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20211002-03_보고 생각하고 걷고 먹고 말하고 본문










언어는 정교한 도구다. 하지만 부지런한 관심이 없으면 그 어떤 것보다도 뭉툭하게 사용되기 십상이다. 개개인의 다름이 묘사되지 못하고 몇몇 카테고리 안에 폭력적으로 속하게 되는 건 그런 이유에서인지도 모르겠다. <랜덤 다이버시티 :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는 뇌파 측정에서 비롯된 '감정의 색'으로 그런 언어의 한계를 극복해보려는 시도다. 천영환 작가는 세상의 다양성을 마주하려면 자신이 가진 기준을 재정의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미 보편적인 이름과 인식을 지닌 색이 아닌 '감정 데이터'를 통해 색을 다시 바라보고자 했던 것이다.
VR 기기를 쓰고 뇌파 측정을 위해 띄워지는 색들을 응시한 후에 내가 준비해간 자유의 순간을 담은 사진을 바라봤다. 나의 자유는 보랏빛이었다. 애들이랑 1도 관련 없는 사진이었는데 보라색 나온 건 아무래도 운명인 것 같으니까 엘에이 콘 보내조라, ... (? ㅋㅋㅋㅋ 작년에 성수해서 했던 같은 전시에 갔었지만 그땐 실험 참여 신청에 광탈해 성공한 친구가 실험에 참여하는 동안 옆에 있던 벤엔제리스 매장에서 바닐라색의 민트초코 아이스크림만 한 스쿱 먹고 돌아와야 했다. 이번 전시는 하는 줄로 모르고 있었는데 팀 멤버가 알려준 덕에 다녀올 수 있었다.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최근 수업 시간에 원로 작가들이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건 그들이 어떤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지 증명해보였기 때문이라는 맥락의 이야기를 들었다. 업계나 시장이 지금 반짝이는 신예들을 원로보다 우선순위에 두기 어려운 건 그래서일지 모른다고.
이번 전시 설명 중에서 '2000년 이후 강렬하고 선명한 색감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급진적인 시도는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하던 그가 새로운 디지털 문명을 대면하며 느낀 공포심과 무관하지 않다. (중략) 이는 스스로 작업 중단까지 고려하기에 충분한 배경이 되었는데, 그 끝에서 작가가 찾은 돌파구는 다시금 색이었다'라는 부분을 반복해서 읽었다. 생각지 못한 변화는 누구에게나 두렵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 속에서 치열한 고민 끝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더불어 호크니의 아이패드 작품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갤러리에 놓인 모든 작품의 제목은 '묘법'이었고 이는 'Ecriture'로 번역돼 있었다. 프랑스어 '에크리튀르'는 '쓰기, 쓰여진 것'이란 의미이면서 '말과 글의 현전성 결여'라는 개념도 지닌다고 한다. 앞서 본 <랜덤 다이버시티> 전시가 떠오르기도 했다. 천영환 작가가 언어의 한계를 색에서 찾았던 것처럼, 이 거장도 언어의 한계를 표현 기법과 색으로 뛰어넘고자 했던 게 아닐까 싶어서. 전시 설명 중 '연필 묘법이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비우고 수신하는 과정에 중점을 두었다면, 색채 묘법은 손의 흔적을 강조하는 대신 일정한 간격의 고랑으로 형태를 만들고 풍성한 색감을 강조하여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작가의 대표 연작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부분이 내게는 그렇게 읽혔다.




김현식 작가가 레진으로 쌓아올린 레이어는 정말 들어갈 수 있는 '세계' 같았다.




마흔여덟 번째 뜨생 집결지였던 새로 생긴 카페는 인테리어 컨셉을 제외한 모든 게 별로였다. 카페의 본질은 커피인데. 다시 가지 않겠군, 하고 생각했다.

















작년 이맘때쯤 뜨생 친구들과 왔던 선유도 공원을 또 뜨생 친구들과 산책했다.

겨우 조끼 하나 더 입었을 뿐인데 너모 더웠고, ...




전시를 보러 가기 전에는 잠깐 시간이 나서 향수도 사고 샴푸도 사고 맥코트도 사고 니트도 샀다. 그러고는 깜짝 놀랐다. 허겁지겁 돈을 쓴 느낌이라서. 약간 미친 사람 같았다,고 생각했다.
유화 작품만 있는 전시는 오랜만이라 좋았고 <땅과 바다의 경계 너머>는 여행지에서 숙소에 들어가 처음 뷰를 확인하는 순간의 느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름다움 외에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겠었고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아서 빨리 나가고 싶었다. 그냥 이날 마음이 가난해서 그랬던 걸 수도 있다. 사실 작품은 아름다움만으로도 그 존재 이유를 다한 것일지도 모르는데. 어렵네.
그나저나 얼마 전에 본 <연애의 온도>에서는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전시에 활용했고 여기서는 지니와 콜라보를 했더라고. 전시에서 청각적인 요소를 이용하는 게 자주 눈에 띈다. 그런데 그런 게 있으면 입구에서 좀 먼저 알려줬으면 좋겠다. 전시 정보 열심히 찾고 가는 편이 아니라서 일단 핸드폰만 빼고 보관함에 다 넣어놓고 시작한단 말이에요, ...

두밧두. 귀여워. 노래도 너무 좋지. 그리고 태태가 위버스에서 내준 '보라색' 과제에는 이렇게 답을 썼다.
/너와 내가 '우리'일 수 있는 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