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그 어디에도 갑자기 튀어나온 나는 없고, 나는 진짜 엄청 나였다. 본문
며칠 전에는 듣기 싫은 소리를 듣는 게 싫어서 문을 소리 나게 닫았더니 지 열받는다고 뺨과 머리를 세 대나 때렸다. 지난 내 생일 때는 때리는 걸로도 모자라 의자를 들고 설치더니 또 지랄이네. 나도 욱할 줄 알고 욕도 할 줄 알고 때리고 집어 던질 줄도 안다. 나도 많이 참고 있고 내가 안 참았으면 저새끼 얼굴은 진작에 뭉개졌을 거다. 또 이러면 진짜 가정폭력으로 신고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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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상담 시간에 이어서 이번에도 엄마에게 많이 혼났던 3, 4학년 때의 상황을 복기해 보는 상담 시간을 가졌다. 나는 늘 주눅들어 있었고 엄마와 어떤 상황으로 마주치게 될지 알 수 없어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때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뜻밖에 이런 답을 내놓았다.
"너는 가치 없는 사람이 아니야. 너의 쓸모를, 가치를 입증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혼자 알아서 일어나 밥 챙겨 먹고 학교를 갔던 어린이였던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엄마가 불편해서 오히려 그게 편했던 것도 있고 컴퓨터 수업이 재미있어서 별 생각이 없었기도 하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니까 엄마가 다른 아줌마들이나 할머니, 고모들한테 아휴, 얘는 아침에 저보다 일찍 일어나서 알아서 밥도 챙겨 먹고 컴퓨터 수업도 들으러 가요, 하고 자랑하듯 얘기하던 게 좋아서 그런 나,를 유지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데 생각이 닿았다.
정말이지 갑자기 튀어나온 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진짜 엄청 나였네.
부모 둘 다 회사를 다녔음에도 엄마 남편에 대한 기억이 더 없는 건 그냥 나에게 했던 게 재수가 없어서 내가 기억에서 치워버린 게 아닐까. 엄마한테 혼나고 있으면 애 그만 혼내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가 집이 시끄럽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한 얘기 중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건 6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 진짜 온갖 발표란 발표는 나서서 할 만큼 책이랑 인터넷에서 자료 찾고 ppt 뽐낼 시기였는데, 요즘 똑똑한 애들은 영어 사이트에서 영어 자료 찾아서 하더라는 개같은 소리를 했었다, 나한테.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였나는 자기 회사 사람의 중3 아들을 들먹이면서 걔는 맨날 공부도 안 하고 놀더니 어느 날 갑자기 필요한 자료를 갖춰서는 유학 보내 달라 그러더라고, 그렇게 똑똑한 애들이 있다는 식의 얘기도 했었다. 개새끼. 돌이켜보니 졸라 비교 쩔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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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필라테스 진짜 너무 힘들었고 선생님은 마지막 운동 대신 근막이완을 하자며 폼롤러를 나눠 주셨다. 근막이완은 선생님이 경고했던 것처럼 힘들진 않았지만 아팠다. 옆에 계시던 분이 특히 힘들어하셨는데 그분은 선생님이 다음 이완 동작을 설명하며 아파요, 하고 덧붙인 말에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 더 아플 거라고요." 선생님의 말에는 한 치의 거짓이 없었다. 그리고 이 선생님은 내가 아는 필라테스 선생님 중 가장 숫자를 느리게 세신다. 수업이 끝나고는 꼭 한 명씩 붙잡고 모두에게 뒤통수 마사지를 해주시며 짧게 자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오늘은 목요일에도 오냐는 말을 하시기에 티켓팅을 해야 해서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 말하면서도 아쉬웠네. 선생님 수업 진짜 힘든데 진짜 개운하다. 그리고 자세 엄창 꼼꼼하게 봐주셔서 운동 더 제대로 한 너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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