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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ERATURE

하늘을 날았다, 근사한 고요 속에서

KNACKHEE 2018. 10. 27. 03:24

아홉수를 앞두고 백수가 돼 떠나는 동유럽 여행_03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가는 봉고에 탄 여덟 명 모두, 한국인이었다. 센터에 도착하니 더 많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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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꺼내 볼 몰골은 아닐 것 같아서 사진/영상 옵션은 선택하지 않았다. 경비행기는 생각보다 높이 올라갔고 촬영 옵션을 선택한 사람들은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부터 카메라를 든 다이버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개인 캠 구도로 따라붙었다. 그걸 본 G는 작게 말했다. "개인 홈마가 생기면 저런 기분일까?"

무섭진 않았지만 조금 긴장한 상태였는데 다이버가 예고도 없이 몸을 날리는 바람에 갑작스레 상공에 던져졌다. 분명 경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잘생긴 직원이 교육 영상을 보여줬는데도 어깨끈을 잡았다 떼는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워 다이버가 시기에 맞춰 매번 손동작을 고쳐줘야 했다. 낙하 직후엔 바람이 얼굴을 너무 세게 쳐올려 숨쉬기가 어려웠다. 약간 수영장에서 물 먹는 기분 같기도. 그 단계가 지나고 낙하산이 펴지자 사위가 아주 고요해졌다. 꼭 잠수를 하는 것처럼, 정말 고요해서.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아무 소리 없이 저 아래 미니어처 크기로 보이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꼭 무성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작년 말엔 마음이 무척 힘들었다. 가해자는  다른 낙하산을 등에 업어 제대로 된 처벌을 피해가고 피해자들만 붕 떠버리는 결말을 마주해야 했던 그때가 사건의 한가운데 있을 때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즈음 tvN <꽃보다 청춘-위너 편>이 방영됐고 멤버들이 스카이다이빙 하는 편을 봤다. 와. 정말, 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대략의 여행 일정을 잡으면서 G에게 네가 내키지 않으면 그날은 따로 움직이자고 말했을 정도로  일정을 기대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통쾌가 아니라 뜻밖의 고요와 마주한 거다. 그래서 더, 근사했고.








카메라 렌즈 안쪽에 먼지가 들어간  같아 렌즈를 분리했다 다시 끼웠는데 화면만 켜지고 렌즈가 작동하지 않았다.  번을 다시 뺐다가 끼워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직장 동료이자 포토팀 사진 센세로 활약했던 H에게 도움을 청했다. H가 던져주는 여러 경우의  속에서 버튼을 누른 상태로 렌즈를 끼워 넣은  원인이었음을 알아냈다. 진짜 식겁했네.

멀미로 고생한 G를 숙소에서 쉬게 하고, 어제  노트를 들고나와 숙소 주변을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한국에서 밀리던 일기가 여기서도 밀리고 있어서 저녁 먹기 전까지 일기를  심산으로 카페를 찾았는데 당최 익숙한 형태의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coffee 또는 cafe라고 쓰여 있어도 음료나 디저트만 파는  아니라 레스토랑이나 펍을 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들어가기가 애매했다.  시간여를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다 'illy' 간판이 있는 레스토랑  카페에 들어갔다. 오늘도 조금 절박한 마음이 돼서. 직원은 아주 친절했는데 커피잔을 비우자마자 더 주문할 건지 물어보고는 잔을 치워줘서 조금 좌불안석이 됐다. 다른 테이블을 관찰하기도 했지만 그게  마셨으면 나가라는 뜻인지 보편적인 서비스인지 판별해내지 못했다.





S의 지인이 추천한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같은 숙소에 묵던 P도 동행했다. 사실 처음부터 그가  불편했다. 꼰대 느낌이 나서 그런가? 했는데, 같이 식사를 하고 예정에 없던 야경 투어를 하면서  불편함의 원인을 알았다. 자기가 아는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는. 선의이지만 그걸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 혹은 거절의 여부를 묻지 않는 선의. 식당에서 나와 강을 보러 가자는 말이 그렇게 긴긴 산책을 하자는 말인 줄은 미처 몰랐지. P는 자신이 어제 참여했던 투어의 코스를 그대로 밟으며 가이드에게 들은 지식을 기억나는 대로 모두 말하기 시작했다. 나와 달리 P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던 G는 자고 일어나 회복된 체력으로  야경 투어에 참여했고, 이미 온종일 걸어 다니며 '오늘의 나'를  써버린 S와 나는 '내일의 나'를 끌어다 써야 했다.

S는 나이 차가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를 잘 맞춰줬다. 학생회 분위기를 물씬 풍기기에 물어보니, 정말 학생회 출신이었다. P는 건축 일을 하다 퇴사를 하고 이틀인가 만에 비행기 표를 끊어서 왔다고 했다. S가 여자친구와 얼마나 만났느냐 물었는데 잘못 알아들은 건지 여자친구가 자신보다 아홉 살이 어리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장거리 연애를 한다기에 최소 서울-부산 정도를 예상했는데 서울-부천이라고 해서 부천러인 G와 인천러인 나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네? 장거리 연애요?


오늘은 어제보다  시간 늦게 일어났지만 여전히 시차 적응엔 실패했다.  김에  괜찮은 헝가리 에어비앤비를 저렴하게 예약했다던 S의 말이 떠올라 사이트에 들어갔다. 위치도 청결도 가격도 좋은 곳을 발견했고 G의 동의하에 기존 숙소 예약을 취소했다. 무료 취소 기간 세이프. 덕분에 헝가리에서의 숙박비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서 기회를 엿봐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사볼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아마 찾지 못해 생각에 그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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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