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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20230819_선선하고 아름다웠던

KNACKHEE 2023. 8. 21. 07:49


선선하고 아름다웠던 곳. 넓은 공간에서 큰 작품 보는 거 진짜 좋다.


클래식 음악의 고전인 비발디의 '사계'를 차용해 한국 근현대미술의 수작과 엮은 것도, 계절을 '조화, 자연, 향수, 순환' 등의 개념으로 확장해 전시 공간을 하나의 탄탄한 이야기로 묶은 것도, 이것을 감상자 각자의 '계절'로 마무리한 것도 흥미로웠다. 나무와 숲과 그 안을 거니는 이들 삼박자의 완벽한 조화.
그동안 이건희컬렉션을 중심에 둔 근현대 한국미술 전시를 여럿 봤지만 경기도미술관의 내러티브가 가장 아름다웠다. 작가군도 가장 다채로웠던 것 같은 너낌적인 너낌.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감상한 것은 박래현 작가님의 <시간의 회상>이었다. 촘촘한 제각각의 기록들, 비어 있는 틈, 그 안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이야기와 유효기간이 끝나버린 것들. 최근에는 끝나버린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겉보기에는 그냥저냥 이어오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꽤나 죽어버린 마음에 대해서.
오지호 작가님의 <여수향 풍경>은 가장 아름다운 기억 속 푸른빛을 한 화면 가득 모아 둔 것 같았다. 그러한 파랑 주위로 생활과 휴식과 여정이 모두 모여든 것 같은 느낌. 이 작품도 근처에 놓인 의자에 앉아 시간을 들여 바라보았다. 서늘한 색감의 천경자 작가님의 작품은 초면이라 <청춘의 문>은 멀리서부터 감탄하며 다가가 살폈다.
윤중식 작가님의 작품은 또 보자마자 웃음이 났지. 화면을 이렇게 턱턱 분할해내는 게 정말 재미있다. <작품>은 색감도 너무 취저. '그런데 왜 한 점밖에 없지?' 하고 아쉬워하다가 지난 성북구립미술관 회고전에서 생전에 작품을 흩트리지 않으려 애썼고 가능하면 판매도 지양하며 추후 개인 미술관에 보존되길 바랐다고 했던 것을 생각했다.
장욱진 작가님의 작품들은 보장된 행복이었고, 최종태 작가님의 <서 있는 사람>은 포즈가 너무 귀여워서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미쳤습니까, 휴먼?' 바로 떠올랐고요. 낄낄. 권옥연 작가님의 <날으는 새>는 보름달을 그려낸 색조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서정의 대표주자인 달에 정말이지 찰떡인 색감 아닌지. 이 작품을 보면서는 '너울너울'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경기도미술관은 곳곳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공간이었다. 출구에 자주 버려지는 리플릿 수거함을 비치해둔다든지, 점자를 병기해둔다든지 하는 식으로. 또 미술관 뒷문으로 나오면 반짝이는 화랑호수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너무 더워서 1초 사진 찍고 바로 다시 들어왔다. 하핫. 아, 그리고 덕분에 서해선을 타는 경험도 했다.
미술관 공간도 콘텐츠 구성도 외부 풍경도 무척이나 좋아서 '다음엔 연차를 내고 여기 와서 앉아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전시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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