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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ERATURE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마음이 그대로면

KNACKHEE 2018. 11. 10. 00:49

아홉수를 앞두고 백수가 돼 떠나는 동유럽 여행_11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04장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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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일에도 유튜브로 수영로 교회 예배 영상을 봤다. 목사님은 지난 주일과 같은 로마서 본문으로 '마음의 중요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다. 마음이 무너지면 삶이 무너진다. 상황이 변해도 마음이 그대로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마음이 무너져 삶이 불행하게 느껴지는 건 마음을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이 상태를 지속하면 '나'라는 신을 숭배하게 된다. 이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기만 하는 것으론 해결되지 않는다. '주인'의 자리에 모셔야 한다. 그리고 내 행함만으론 마음을 바꿀 수 없다. 내가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가 되는 거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건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하다. 마음의 회복은 천국과 같은 삶의 향유를 가능하게 하고, 마음의 천국을 이룬 이들이 끼치는 것이 선한 영향력이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가벼운 두 손으로 벨베데레 궁전에 방문했다. 이번 여행에서 방문한 뮤지엄들은 대부분 티켓이 인상적이었는데(무하 뮤지엄은 무하의 그림이 있는 타로 크기의 티켓이었고 다른 곳들도 그런 방식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벨베데레는 그 중 압도적으로 힙했다. 어떤 이미지도 없이 새빨간 바탕에 흰색으로 'belvedere'가 프린트돼 있었다.

낮은 기대치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G의 의견에 따라 현대 작가의 설치 작품 전시가 진행 중인 하궁을 먼저 관람했다. 'Donna Huanca'라는 작가의 전시였는데 시각과 청각은 물론 영상물과 전시장 안에서 전시물의 일부로 온몸에 페인트를 칠하고 열을 맞춰 일정 구간을 걷는 두 명의 모델 덕분에 촉각까지 상상해볼 수 있었다. 영문 설명들을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에곤 실레의 라인이라기에 인간 육체에 대한 탐욕과 인간의 근원적 불안에 관한 작품일 거라고 마음대로 추측하면서 전시장을 통과했다. 예상외로 좋았던 전시.










하궁에서 상궁까지는 별로 멀지 않았지만 볕이 내려앉은 풍경에 자꾸만 발걸음을 붙잡혀서 꽤 긴 시간을 들여 상궁에 갔다. 상궁과 하궁 사이엔 손질이 잘 된 정원이 있었는데 그곳을 산책하고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풍경 그 자체로 아름다운 광경도 좋지만 그 풍경 안에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들어가 어떤 '장면'을 만들어 내는 순간이 정말 좋다. 정원의 조각상 중 피리 부는 조각상 앞에선 BTS의 'Pied Piper'가 떠올라 노래를 흥얼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상궁엔 클림트의 <The Kiss>를 보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잘 모르겠다. 클림트야말로 여성을 삐뚤어진 시각으로 보던 이였고 <The Kiss> 역시 남자가 별로 내켜 하지 않는 여자에게 키스하려는 모습이라, 그냥 뭐. 그의 주된 기법이었던 장식적 화풍의 정점을 찍은 작품인 것 같긴 하다. <The Kiss>가 있는 전시실로 가기 전 클림트의  <Judith Ⅰ>를 먼저 만났는데 그 옆에 고흐의 작품이 걸려 있어서 놀랐다. 그의 생 말미에 지냈던 오베르의 풍경을 그린 <The Plain of Auvers>. 생각지도 못했던 고흐의 작품을 봐서 좋았지만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의 느낌이기도 했다. 그런데 잘츠부르크의 헬브룬 궁전도, 빈의 쇤브룬과 벨베데레 궁전도 여름 궁전이면 봄, 가을, 겨울에 지낸 궁전은 어디에 있는 거지.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꼭 영화에서 보던 미국 서부 식당의 느낌이었다. 벽에 걸린 십자가의 예수님 조각을 보며 버드와이저를 마시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부터 먹고 싶었던 소시지와 송아지로 만든 슈니첼을 주문했는데 구글맵에서 본 잘 구워진 통통한 소시지가 아닌 길고 얇은 삶은 소시지가 나왔다. 소시지니까 맛이 없을 수는 없는데 너무 뜻밖의 형태라 당황스러웠다. 메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주문을 잘못했던 것 같다.

서빙을 하는 아저씨는 아주 유쾌했다. 카드로 계산을 하려는데 핀 번호를 입력해야 할 수도 있으니 카운터로 가자고 하기에 그의 속도에 맞춰야 할 것 같아서 조금 뛰었다. 그랬더니 그가 하하- 웃으면서 급할 거 없으니 뛸 필요 없다, 고 해줬다. 기분이 좋아져서 팔에 있는 타투가 쿨하다며 아무말을 시전했다. 계산을 마치고 굿바이 인사를 해주는 표정과 분위기가 어찌나 스윗하던지. 반할 뻔했네. 피곤한 상태에서 맥주 한 잔을 급하게 마셔서 약간 취기가 오른 상태인 데다 배도 불러 노곤하게 좋아진 기분에 그렇게 느낀 걸 수도 있고. 그렇지만 문제없지. 내가 신나는데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람.








유럽에 와서 처음으로 트램을 탔다. 경성인 줄. 유럽은 개인의 생활을 존중하고 워라밸을 맞춰주려는 의식적인 부분에선 분명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지만 교통이라든지 생활 편의, 기술적인 면에선 우리나라가 더 앞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의 그 '앞섬'은 대개 개인의 노동력 착취로 유지된다. 우리의 편리는 우리의 착취당함의 결과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알 수 없음, 의 상태가 되고 만다.

미술사 박물관을 비롯한 고딕 양식의 건물들과 마주할 때마다 대학교 생각이 났다. 평생 공부만 하면서 살고 싶다, 고 생각했다. 미술사 박물관에서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책 표지에 있는 벨라스케스의 <Las Meninas>를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박물관엔 궁정화가였던 그가 그린 왕실 인물들의 초상화만 있었다.

1층의 전시는 대부분 성경 속 이야기를 그린 작품들이었는데 가장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가 성경이었던 시대였음에도 허영과 탐욕이 넘쳐났다는 게 아이러니였다. 이집트를 비롯한 고대 유물을 전시해 놓은 0.5층의 전시실에선 마음이 복잡했다. 약탈의 결과물들을 이렇게 버젓이 전시해 놓다니. 친절하게 해설까지 준비해서.




오스트리아에는 자전거 전용 도로가 어딜 가나 있을 만큼 자전거 이용자가 많았다. 미술사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차가 인도로 들어와 어쩔 수 없이 자전거 도로로 비켜났는데 마침 맞은 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사람이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펴 자신의 눈과 바닥의 자전거 전용 도로 표시를 번갈아 가리키며 지나갔다. 아니이- 저도 알고, 보기도 했는데여- 차가 인도로 왔다고여- 억울.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을 땐 늦은 아홉 시 반쯤이었고 뭔지 모르겠는 역 안의 티켓 기계를 이것저것 누르다 누군가 찾지 않고 간 200포린트를 득템했다. 부다페스트는 무척 도시였지만 직전의 비엔나보다는 좀 더 캐쥬얼한 느낌이라 이태원의 밤거리를 떠올리게 했다. 앞의 도시들과 달리 부다페스트엔 늦게까지 문을 여는 가게가 많았고, 어떤 교통수단의 티켓이든 지하철역에 가야만 살 수 있었던 체코와 달리 역은 물론 버스 정류장마다 티켓 기계가 있었다. 이거지. 사실 체코에선 날이 좋은 게 아까워서 열심히 걸었던 것도 있지만, 교통권을 사러 가다 보면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그냥 걸었던 것도 있다.

숙소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옆의 남자가 담뱃불을 붙였다. 20세기 말까지 공산국가였던 나라는 이런 분위기인가 싶어 조금 위축되기도 했지만 도착한 숙소가 아늑해서 어쩐지 안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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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