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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_연휴 전날도 연휴

KNACKHEE 2017. 1. 2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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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한 민간인을 만났다. 다우니 향이 나는 바디로션을 오다 주웠다, 하며 손에 쥐어 줬다. 자기는 바디로션을 한 번도 챙겨 바른 적이 없다며 난감해 하기에 너는 필요를 못 느껴도 네 피부는 필요를 느끼고 있으니 꼭 다 쓰고 인증샷을 찍어 보내라고 했다. 자리를 잡은 카페는 천장이 높고 통유리창이라 밖이 훤히 보이는데도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연웅이는 의외로 감성적이어서 얘기하다 보면 깜짝깜짝 속으로 놀랄 때가 많다. 사실 그 속 놀람은 장난 섞인 면박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놀려먹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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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님의 피치 크러시는 정말 맛있었다. 쿠님은 빨간 커튼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연극은 언제든 시작될 수 있다.

 

착실히 2년의 조교 생활을 마치고 실업급여와 퇴직급여를 받아 유럽에 다녀온 쿠님은 정교한 여우 모양의 초콜릿을 사다 줬다.(집에 오자마자 까서 먹었기에 사진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종교와 술에 대해 이야기했다. 술이 쾌락의 도구로 이용되고 자신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니라면 괜찮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다. 강경한 이들이 들으면 놀라 자빠질 얘기겠지만. 하지만 쿠님은 누군가 나의 음주로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 역시 안 하는 게 좋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할 테다. 사실 요즘 이걸 고민하게 된 건 이전보다 술을 마시는 횟수가 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혼전순결에 대해 그건 성경에 명시된 죄,라고 이야기하면서 나의 음주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분위기는 무시할 수 없다. 선을 넘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이후라고 생각한다. 한 번으로 모든 게 끝나지 않고 돌이킬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이런 말들은 어떠한 설득력도 가지지 못할 것을 안다. 나는 그냥 불편한 거다. 모르겠다. 바의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나와 쿠님은 얼굴을 가까이 대고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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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린이가(아마도) 버스 기사 아저씨 뒷편에 반짝이는 것을 붙여 놓았다. 버스가 흔들려서 초점이 나갔고 접사가 불가능한 핸드폰 카메라라 또 초점이 나갔다. 결국 회사는 2월로 정리를 하기로 했다. 경영난을 더는 견디기가 힘들어진 까닭이다.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니는 일련의 과정들을 다시 하게 될 걸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답답하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내 조각난 경력을 문제삼을 테니 그것도 벌써 골치가 아프다. 잡지 바닥에 있어서 그런 건가 싶다. 망해가는 바닥이라서. 아무리 생각해도 기존의 판에서는 어떤 답도 찾기가 어렵다. 고민이 많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대만 티켓을 다시 끊는 건데. 월급을 받아도 집의 구멍 난 장독대에 물을 붓는 격의 행위를 하고 있어서 덧없다. 좋아지겠지, 나아지겠지, 마음을 다잡아 보다가도 어느 순간 무너져 버린다. 카드 돌려막기를 몇 달째 하고 있다. 내 잘못이 아니라 더 무력하고 절망적이었다. 드라마에서 가장 막장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걸 나에게 하라고 했던 순간, 어쩔 수 없음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너무 속상해서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엄마는 네가 월급을 더 많이 받는 직장에 들어갔으면 좀 나았을 거 아니냐고 받아쳤다. 그러게. 내 잘못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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