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작은 아씨들 본문
원래는 오늘 저녁에 대학원 오리엔테이션이 예정돼 있어서 미리 반차를 내놨는데 코로나로 취소됐다. 이걸 어떻게 회수할 수도 없어서 미련 없이 오전 근무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꼭 극장에서 봐야지! 하고 벼르던 <작은 아씨들> 상영 시간을 확인하고 코와 목에 약간 문제가 생긴 듯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제주에서 올라오던 날이었나 그 전날이었나. 제주 최초 확진자 알람을 받았고, 겹치는 동선은 없었지만 첫날 중문에 있었던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진료를 본 의사는 도대체 뭐가 문제여서 왔는지 모르겠다는 태도를 보이며 약 처방도 해주지 않았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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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다 초코 어쩌고 하는 팝콘에 도전했는데 비싸고 양이 적었음에도 느끼해서 다 먹지 못했다. 역시 팝콘은 카라멜이 짱인 걸로. 에이미가 원고를 태울 때는 속으로 안 돼!를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통쾌하기도 했다. 아마 엄마가 조에게 했던 말인 것 같은데, 분노에 내 좋은 면이 잠식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훈련했다고 할 때는 이 말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TALENT IS NOT GENIUS'(맞을까)라고 들린 부분에서는 재능과 천재를 동의어로 보지 않는 다는 것이 신선했다. 천재의 차원은 재능을 넘어선 것이어서일까. 그렇지만 조가 자신은 누가 알아주기 전에도 작가였다고 말하는 건 못내 좋았다. 스스로 단단한 사람.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내가 무언가 만들고 싶은 사람이 된 것은 많은 창작물들을 가까이에 두고 자랐기 때문이란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에 책이 만들어지는 걸 보는 건 꼭 산부인과에서 창문 너머로 아기를 보는 것과 같은 구도였는데, 이는 당대의 보편적인 가치관인 취집이 아니라 남자와 동등한 존재로 커리어를 이룩하고 있는 조의 상황과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왜인지 기억 나지 않는데, 영화를 보며 이런 걸 적어뒀다. '낡고 사라지는 게 너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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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다닐 때도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고 퇴사 후에도 4년 가까이 인친 정도로 지내던 M언니를 지난 해부터 종종 오프로 보고 있다. 같이 사는 룸메가 꽃을 만지는 사람이라 옆에서 이것저것 가져다가 만들었다며 내민 꽃은 늘 담담하고 볼에 아주 옅은 홍조를 띌 정도의 열정이 느껴지게 하는 언니와 닮아 있었다. 조도가 낮은 곳에서 요즘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던 언니는 이런 말을 했다. "당첨운이 없으니까 나쁜 일에도 당첨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어." 오, 그러네. 이런 발상도 가능하겠네. 좋다.
산과 바다 중 어디를 더 좋아하느냐는 유치한 소개팅용 질문 같은 걸 던지기도 했는데 언니는 하늘에 따라 달라지는 바다보다는 늘 같은 모습이 좋고 특히 여름의 초록을 입은 산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등산보다는 산의 반대편에서 그 실루엣을 보는 게 좋다고. 이 언니 진짜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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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리엔테이션은 취소됐지만 수강신청은 그대로여서 대학원 과목 2개와 비전공자라서 들어야 하는 학부 수업 2개 중 1개를 신청해서 이번 학기에는 총 3개의 수업을 듣게 됐다. 커리큘럼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이미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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