지방에서 키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연과 함께.

 

J ; 자연을 아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

 

T ; 서울에선 별로 키우고 싶지 않아.

 

M ; 결혼은 하고 싶고 애기를 갖고 싶은 건 내 욕심이기도 해. 나는 되게 욕심쟁이니까 남들이 하는 건 다 하고 싶고. 내가 이렇게 막 내 소중한 걸 잃어버릴 수 있는 걸 감수하고 이런 건 아니고 남들 하는 건 다 해보고 싶어. 나이도 들어보고 싶고.

 

T ; 걱정 마, 안 말려.

 

M ; 결혼도 해 보고 싶고. 그 정도는 생각했어.

 

T ; 와, 이게 참 건강한 욕망인 것 같아. 표정이 정말 욕심으로 드글거리는.

 

M ; 난 욕심쟁이니까!

 

J ; 나는 되게 내가 태어나서 행복했어,라고 말하는 사람을 최근에 처음 봤어.

 

T ; 나도. 나는 왜 태어났을까 이런 사람들만 많이 봐서.

 

J ; 삶은 왜 고통의 연속이지? 주로 이런 얘기들을 하니까. 되게 건강하구나.

 

T ; 건강한 욕망이랄까. 이 욕망꾸러기.

 

J ; 건욕.

 

M ; 건욕이야!

 

T ; 그런데 방금 정말 그런 표정이었어. 난 다 해볼 거야!

 

J ; 그 대학원 친구 못지 않게 반짝반짝한데?

 

M ; 그런데 그 대학원 친구 만났을 때도, 요즘 애들은 다 그런 생각인가봐. 여자애들 만나면 결혼은 할 거니, 어떻게 할 거니. 그런데 걔는 결혼을 할 생각은 있더라고. 남자친구랑 좀 오래 만났으니까. 그런데 엄청 단호하게 난 애기는 안 낳는다고.

 

J ; 아, 진짜? 나는 애기는 낳고 싶은데 그 애 낳는 물리적인 자체가 나한테는 너무 두려움이야.

 

M ; 남들 다 하는 거, 해봐야 하지 않겠니?

 

T ; 아이고, 웃겨. 이건 거의 뭐 장례식 빨리 하고 싶어, 남들 다 하니까 나도 해 보고 싶단 말이야. 내가 못 보지만, 해 보고 싶어!

 

M ; 내가 볼 수도 있지. 장례식도 보고 말겠어! 누가 오는지 지켜보겠어. 그런데 그렇게 딱 매정하게 말하더라고. 되게 단호했어. 이 세상이 점점 더 힘들어질 뿐인데 더 힘들어질 세상에 내 자식을 낳아야 되니? 나는 그냥 우리 둘이 벌어서 둘이 행복하게 살래, 그러기로 했어. 이렇게 말했어.

 

T ; 그런 애들이 꼭 제일 먼저 애 낳아서 야 백일잔치 한다, 와라. 이모가 와줘야지.

 

M, J ; 그럴 수 있다.

 

M ; 여튼 그렇게 단호하게 생각하는 거가. 근데 그건 좀 좋은 것 같다. 결혼을 할지 말지, 얘를 낳을지 말지 다양하게 생각하게 되는 거.

 

T ; 여지가 있다는 거.

 

J ; 옛날엔 무조건. 우리 나이도 이미 늦었고 막.

 

M ; 아냐, 우린 아직 젊어. 창창하다구!

 

T ; 내 친구 작년에 결혼한 거야. 정말 충격받았어. 망치로 맞은 것 같았어. 농담으로 그랬었거든. 추석 연휴에 메리추석 이렇게 연락 왔길래 어 너도 잘 보내라 하면서 형님이랑 언제 결혼하냐? 하하하 했는데 걔가 어 다음 달에 해 이러는 거야. 그래서. 아, 그래. 그냥 해 본 말이었는데. 다음 달이야, 안 그래도 지금 그 얘기 하려고 연락한 거야. 그때까지도 아무 생각 없었는데 막상 현장에 가서 친구가 드레스 입고 사진 찍고 이런 거 보니까 정말 멍해지더라고. 뭔가 고등학교 친구가, 그리고 걔 맨날 교복 바지 입던 애야. 다 교복 치마 입을 때 걔는 태권도 하고 그래서. 제일 일등으로 결혼했어. 정말 남의 일이 아니구나 싶고. 그리고 최근엔 취직한, 고등학교 때 복학한 언니 있었거든. 내가 되게 좋아했던 언니인데 남자친구가 있어. 한 3년 사귀었나. 남자친구가 계속 변리사였나 세무사인가 거의 국가고시 준비하다가 이번에 붙었어. 붙어서 연수원 가 있고 이 언니도 1월 1일부터 OO에 다니게 된 거야. 총무팀 가서. 그래서 둘 다 갑자기 동시에 잘 풀렸어. 그 언니도 곧 결혼하겠구나 싶어서.

 

M ; 너도 곧 갈 거야, D랑!

 

T ; D가 답이 없다, 야. D가 요새 고민이 정말 많아.

 

M ; 맞아, JY도 많아. 그럴 때는 아무 말도 못 하고 힘내! 힘내!

 

T ; 그런데 D가 나한테 엄청 많이 의지를 해서.

 

M ; 서로 의지하는 그런 관계구나.

 

T ; 그런데 얘가 막 그렇게-

 

M ; D가 되게 여리더라. 덩치는 이만한데.

 

T ; 엄청 여려. 말할 때도 보면 조심조심 말하잖아.

 

M ; 아니 내 남자친구가 가만히 앉아 있는데 자꾸 얘를 신경쓰는 거야. 덜어드릴까요? 이러고.

 

T ; 내가 그때 JY 씨를 처음 봤잖아. 생각했던 이미지랑 좀 달라서 신기했어. 되게 성숙한 이미지였어. 나는 연하라 그래서 되게 앳된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당황했다. 고민이 많으니까. 얘가 고민하고 그러는 게 우울해 하고 하는데 내가 옛날에 취업 안 되고 시험 준비할 때 힘들고 이랬던 모습인 거야. 그래서 거기다 대고 너 왜 이렇게 징징대, 이럴 수가 없는 거야. 딱 내 모습이니까. 위로를 해 주고 싶은데 해줘도 그래도 으왕 이러니까. 나도 그랬었고. 감당이 안 되는. 그래서 어제도 하루 종일 싸웠어.

 

J ; 그래도 안 헤어지잖아.

 

T ; 어 그래도 저녁 때 만나면 풀려. 만나면 웃음부터 나, 그냥. 화해하고 그랬지. 그래서 언니들을 보면, 서른셋 언니가 두 분 계시거든. 그런데 두 분 다 결혼도 안 하시고 연애도 안 하고 계셔. 가끔 소개팅이나 하시는 것 같아. 그분들은 그런 게 있어. 결혼을 굳이 해야 되나? 결혼 생각은 없다고 하는 거야. 심지어는 결혼을 한 대리님이 있어. 그분도 그렇게 말하더라고. 결혼해서 내가 남자랑 살고 있지만 남자는 그걸 위해서 필요한 느낌이야. 살아가면서 삶의 동반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굳이 남자는 아니어도 될 것 같아, 라고 말하더라고.

 

M ; 존재가 필요하구나.

 

T ; 소통하고 같이 사는 동거인? 이런 존재가 있으면 외롭진 않겠지. 그런데 솔직히 남자는 극한의 공감의 대상은 아니잖아. 그래서 그런 거 보면 가끔 그런 생각 해. 요즘 결혼 안 하는 독신주의자들도 많고 애도 안 낳는 사람도 있고 하니까 그 언니들이 얘기하는 거 듣고 있다 보면 아, 사실 공룡도 이래서 멸종했구나. 암컷의 권리가 향상되고 굳이 결혼해야 되나. 그래서 애 안 낳고. 독신 공룡 증가, 이렇게.

 

M ; 아니야, 언젠가 공룡처럼 운석이 떨어져서 멸망할 수도 있으니까 뭐든지 다 해 봐야 돼.

 

T ; 다음 발제는 누가 하나요?

 

M ; 아, 그 얘기를 J랑 잠깐 했는데 어떻게 정할지 얘기했었어.

 

T ; 나기는 그런데 그 남자애를 왜 좋아했을까?

 

M ; 그러니까. 그 남자앤 그렇게 싫어하는데.

 

T ; 자기를 때리고 욕하고.

 

M ; 그래 얘가 좀 음침한 구석이 있어. 말도 안 하고.

 

J ; 까만 가마솥이잖아.

 

T ; 맞아. 되게 매력적인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J ; 속을 안 보여 주잖아.

 

M ; 맞아, 안 보여주잖아. 나기의 마음.

 

T ; 오히려 자기한테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M ; 그런 거 아닐까. 얘가 엄마한테, 엄마가 얘를 전심전력을 다해서 키웠잖아. 그런 사랑에 진저리가 난 거지.

 

J ; 그럴 수 있지. 그래서 여자도 싫은 걸 수도 있지.

 

M ; 그것도 하나의 폭력인데 그런 폭력을 당했으니까. 자기는 그런 사랑을 하기 싫은 걸 수도 있지.

 

T ; 오히려 막 대해주고 이런 게 인간적인 접촉이라고 생각해서. 옛날에 내가 되게 까칠하게 구는 초등학교 동창 남자애가 있었는데 걔를 좋아했던 것 같아. 나중에 그걸 어떤 애한테 상담을 했어. 되게 까칠하게 구는 남자애가 있는데 걔가 좋다. 이상하다. 그랬더니 걔가, 걔는 아는 게 되게 많은 애였어.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을 했었거든. 되게 똑똑한 친구였는데 걔가 그런 얘기 하더라고. 그런 걸 착각하는 심리가 있대. 독재자가 인민들을 굶기고 무섭게 정치를 하잖아. 처음엔 무서워하다가 독재자가 직접 마을에 찾아와서 사는 데 문제 없냐 이러면 아이고 우리 수령님께서 나한테 이렇게 인간적으로 대해주시고, 그런 폭력적인 압제나 이런 거친 방식들에서 느끼는 두려움으로 떨리는 감정을 사랑의 감정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대. 그래서 그 스톡홀름 콤플렉스? 인질이 인질범한테 사랑을 느끼는. 그런 것도 비슷한 심리라고.

 

M ; 여러 가지 사랑이 있겠지. 부족이 많은 것처럼.

 

T ; 아무튼 나기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DAILY 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제_연휴 전날도 연휴  (0) 2017.01.27
사실은  (0) 2017.01.25
핵 부지러너  (1) 2017.01.21
지윤  (0) 2017.01.20
pink atmosphere  (0) 2017.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