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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마음이 그대로면 본문
아홉수를 앞두고 백수가 돼 떠나는 동유럽 여행_11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04장 23절)
숙소에 짐을 맡기고 가벼운 두 손으로 벨베데레 궁전에 방문했다. 이번 여행에서 방문한 뮤지엄들은 대부분 티켓이 인상적이었는데(무하 뮤지엄은 무하의 그림이 있는 타로 크기의 티켓이었고 다른 곳들도 그런 방식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벨베데레는 그 중 압도적으로 힙했다. 어떤 이미지도 없이 새빨간 바탕에 흰색으로 'belvedere'가 프린트돼 있었다.
하궁에서 상궁까지는 별로 멀지 않았지만 볕이 내려앉은 풍경에 자꾸만 발걸음을 붙잡혀서 꽤 긴 시간을 들여 상궁에 갔다. 상궁과 하궁 사이엔 손질이 잘 된 정원이 있었는데 그곳을 산책하고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풍경 그 자체로 아름다운 광경도 좋지만 그 풍경 안에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들어가 어떤 '장면'을 만들어 내는 순간이 정말 좋다. 정원의 조각상 중 피리 부는 조각상 앞에선 BTS의 'Pied Piper'가 떠올라 노래를 흥얼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꼭 영화에서 보던 미국 서부 식당의 느낌이었다. 벽에 걸린 십자가의 예수님 조각을 보며 버드와이저를 마시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부터 먹고 싶었던 소시지와 송아지로 만든 슈니첼을 주문했는데 구글맵에서 본 잘 구워진 통통한 소시지가 아닌 길고 얇은 삶은 소시지가 나왔다. 소시지니까 맛이 없을 수는 없는데 너무 뜻밖의 형태라 당황스러웠다. 메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주문을 잘못했던 것 같다.
유럽에 와서 처음으로 트램을 탔다. 경성인 줄. 유럽은 개인의 생활을 존중하고 워라밸을 맞춰주려는 의식적인 부분에선 분명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지만 교통이라든지 생활 편의, 기술적인 면에선 우리나라가 더 앞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의 그 '앞섬'은 대개 개인의 노동력 착취로 유지된다. 우리의 편리는 우리의 착취당함의 결과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알 수 없음, 의 상태가 되고 만다.
오스트리아에는 자전거 전용 도로가 어딜 가나 있을 만큼 자전거 이용자가 많았다. 미술사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차가 인도로 들어와 어쩔 수 없이 자전거 도로로 비켜났는데 마침 맞은 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사람이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펴 자신의 눈과 바닥의 자전거 전용 도로 표시를 번갈아 가리키며 지나갔다. 아니이- 저도 알고, 보기도 했는데여- 차가 인도로 왔다고여- 억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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