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월반 본문
다섯 살 때는 선교원에 다녔다. 하루는 다섯 살 반에서 수업을 듣는데 선생님이 따로 불러서 내일부터 여섯 살 반에서 수업을 듣자고 했다. 월반을 해서 친구 언니와 같은 반이 됐다. 친구랑도 친구를 하고 친구 언니와도 친구를 했다. 우리는 모두 친구. 다음 해에 들어갔던 유치원에서는 영어를 곧잘 해서 영어 시간마다 앞에 나가 무언가를 했다.
광주에 살았던 중학교 때는 국어는 그냥 잘 하는 과목이었고 영어는 늘 난제였고 과학과 수학은 잘 하고 싶은 과목이었다. 학원 선생님들이 예쁘게 봐준 덕분에 수학도 나만 따로 남아서 선행학습 겸 보충수업을 했고 과학은 무척이나 취약했던 물리 파트를 한 타임 더 들을 수 있게 해 주셨다.
다시 인천으로 와서 중3 때 다니던 종합학원은 반 이름을 해외 유명 대학으로 해 놨는데 나는 내가 다니던 학교의 전교 1등이 있다던 예일반으로 배치가 됐다. 호기롭게도 나는 어쩌면 내가 예일대에 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웃긴 건, 사실 나는 내가 무척 평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거다. 초등학교 때는 성적이 좀 좋다고 매번 불려다니며 봤던 수학 영재 시험지 앞에서 나는 매번 좌절했다.(한 번은 같이 갔던 우리반 애랑 나는 A를 모르고 너는 B를 모르니 우리 서로를 물심양면으로 돕자, 해서는 서로 컨닝을 하기도 했다. 아, 서로 1, 2등을 다투던 그 애랑 같은 반이었던 5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무척 무섭고 시크하면서도 세심한 분이셨는데, 반 아이들 모두를 앉혀 놓고 너희 중에 서울대 갈 놈은 한 명도 없다,고 하시기도 했다. 선견지명이 있는 분이셨다.) 광주에 있을 때 엄마 손에 붙잡혀 갔다가 내가 모자라서 발을 들이지 못한 영재 학원에서는 테스트를 보는 내내 부끄러웠다. 내가 풀어놓은 걸 보면 코웃음을 치겠구나, 싶어서.
주어진 것, 정해진 규칙 안에서는 노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영재가 되기 위해선 그 이상을 할 수 있어야 했다. 타고남으로써. 혹은 나를 둘러 싼 모든 것이 내게만 집중해 영재를 만들어 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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