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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삼일절의 광화문

KNACKHEE 2018. 3. 1. 19:27


뜨거운 생활의 열두 번째 모임을 삼일절의 부암동에서 하게 됐다. 태극기 부대를 간과하고. 남영에서 내려 버스를 탔더니 기사님이 어디까지 가냐고 묻더니 못 갈 수도 있는데 일단 타라고 사뭇 비장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그 비장함이 무색하게 두 정거장 만에 버스에서 강퇴당했고 돌아가는 길이 있겠지 싶어 택시를 탔다가 30분 만에 다시 남영역에 돌아왔다. 그때부터 조금 짜증이 났고 일단 종각으로 가서 광화문을 지나지 않는 버스를 타야지, 했는데 모든 길을 현 대통령이 빨갱이임을 외치는 태극기 부대가 점령하고 있었다. 시대를 찾지 못하고 오늘의 의미를 흐리는 국기들이 펄럭였다. 늙은 그들의 표정 역시 비장했다. 무언가 비밀 결사를 하고 모인 것만 같은. 그땐 솔직히 화가 나서 모임 장소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퉁명스런 목소리를 냈다.


태극기 물결을 뚫고 한 카페에 안착해 커피와 얼그레이 초콜릿 케이크를 흡입하자 마음이 안정돼 기분이 놀라울 정도로 풀어졌다. 잠시 후 카페에 온 둘을 나는 반갑게 맞이했다. 퇴사와 주변의 말들로 마음이 한껏 무너져 있던 탱이 오늘 내 기분까지 살피느라 울 정도의 마음이 돼버린 것도 모르고. 울음을 참던 탱은 결국 카페 테이블에 엎드려 엉엉 울었고 그 와중에도 내가 힘들게 왔으니 모임을 하고 가겠다는 걸 다 필요 없고 지금 네가 집에 가고 싶으면 가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기에 그러자,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탱을 보내고 밍과 박물관 안 여유 공간에 앉아 발제자였던 탱이 남기고 간 발제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다. 질문들에 각자의 답을 달아 톡방에 올리는 걸로 마무리하고 밍과도 헤어졌다. 모든 게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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