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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눴다, 포장 없이 본문
아홉수를 앞두고 백수가 돼 떠나는 동유럽 여행_04
S에게 주고 싶어 연한 분홍색 장미 한 송이를 샀다. 하루분 정도의 휴대용 물통도, 리본 장식도 없이 종이 포장지에 둘둘 말아줬다. 거창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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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교회들은 전부 숙소에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곳에 있었다. 현지교회에 가보고 싶기도 해서 근방 교회를 찾았지만 가톨릭교회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숙소에서 십오 분 거리에 있는 선교교회를 발견해 두 시 예배를 염두에 두고 오전 쇼핑에 나섰다. 주일을 예배가 아닌 다른 일정으로 시작하는 게 처음이라 어색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벼르던 뜨르들로(TRDLO)도 사 먹었는데 아이스크림 옵션을 선택했더니 포장지 사이로 빵의 열기에 녹은 아이스크림이 흘러서 벤치에 정착해야만 했다. 그 뒤로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뜨르들로를 든 사람들을 유심히 보게 됐는데 아무래도 좀 별로인 곳에서 사 먹어 발생한 참사였던 것 같다. 아이스크림을 밑바닥까지 꽉꽉 채워줘서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자 이미 배가 불러 빵은 반을 겨우 먹었다. 뜻밖의 이른 점심.
두리번거리고 딴짓하며 걷기 대마왕이라 예배까지 넉넉할 줄 알았던 시간이 조금 촉박해졌다. G의 쇼핑 짐을 숙소에 가는 S에게 부탁하고 숙소 옆 동산을 가로질러 부지런히 걸었다. 준비 찬양을 할 때까지만 해도 문제가 없었는데 광고 영상이 나오는 순간 쎄-한 느낌이 왼쪽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반복해서 나오는 단어를 검색해 보니 다락방교회인듯했다. 프라하 시내에 한인교회는 하나도 없는데 이단교회가 있다니. 열 명도 안 되는 작은 규모였지만, 그래도. 적잖이 당황했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아 G에게까지 폐를 끼치게 돼 속상하고 눈치가 보였다. 바로 그곳을 나와 어제 방황하다 본 인스타 감성 가득한 카페에 들어가 각자 유투브로 예배 영상을 봤다. 지난 부산 여행 때 인상적인 메시지를 들었던 게 생각나 수영로교회 채널에 접속했다. 진실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 세상에 불순응 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빛이 빛 속에만 있으면 존재 가치가 없으므로 어둠에 들어가야 한다.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 다원주의 등이 스미는 것을 경계하면서. 특히 개인주의에서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라 '내 취향'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서 흠칫했다. 동시에 요즘 덕질과 함께 빠져 있는 'LOVE YOURSELF'나 'LOVE MYSELF'도 어떤 부분에선 경계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틀간 쉼 없이 걸었더니 허리에 무리가 가서 댄싱하우스까진 트램을 탈 생각으로 숙소에 가는 G와 헤어졌는데, 교통권을 사러 가다 보니 볕도 좋고 펼쳐진 풍경이 아늑하고 느긋해서 계속 걸었다. 구글맵의 시간에 맞추지 않고 내 속도대로 두리번대며 걷다가 공원에 앉아서 노래도 듣다가 하면서 쉬엄쉬엄 가니, 아무 문제도 없었다. 관련 전공자가 아니라서 댄싱하우스에는 무감했고, 이름이 있겠지만 이름 모를 다리를 왕복하며 본 프라하성과 카렐교의 풍경이 정말 좋았다. 해가 지는 시점이라 물의 표면 위에서 황금색 석양이 춤을 췄다. 두어 걸음 가다 멈춰 서서 바라보고 서너 걸음 걷다 멈춰 서서 감탄하기를 반복했다.
노을을 보려고 G와 비셰흐라드 전망대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강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에 자꾸 발목이 잡혀 예상 도착 시간보다 두 배나 더 걸렸다. 도착했을 땐 날이 흐려 이미 구름 속으로 해가 언제 져버렸는지도 모르게 들어간 후였다. 날이 추웠는데 의도치 않게 G를 오래 기다리게 한 꼴이 돼 버려서 또 미안해졌다. 온종일 미안하네.
숙소 스태프가 추천해준 버거집에 S도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진짜! 진짜! 맛있었다. 심지어 주문을 잘못 넣어서 셋 모두 라지 사이즈가 나왔는데 거기에 감자튀김, 300cc 맥주 두 잔을 더해도 한 사람당 22,000원 정도밖에 안 나왔다. 감탄. 코젤다크는 짭조름하니 맛있었고 탄산이 세지 않아 목넘김이 좋았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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