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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예쁜이 둘

KNACKHEE 2016. 5. 1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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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하는 길에 넘으 집 빨래가 너무 정갈하게 그것도 볕을 받아 너무 소담스럽게 반짝이길래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카메라에 담았다.(카메라에 담았다, 라는 말을 쓰면서 잠시 머뭇거렸다. 핸드폰을 카메라로 지칭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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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랑 같이 가려던 것인데 K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 바람에 혼자 왔다. 미뤘다 다음에 같이 올 수도 있었겠지만 어째선지 평일에 다시 시간을 맞춰 보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고, 어차피 두 번 봐도 괜찮을 전시일 것 같으니 일단 마음 먹은 날 보자,는 생각이 컸다. 결과적으로 전시는 내게 무감(無感)했다. 마음이 전혀 일렁이지 않았다. 이럴 리 없어, 라는 생각에 마지막 전시실에서부터 처음 전시실까지 다시 한 번 관람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좀 더 색에 압도당하는 공간을 기대했는데 참 애써서 색을 맞춰놨구나,의 느낌이었다. 혼자 봐서 재미가 덜했을 수도 있다. 둘이 이런 저런 얘길 나누면서 보면 그래도 좀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빠른 관람을 마치고 서촌 쪽을 산책하다가 잡지가 보여서 서촌차고,라는 곳에 방문했다. 막걸리가 주종이어서 내게 한 잔 권했는데 천연 탄산이 함유된 막걸리는 썩 맛있었다. 잡지의 종류가 그렇게 많진 않았는데, 괜히 그냥 나가기가 뭐해서 팬톤을 다룬 비매거진을 샀다. 혹여 다음에 또 같은 전시를 보게 되면 좀 더 잘 이해해 볼 요량으로. 비매거진을 이렇게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인데 생각만큼 알찼고 생각보다 재밌었다. 꼭 바이오그래피의 브랜드 버전을 보는 느낌이었는데 바이오그래피보다 비매거진이 먼저 있던 것이니 반대로 생각하는 게 맞을 거다.

 

팬톤을 다룬 호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일본의 디자이너 오사나이 겐지의 인터뷰였다. 일본은 내게 장인정신, 자국의 개성 등의 이미지가 큰데 이 인터뷰에도 그런 것들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한국과 서양 쪽의 디자이너를 다룬 인터뷰에서 그들은 대체로 팬톤을 긍정적으로 인식했다. 색의 표준을 확립해 다른 문화간 그리고 다른 부서간 협업을 수월하게 했기 때문이다. 오사나이 겐지 역시 이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그는 서양이 더 선호하는 색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팬톤의 색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이게 뭐 별거인가,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무도 제기하지 않은 문제를 그가 제기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인데, 모든 것은 결국 콜롬버스의 달걀이 아닌가 싶다. 기록해두고 싶어 인터뷰의 일부를 옮긴다.

 

 

팬톤 매칭 시스템의 활용도가 앞으로 더 넓어질까요?

얼마 전 112색이 추가됐죠? 팬톤의 출신지가 미국이다보니 일본인이 선호하는 색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발색이 좋은 색은 많지만 무디고 둔하면서 아름다운 색은 찾아보기 힘들죠. 세계적인 기준이 되고 있는 존재인 만큼 더 다채롭고 사용하기 쉬운 색을 제공해주길 바랍니다.

 

'무디고 둔하면서 아름다운 색'이라 표현한 '둔색(鈍色)'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일본어로는 니비이로, 아오니비 등의 이름이 붙은 색상들로 '마른 색' 혹은 '나이가 든, 묵직한 색'이라고도 표현하는데요, 이런 채도가 낮고 조금은 둔탁한, 차분하고 운치있는 색에 대한 애정은 일찍부터 일본 문화에 뿌리내려 온 감성이죠. 채도가 강한 색만 늘어놓으면 당연히 눈이 피로할 수밖에 없고 어떤 색이 주색인지 혼란스러울 겁니다. 목표로 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효과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죠. 개인적으로는 주색을 뒷받침하면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하거나 전체적으로 차분한 인상을 주고 싶을 때 둔색 계열을 활용합니다. 단독으로 사용할 때보다 다른 색과 조화를 이루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하죠. 팬톤의 경우 방대한 양의 컬러 시스템을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단독으로도 아름다운 색이 우선시 될 테고 자연스럽게 주색을 뒷받침해주는 둔색 등은 선택지에서 조금 멀어지는지도 모르겠네요.

- 매거진 <B>, PANTONE, p74 일본 디자이너 오사나이 겐지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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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협찬 : M)

 

일 년 만에 그리고 이년여 만에 M과 S를 만났다. 숏컷을 한 S는 잘생겨져 있어서 자꾸 눈길이 갔다. 그리고 M은 쯔위의 분위기를 풍겨서 설렜다. 저번에 S찡이랑 갔다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한옥 피자집을 재방문했다. 피자 한 조각이 남았고 S는 음식 남기는 게 정말 싫다며 야무지게 포장을 요구했다. 식후 산책을 하다 대오서점 앞에서 어쩌지 어쩌지 머뭇 머뭇. 그치만 딱히 가고 싶은 건 아니에요, 라는 둘의 말에 일단은 좀 더 걷다가 한쪽 면이 통유리로 돼 있었고 테이블과 의자가 마치 전시장과 같이 배치돼 있어서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갔다. S가 키우고 있는 구피에 대해 얘기하고 페미니즘과 주변의 관계들 요즘 읽고 있는 책, 기타 등등에 대해 얘기했다. 오늘 데이트 코스의 마무리는 교보. 굳바이를 한없이 외치는 노래가 흘러나올 때까지 책 구경을 하고 잠깐 음반점에 들러 내 예쁜이들의 앨범을 자랑했다. 알차라. 나는 집에 가며 이 아이들에게도 분기에 한 번은 보자,고 했다. 아직은 서로의 시간이 많이 쌓이지 않아서 어색한 공기들이 스며들기도 하지만,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엔 편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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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싱그럽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 아이의 자존감과 열심과 밝은 에너지를 닮고 싶다. 수영아, 언니가 많이 좋아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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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한 이사야 말씀이 좋아서 이 역시 옮겨 적는다.

 

너희는 이것저것을 살피고 둘러보았다. 그러나 너희는 이 성읍을 너희에게 주셨던 분을 바라보지 않았다. 이 성읍에 관해 오래전부터 계획을 세우셨던 그분께는 단 한 번도 자문을 구하지 않았다. _ 이사야 22장 08절-11절 中(메시지 성경)

 

/오래전부터/라는 구절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그분은 오래전부터 그리고 쉬지 않고 내 서사를 써내려가고 계신다. 그 서사에 어울리는 좋은 인물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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