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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 Bossanova,
성장한 호구 본문
아침에 건강검진 예약을 하려는데 주민번호가 기억나지 않았다. 찜찜해하면서 잘못된 번호를 부르고는 결국 지갑에서 민증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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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커리어는 나 개인적으로는 도전과 성취와 좌절과 성장이었을지 몰라도 일부 기업 입장에서는 실패이거나 기존의 상황에서 크게 나아질 것도 나빠질 것도 없는 것이었다. 내가 잡지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걸 왜 망설이고 폐일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건지 곱씹다가 생각이 거기에 닿았다. 그리고 직전 회사에서 늘 강조됐던 건 내가 하고 싶은 거 말고, 회사에 필요한, 회사의 결에 맞는 걸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내가 하고 싶은 거, 신나서 잘할 수 있는 게 뭐냐는 말에 대답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전에 없이 좋은 걸 먹고 있어서 체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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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에 회차마다 두 번씩 반복해서 본 <또 오해영>은 미친 사랑 이야기로밖에 읽히지 않았었다. 오 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본 지금에야 비로소, 그것을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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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호구이긴 한데, 호구든 뭐든 어쨌든 같이 일하자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 건 좀 좋고, 호구로 보인 걸 깨달았을 때 민망함을 무릅쓰고라고 결정을 번복해 거절할 수 있는 조금 성장한 호구가 된 것도 썩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