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조금 녹으니까 더 달고 말랑하네 본문
블랙 코미디가 주는 통쾌함의 끝맛은 씁쓸함일 테다. 농담인 듯한 어조로 진실을 꼬집으니까. 전시 서문에서는 이러한 블랙 코미디의 시초를 셰익스피어의 희비극에서 찾으며 극 속의 고통은 기적적인 반전으로 극복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잘 모르겠다. 믿고 싶은 것과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좀 다르지.
회화와 조형물, 실제 기물까지 온갖 곳에 CCTV를 놓고는 주로 소외의 영역에서 언급되는 이들을 그것의 사각지대에 놓은 구성에 속으로 이마를 퍽퍽 쳤다. 전시의 제목에도 쓰인 농담은 블랙 코미디에 더해 '미안. (사실 안 미안!) 농담이었어'의 맥락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상처 입히고는 뻔뻔한 얼굴로 던지는 헛소리.
그런데 갤러리 입구에 쟈근 벌집이 있어서 전시 타이틀 폰트처럼 잔잔하게 후들거리며 입장했다. 낄낄.
타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그 마음을 헤아려보는 사람을,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그려내는 창작자를 좋아하지 않는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아마 5~6년 전 인스타그램에서 작가님의 작품을 우연히 본 게 덕통사고의 현장이었을 테다. 과즙 가득한 느낌의 다채로운 색을 섞고, 명랑하면서도 긴한 글을 쓰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사람들의 말을 채집해 자신의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사람. 그래서 나는 계속 작가님의 세계를 궁금해하며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미 마음을 빼앗긴 덕후는 힘이 없지.
기다리던 작가님의 첫 책 <당신을 그리는 시간>이 출간됐을 때 정말 기뻤고, <풍선에 바람이 자꾸 빠져요>를 읽으면서는 '어떻게 이런 기획을 하셨지. 진짜 천재만재억재다. 올해 만난 책 중에 최고다 진짜' 하며 내내 감탄했다. <피넛버터젤리>는 아직 책장에 모셔만 두고 있지만, 분명 좋겠지. 중간중간 해바라기오렌지에서 작가님의 굿즈들을 야곰야곰 나의 일상으로 데려 오기도 했다.
그래서 작가님의 첫 개인전 소식을 접했을 때는 와. 아니 너무 감격이더라고. 드디어. 드디어 작가님의 작품으로 가득한 공간을 마주할 수 있다니. 심지어 전시 타이틀은 <People Say...>. 진짜 너무 완벽해, 하고 생각했다. 퇴근 후 전시 공간을 찾아가는 일은 보장된 행복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었다.
작품들을 보면서는 또 생각했다. 색으로 숨을 쉬는 게 이런 느낌일까. 눈으로 질감을 좇으며 색색의 숨을 들이마시면 이내 균형잡힌 영향소의 말들이 마음에 담겼다. 전시 서문에 있던 작가님의 말이 너무 좋아서 여기에 옮겨 적어 둔다. "우리는 아직 서로 멀리에 있지만 예술은 망연하게 펼쳐져 있는 존재들을 바짝 당겨올 수 있다."
퇴근길에 급하게 허기를 때우려 단백질볼을 사 먹다가 생각했다. 조금 녹으니까 더 달고 말랑하네.
'DAILY 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HBD TO ME (0) | 2024.06.27 |
---|---|
240625_선예도 맨날 이렇게 자리가 없으면 어쩌라는 거야, 진짜 (0) | 2024.06.26 |
나를 살리는 건 아쉬움 없는 잠이다 (0) | 2024.06.16 |
점심에 샌드위치를 먹으면 저녁에 몸이 가뿐하다 (0) | 2024.06.13 |
산더미 같은 인생 (0) | 2024.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