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생활 49

전시가 끝나고 언제 그림을 찾으러 오겠느냐는 연락을 받고는 갤러리에서 새로 하는 전시도 볼 겸 뜨생이 있는 날로 방문 일정을 잡았었다. 그리고 오늘. 톰 안홀트는 1987년생의 젊은 영국 작가였다. 이번 개인전 <낙화>는 팬데믹 시기의 '고립'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작가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그 가운데서 당면하게 되는 감정들을 캔버스에 옮겼다고 한다. 특히 '사랑'을 할 때의 감정 스펙트럼에 집중한 작품들이 갤러리를 채우고 있었는데, 일부는 호접지몽과 같은 상황을 표현하고 있기도 했다. 마침 이번 뜨생에서 주로 다룰 것이 초현실주의라 그런지 작가의 작품도 초현실주의와 무관하지 않게 읽혔다.
발제의 베이스가 된 《발칙한 현대미술사》에서 짚어준 초현실주의 작품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꿈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꿈이 됨, 다양한 상징과 어색한 조합, 기묘한 해프닝에서 비롯된 기묘한 결과, 섬뜩한 장소와 신비로운 여정'. 다만, 초현실주의를 정의하고 빌드업한 앙드레 브르통이 '자동 연상 기법'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모든 의식적인 행위를 배제한 상태에서의 작품 활동을 해당 사조의 특징으로 정의한 바 있어 이 부분에 있어서는 톰 안홀트의 작품을 초현실주의의 맥락으로 읽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초현실주의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등장했다는 점, 사람들의 무의식에 잠재된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을 표현했다는 지점에 있어서는 격변하는 팬데믹 시기 고립의 상황에서 '사랑'의 민낯들을 표현한 그의 작품이 초현실주의와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싶었다.
전시는 <낙화1>로 시작해 <낙화2>로 끝이 났다. 해당 작품들에 있는 요철은 꼭 마음 혹은 관계의 롤러코스터를 형상화한 바람 같았고 그 끝에는 낙화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인물들의 표정에서 감정이 읽히는 게 재미있었고, 작품 제목을 보고 다시 한 번 인물들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그 즐거움이 배가 됐다. 특히 <구애> 앞에서는 마스크 속에서 푸핫, 하고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저렇게 우물쭈물한 표정이라니!

드디어 나의 손에 쥐어진 작가님의 그림.

사람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많았고, 위드 코로나의 시작인가 싶었다.

현대미술사 중에서도 '초현실주의' 파트를 발제의 주제로 삼은 건 DDP의 <달리>전, 예당 한가람미술관의 <초현실주의의 거장들>전 등 국내의 규모 있는 미술관들에서 초현실주의 전시를 기획한 배경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도 내년 1월까지 <SURREALISM BEYOND BORDERS>전이 진행되고 종료 후에는 영국 테이트 모던으로 옮겨가 8월까지 전시를 이어간다는 기사도 접한 터였다. 이것 역시 초현실주의가 세계적인 큰 어려움을 겪고 이전과는 다른 세계로 넘어가야 하는 격변기에 등장했다는 지점을 고려하면 오늘날의 우리 역시 그러한 과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이러한 상징적인 전시들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