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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동

KNACKHEE 2016. 1. 2. 16:15

 

*

무척 오랜만에 민지를 만났다. 만날 장소만 정했지 어디서 무얼 먹을지는 해둔 생각이 없어 스마트폰을 활용했다. 그리고는 검색해 목적지로 정한 이탈리안 음식점을 찾아가는 길에 곤드레 밥을 파는 음식점을 발견해 그곳으로 우회했다. 민지는 오늘 왠지 계동 길에서도 생각지 못한 것을 발견할 것 같은 기대가 든다고 했다. 야들야들한 두부가 함께 나오는 만드레 정식은 무척 건강하고 흡족한 맛이었다. 계산을 하며 디저트로 널 뜯어먹겠다고 하니 민지는 어디 얼마나 뜯어먹는지 보자,는 말로 응했다. 멋진 여자.

 

 

 

무작정 계동 길을 오르다 잡지에서 보던 익숙한 외관을 발견했다. 어, 설마! 하고 들어가니 내가 생각한 그곳이 맞았다. 목욕탕과 조명과 고급 안경의 조화라니. 우리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쩐지 분위기에 압도돼 안경을 만져볼 생각도 못 하다가 이 층에 가서는 이건 꼭 써봐야돼! 하곤 나란히 착용 후 사진을 찍었다. 그 뒤론 어쩐지 자신감이 생겨 이것저것을 써봤다. 민지가 앉아보라고 지정해준 곳에 먼지가 쌓여 앉지는 못하고 고민 끝에 저런 고전적인 포즈를 취했다. 신 나는 곳이었다.

 

 

우리는 강렬한 기호의 파스타 집을 발견하곤 무척 즐거워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목적했던 책방무사의 문은 닫혀 있었다. 인스타를 미리 확인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는 길이 즐거워서 상심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 노란벽 작업실에서 각자에게 써 줄 엽서를 샀다. 민지가 모빌을 만지작거리며 집에 모빌을 걸어둔다고 말해줘서 신년 선물을 고르기가 수월했다. 맞은편에 있는 카페에 앉아 서로에게 엽서를 썼다. 우린 작은 카페 정중앙 테이블에 앉아 사회 생활에서 관계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나는 마음을 잘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 나의 가장 큰 화두다. 이곳에서 민지의 집까지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창경궁을 따라 걷는 길은 무척 정갈했다. 바로 옆에 차들이 지나다니는 정신없는 차도와 유리된 시공간에 있는 느낌이었다. 사실 누군가를 만나서 무언가 특별히 하는 건 없다. 그저 조금 걷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민지는 엽서에 2016년 처음으로 한 외출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게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줘서 좋았다,고 써줬다. 나는 그런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만남을 무료해하지 않는 민지가 고마웠다.

 

 

 

*

 

아. 그래, 아. 아, 하고 내뱉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니. 이런 말을 문장으로 적을 수 있는 사람이라니. 정갈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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