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많은 것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날 본문
어제 그림도시에서 데려온 책 중 하나. 아니 어쩜 이렇게 글을 찰지고 재미지게 쓸 수 있지. 지하철에서 읽으면서 내내 실실 웃었다.
사진에 다 담기지 않는 사진들을 찍었다. 피사체들의 외연과 내연 그 어디에도 그냥,은 존재하지 않았다.
작품들을 조금 더 잘 읽어내고 싶어서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전 곳곳에 있던 표현들을 채집했다.
- 사진의 회화적 감성과 가능성 실험
- 현대 문명을 예술로 기록하려는 열망
- 기존 사진의 틀을 벗어나 우리 삶의 실체를 드러내는 예술로서의 사진을 창조하려
- 실제보다 더 사실적인
누구나 카메라를 갖게 되면서 언뜻 사진에 있어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가 흐려진 듯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명백한 경계가 존재한다. 예술사회학에 관심이 치우쳐 있는 나는 그것이 화두의 존재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티스트라는 건 일상의 무엇에서든 생각을 피어올릴 수 있고 자신만의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인 게 아닐까. 그러고는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보편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굳이? 왜? 이렇게까지?의 물음을 던지게 만드는 작업을 해내고야 마는 사람들.
work hard. have fun. make history. 이것만큼 자본주의를 명료하게 표현한 캐치프레이즈가 또 있을까. 아마존 물류 창고에서는 자본주의의 달콤한 역설을 엿본 듯한 기분에 한참 그 앞을 떠나지 못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전광판을 담은 사진의 설명판에는 '새로운 세계지도'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렇다면 비행기가 정기적으로 닿지 않는 지역들은 오늩날의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장소가 되어버리는 것일까.
저작권이 철물점에 넘어간 '바우하우스'는 기묘했다. 마치라잌 하이라이트가 된 Bㅣ스트,...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들.
AS GURSKY,
그런데 하마터면 이 전시를 보지 못할 뻔했다. 사실 후반부는 잘못 계산한 약속 시간에 쫓겨 제대로 보지 못하기도 했고. 이번 주는 진짜 이상한 주였다. 출근, 예약 등 명확한 일정이 예정돼 있는데도 알람 소리를 못 듣거나 끄고 더 자는 일은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일인데 이번 주에만 오늘이 벌써 세 번째였다. 사무실에서도 졸음을 참기가 어려워 자꾸 난처해졌었고. 이게 바로 코로나 후유증 같은 건가, 체력 후퇴 뭐 그런 거.
전시를 보다가 문득 지금 출발해도 친구와의 약속 시간에 제때 도착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망했다 싶은 마음으로 30분을 미뤘다. 그렇다면 전시장 입장 자체도 예약 시간보다 한 시간이 늦은 셈이었다. 어쩐지 예약 리스트에 없더라고, ... 다행히 엄격한 코로나 시국이 아니라서 현장 발권을 할 수 있었다. 더 어이가 없었던 건 이걸 깨닫고 다시 예약 내역을 확인해 보니 날짜도 지난주 토요일로 걸어놨더라고. 나도 모르는 새에 노쇼 인간 되었고, ... 모든 게 틀린 일정을 들고 가서 예약을 했다고 말한 게 부끄러워졌다. 많은 것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날이었네. 지하철에서 책 보면서 재미있다고 실실댈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도 이런 거 하고 싶다. 공간 만들어서 소장한 작품들 상설전 하고 좋아하는 작가님들 기획전도 하고, ... 결국 제일 필요한 건 돈이라서 가끔은 다 때려치우고 돈을 벌 궁리나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현타쓰. 얼마 전에 아렘도 바젤 팟캐스트인가에서 이런 얘기 했던데. 걔는 정말 하겠지. 나는 할 수 있을까. 작품도 맨날 카드사의 힘을 빌려서 쟈근 것들만 겨우겨우 사고 있는데. 나도 큰 것도 사고 싶고, ... 특히 서세옥 작가님이랑 박래현 작가님 작품, ... <루시퍼>의 루시퍼가 'What is it you truly desire?' 하고 묻는다면 나만의 테마가 있는 컬렉션을 구축한 예술 애호가가 되는 거라고 답해야지. 근데 되는 일인가,...
특정 컬렉터의 수집품으로 진행된 전시는 이번이 두 번째인데(아닌가, ... 리움까지 셋으로 쳐야 하나, ... 그래도 리움과 국현미는 같은 컬렉터였으니 하나로 치는 게 맞나, ... 혼란) 이번에는 컬렉터의 코멘트가 함께 있어서 전시가 조금 더 흥미로웠다. 사실 제일 흥미로웠던 건 전시 출구 직전에 있던 '두려움'과 '사랑' 사이에 놓였던 단어들이었지. 뭔가 2000년대 초반 인소 갬성. 작가들의 문장을 곳곳에 배치한 것이 전시 타이틀과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타이틀 폰트도 처음엔 좀 과한가 싶었는데 컬렉터님 갬성이랑 너무 찰떡이라 좀 킹받음.
김상유 작가님 작품들이 정말 귀여웠다. 시리즈 작품들은 정말 작가가 해당 주제에 진심인 것 같다는 생각에 더 눈길이 간다. 암자에 눈을 감고 가부좌로 앉아 있는 이가 내게는 스님처럼 보이기보다는 한량의 기질이 다분한 사회인처럼 보였다. 산 곳곳의 암자들을 찾아다니며 명상을 하는 게 취미인 그런 아조씨. 현실과 취미의 괴리에 한참 진통을 겪고 쌓아나간 시간 속에서 그 틈을 선으로 만들어 대체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 사람. 음. 내가 갖고 싶은 모습이기도 해서 한쪽 벽 가득 걸려 있는 작가의 작품들에 탄성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그 문구 캐릭터 중에 '아자씨AZASSI'가 떠오르기도 했다.
1992년에 개관해 30년 동안 한 명의 화가로 이렇게 다채로운 전시를 기획했다는 데서 호들갑 버튼이 눌렸다. 작가가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쌓아놓은 이야기와 생각이 명징해야, 또 이를 기록으로 남겨 온전히 보존해야 가능한 일일 테다. 정말이지, 아카이빙과 헤리티지가 다다. 그런 면에서 작가님도 작가님이지만 김향안 선생님 진짜 너무 최고시고,...
기획과 관련한 버튼이 눌리자 첫 회사에서 편집장님이 반복해서 강조했던 말로 생각이 연결됐다. "재희야, 글 쓰는 건 기본, 그건 기본이야. 네가 당연히 잘해야 하는 거. 거기에 기획을 잘하는 에디터여야 오래 일하면서 연봉도 잘 올릴 수 있어."
그땐 기획이 마냥 어렵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아서 낙담하는 날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지레 겁을 먹기도 했고 뭘 해보고 싶은지 나조차 모르기도 했다. 스스로 제한을 두며 좁은 시야를 유지했던 탓이기도 했던 것 같고.
기획이 본질적으론 '해보고 싶은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나 자신을 좀 더 세세히 알아가려는 시도들이 시간과 함께 쌓였고, 거기에 더해 하고 싶은 걸 어떻게 구현해볼 수 있을지도 조금씩 감을 익혀 나갔다. 그런 과정을 거쳐 기획은 꽤 좋아하는 업무 중 하나가 됐다. 물론 여전히 어렵고 지난해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자주 머리를 헝클어뜨리지만.
<무제>(1969)는 네 귀퉁이를 으영차, 하고 잡아당겨 파앗- 펼쳐지고 있는 천막을 안에서 올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9-I-70 #140>(1970)는 캔버스 앞뒤가 다른 게 정말 충격적이라 앞뒤를 빙빙 돌며 감탄했다. '밤새 작업하던 작품 지우고 문지르거나 고치는 일', '화면의 조형성과 색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 놓인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미간이 한껏 좁혀졌다. 자신과 싸워야 했던 밤의 시간에 마음이 닿아서. <에어 앤 사운드 I 2-X-73 #321>(1973)는 오늘의 원픽. 캔버스를 가늘게 가로지르는 틈을 사이에 둔 미묘한 어긋남이 좋았다. 다시 만난 <성심>은 파앗, 하고 터지는 움직임으로 다가왔다. 이번 전시는 파앗-으로 시작해 파앗,으로 끝났네. 하핫.
덕메의 생일선물로 도착한 붕경과 집 잘 찾아온 최애 포카. 그런데 오늘도 덕메와 멀뚱히 눈만 보고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 고민이 깊어진다. 나만 얘기하는 거 싫어서 내가 입을 다물면 침묵이 깨지지 않는다. 무슨 애길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더는. 침묵이 불편하고 편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할 얘기가 없으면 왜 만나지?의 의문이 생기는 새럼이라서 그렇다. 대단한 얘기나 토론을 하자는 게 아니고 정말 그냥 일상적인 것들 있잖아. 어제 이걸 봤어, 택배가 왔는데 어땠어. 뭐 그런 것들. 이게 이렇게 어렵고 고민까지 해야 될 일인가 싶어서 또 머리가 아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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