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어제의 2021 본문

어제는 나에게 202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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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 소진 기간이라 연차를 내고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영화관에 갔다. 버스 한 번에 갈 수 있는 영화관이라니. 덕분에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극장에 볼 수 있었다. 시국이 시국이기도 하고 영화가 개봉한 지 좀 지나기도 해서 관에는 리터럴리 나 혼자였다. 중간에 뜬금없이 두 사람이 들어와서 좀 아쉬워지긴 했지만. 여하튼 나한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보람이었고 장례식장에서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서야 안도하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는 게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맑은 얼굴들로 가득한 영화를 봐서 기분도 맑아졌다. 돌아오는 길에 관련 칼럼들을 보다가 스릴러적인 서사가 허술해서 썩 좋은 영화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을 봤다. 마음 속에서 반박이 잔뜩 차올랐다. 스릴러적인 서사는 허술했지만 그렇게 장벽을 낮춰주지 않았다면 내일이 서른인 상고 출신의 여성들이 뭘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영화가 그들을 다루는 방식이 여고생 같았다면 실은 그건 사회가 젊은 여성들을 다루는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는 그걸 미화하지 않은 채로 보여줬을 뿐이고. 또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 연차가 쌓였다고 룸살롱을 들락거리고 있지도 않은 권위를 내세우려 하는 남성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도 생각한다. 나는 여성의 서사가, 그들을 그려내는 모습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딱 떨어지는 수트를 입지 않아도 되고 위스키 잔을 들고 있지 않아도 되고 빈틈없는 추리를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장르적 특성상 그런 것들이 필수 요소인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의 일상 그대로도 할 수 있는 이야기,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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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러 갈 때는 15분이면 충분한데 돌아오는 길에는 30분이 넘게 걸린다. 발꿈치와 발가락이 맞닿을 정도의 좁은 보폭으로 느릿느릿 걸으면서 음악도 듣고 애옹이도 찾고 가끔 만나면 쭈그려 앉아서 귀여워도 하고 밤의 사물들에 시선을 주기도 하느라. 쓸데없는 생각들도 아주 많이 하는데 어제는 이런 생각을 했다. 요 몇 년간 피켓팅을 하면서 알게 된 건 멈춘 것 같아 답답하다며 함부로 새로고침을 했다간 아주 ㅈ된다는 거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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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릭 워렌 목사님 뉴스레터에서 건져올린 것.
"Sometimes you need to change what you're feeling. Sometimes you need to channel what you're feeling. Your greatest ministry will not come out of your strengths and successes. Your greatest ministry could come out of your deepest 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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