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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

KNACKHEE 2021. 6. 5. 20:14

불과 마티스 전을 보러 갔을 때만 해도 습작이 많으면 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시장 가득한 드로잉들을 보며 거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에게도 연습의 과정이, 대작이라고 불리며 비싼 값에 거래되는 그림들 사이사이에 저런 과정들이 있었다는 게 왠지 모르게 좋았다. 위안, 이 됐다는 건 너무 상투적인 표현 같아서 다른 표현을 찾고 싶은데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
미술관에서 예전에 김환기 그림을 많이 봤다고 어쩜 이렇게 예쁘게 그릴 수 있냐고 얘기를 주고받는 중년 여성분들을 보면서 친구와 저렇게 나이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제 자기 직전에 읽은 젊은작가상 수상집에 수록된 서이제 작가의 단편소설이 떠오르기도 했고. 그런데 한분이 전시 관림 내내 어떻게 이렇게 그리냐며 화를 내듯 감상을 표출하셔서 조금 불편했다.

/아내는 미술 감상에 있어서도 제법이다. 한번 구라파에 다녀오면 미술평론을 해보고 싶단다. 이는 건방진 소리여서 대꾸도 하지 않으니 수년 전부터 아내는 자꾸만 불란서에 가자고 한다. 한번은 술 마시고 돌아와서 "나 파리에 간다, 너도 데리고 가지"라고 한 적이 있은 후부터 아내는 불어 공부를 시작하고 있지 않은가. _ 김환기, <산처기>, 1952/

진짜 김향안 님 너모 멋있고, ... 이건 뮤즈 따위가 아니고 매니지먼트 대표 아니냐고, ... ㅠㅠㅠㅠㅠ

2013년 여름엔 방학 두 달 내내 여길 지나쳐야 하는 곳으로 출퇴근을 했는데 전시는 이제야 본다. 한국화 이렇게 재미진 줄 이제 알았지 뭐야 ㅠㅠ 솔찌키 학교 미술 커리큘럼의 폐해다. 인상주의나 좋아할 줄 알고, ... 그런데 인상주의 진짜 좋긴 좋음, ... 아모튼, 입덕의 가능성은 사고에도 있지만 노출되는 빈도수에도 있다는 건 자명하지. 어쩌겠어. 늦은 만큼 더 바지런히 다니는 수밖에!

유재연 작가님 개인전 <Great to see you> 보면서는 오마이걸 갓 발짝 킹 발짝 어쿠스틱 버전으로 깔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나 반짝이는 밤의 포옹이라니. 어떤 심연에 있더라도 우리가 서로의 구원이 될 거라는 것만큼은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푸른색과 네온의 빛깔을 띄는 색들이 아낌없이 따뜻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니 그런데 어쩜 전시 타이틀도 Great to see you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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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 수업에 힘입어 그림 가격을 물었고, 두 자릿수를 예상했으나 세 자릿수였고, 마침 솔드아웃이었다. 그런데 진짜 카드 한도 남아 있고 솔드아웃 아니었으면 샀을 거다. 다음 전시에서는 한 친구를 집에 데려올 수 있었으면 좋겠네!

마흔다섯 번째 뜨생. 서이제 작가님의 <0%를 향하여>는 소재가 취저였다. 불가항력적으로 사랑하고야 말 수밖에 없는 것들 때문에 삶이 꼬이고 그렇게 꼬인 채로 풍성해져버려서 풀어낼 수도 없는, 어쩌면 풀 의지를 의지적으로 상실하게 만드는 멸망이자 구원인 것들. 0%를 향한다는 제목은 해설과는 좀 다르게 읽혔는데 마이너스의 삶이기에 제로가 목표인 나의 상황과 맞물려 읽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김혜진 작가님의 단편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단편소설의 분위기를 풍겼는데 어떤 한 문장 때문에 이후에 이어진 이야기에서 내내 긴장이 가슴 부근을 맴돈다는 게 신기했다. 다들 마법사여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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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갖고 싶어 하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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