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툴루즈 로트렉 본문
원래대로라면 BTS CONNECT 전시를 봤어야 하는 날이다. 다음 주 것까지 잡아놨었는데 코비드19로 아예 전시 자체가 홀딩되면서 덕메와 나는 다른 할 일을 찾아야 했다. 비워놓은 날이 아까우니까. 이번 주는 덕메가 지난 무하 전시에서 도슨트가 툴루즈 로트렉전을 함께 보면 좋다고 했던 걸 떠올리며 예당 나들이를 제안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지.
도슨트가 일시중단이라길래 덕메를 위해 빨간버스 안에서 메모장에 로트렉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았다. 엉성하고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에펠탑 등 몇몇 포인트들에서는 집어넣었던 정보를 꺼내올리기도 했다. 일단 풀네임부터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유명한 프랑스 귀족 가문 출신이라 이름에 들어간 '알비'는 지역 이름이라고 했다. 이 얘길 하면서는 약간 동방신기 너낌으로 인천 뫄뫄, 부천 뫄뫄 하고 말해보고는 둘 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시에서 가장 기대했던 건 <그녀들> 판화집에 있는 그림들이었는데 한 점도 없었다. '침대에서'를 보고 싶었는데! 전체적으로 아쉬운 전시였지만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짜잔- 하고 나타나는 물랑루즈 세트장은 아주 강렬했다. 꼭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을 통화과하는 기분이라 이 전시의 세계관에 의지적으로 흡수되겠단 마음을 먹게 했다.



이어서 본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에서는 '다닐라 티에니'라는 작가의 그림의 디테일이 좋았다. 주황색 구두를 신고 황급히 어디론가 가는 이의 발끝이라든지, 아저씨의 파란 스타킹 뒤쪽에 있는 노란색 라인이라든지, 작은 살구빛 토끼의 허리에 둘린 시스루라든지!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 전시 공간에서는 창작자는 너무 많고 보여줄 곳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SNS의 활성화로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창구가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원화를 보여줄 수 있는 거랑은 또 다른 거니까. 한 벽면에 있던 '심사위원의 관점'의 말이 인상적이라 기록해둔다.
"(질문 : 그림책 연작을 출판하는 출판사는 한편으로는 작가의 창의성과 작품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의 필요성 사이의 중개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취하는 것은 어려운가요?) 우선 나는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시장이 새로운 작품으로 포화되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아름다운 책을 출판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모든 신간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책에 있어서 최악의 운명은 단순히 '또 하나의 책'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전체를 놓치지는 않되, 비록 형식은 고전적이지만 의도에 있어서는 독창적인 작품을 보다 예술적이고 깊이 있는 제품들과 결합하여 제작하려고 합니다. 특히 후자는 서점이나 사서 같은 중재자 측의 광범위한 지원을 필요로 합니다. 내게 어려운 부분은, 쉬운 길에 의지하지 않고 이 두 가지 경향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당 근처의 식당 사정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가 않아서 우리는 한남동으로 이동했다. 파이프그라운드의 오픈 시간이 30분쯤 지났을 때 도착했는데 이미 식당이 있는 지하에서부터 1층까지 계단을 빙 둘러 웨이팅이 있었다. 우리는 약간 질겁하면서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원래 먹으려던 피자를 먹는 데에는 성공했다. 코비드19고 뭐고. 맛있는 걸 먹는 데엔 다들 용감하네.
배를 꺼뜨릴 겸 덕메와 두 갈래길 놀이 같은 걸 하면서 목적지 없이 걷다 보니 사운즈 한남이 나왔다. 초기 가오픈 기간 이후엔 간 적이 없어서 다시 가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가게 되다니! 그 자체로 신이 났는데 특히 스틸북스 4층의 철학과 사회적 이슈 섹션이 정말 좋아서 그 공간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나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미 들어선 순간 어깨를 들썩들썩 하고 있긴 했지. 낄낄. 스틸북스는 인스타 피드 너머로 보던 것보다 훨씬 좋았고, 계속해서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다. 스틸북스랑 가까운 데 살고 싶다!
역으로 가는 길엔 붕어빵 점포 맞은편에서 그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애옹을 만났는데 다가가면 자리를 피하지도 않고 등을 세워 몸집을 잔뜩 부풀렸다. 미, 미안해, 하고 사과하며 뒤로 물러서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애옹이 제일 쎄지 뭐. 애옹이 최고다 진짜.

2월의 노래들. 누적이라 1월과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DAILY 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0305-08_EARLY, HAPPY SUGA DAY (0) | 2020.03.08 |
---|---|
20200301-04_낡고 지치고 나른했다 (0) | 2020.03.04 |
20200225-28_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0) | 2020.02.28 |
작은 아씨들 (0) | 2020.02.24 |
20200217-18_우리는 밤일까 (0) | 2020.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