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Bossanova,

무지개 본문

DAILY LOG

무지개

KNACKHEE 2016. 12. 2. 22:01

 

*

 

건물 전체가 갑자기 정전이 되는 바람에 세 시에 이른 퇴근을 하게 됐다. 디자이너님이랑 헤일리스 카페에서 2-5시에만 한정 판매하는 2롱고&디저트 세트를 먹으며 좋은 책은 어쨌든 사람들이 알아봐주는 것 같다는 얘길 나눴다. 세 시 반쯤 되자 디자이너님 코트가 무지개로 물들었다. 무지개는 점점 내 쪽으로 자리를 옮겨 오더니 네 시쯤 되자 모습을 감췄다.

 

 

 

*

약속 장소인 디큐브시티에 일찍 도착한 덕분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구경했다. 두어 개는 사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카드가 늘어선 곳에서 나는 너무 신명나서 슬쩍 흥 난 몸짓을 해보이기도 했다. 책은 오전에 잔뜩 주문했으니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핫트렉스로 가서 센세에게 줄 /이런 손길은 네가 처음이야/ 펜을 사고, K이 갖고 싶어 했으나 판매처가 묘연했던 모나미 꽃 볼펜을 발견해 그것도 샀다. 계산을 해주는 알바생이 무척 내 취향이었다. 영수증과 카드를 건네주며 씩 웃는 바람에 나는 또 태연한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 누나랑 햄버거 먹을래? 맥날 말고 수제버거 사 줄 수 있는데, ... 신도림 디큐브시티 교보/핫트렉스 알바생 LYJ 씨, 다음에 또 봐요!(그새 이름도 봄. 절레절레)

 

 

 

 

학교에 침입한 수상한 사람 때문에 곧 경찰서로 진술을 하러 가게 될 센세를 만나 띵크커피 말고 다른 곳에 도전했다. 이곳은 어쩐지 경리단길에 있는 그곳과 주인이 같은 것 같았다. 이름도 같고. 주문하자마자 화장실에 간 나는 센세가 진동벨을 받은 것도 모르고 돌아와서 우리가 주문한 메뉴가 들리기에 우리한테 받아가라고 말하는 줄 알고 픽업대로 달려갔다. 쟁반 위엔 케이크 없이 음료만 놓여 있었고 알바생은 나를 멀뚱하게 쳐다봤다. 곧 센세가 울리지도 않은 진동벨을 들고 왔고 알바생은 케이크는 자리로 가져다 드릴게요, 했다. 나는 좀 민망했지만 뭐 어때. 오늘 보고 안 볼 사이고 다시 봐도 기억도 못 할 사인데, 싶었다. 적당히 시끄러웠던 카페는 애들을 데리고 나타난 엄마 부대 때문에 아주, 무척, 매우 시끄러워졌다. 우리는 지난 번 B의 추천대로 여행지를 홍콩에서 대만으로 바꾸고 일정별 티켓 가격을 알아봤다. 둘 다 확신할 수 없어서 베스트인 일정을 봐 놓고 다음 주에 일정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마침 교보도 있으니 대만 여행 책도 보고 알바생도 한 번 더 볼 겸 해서 교보로 내려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벽에 있는 그림 두어 점을 떨어뜨렸다. 소리 때문에 이목이 집중됐고 그림 근처에서 소란을 피우던 아이들이 쫄아서 조용해졌다. 애들이 그 난리를 피워도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던 엄마들이 그제야 애들이 있던 쪽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한다는 소리가 /애들이 한 거 아냐/였다. 나를 째려보기도 했다. 아니, 째려보면 어쩔 건데. 그래도 다행인 건 그림이 애들한테 떨어지지 않은 거다. 솔직히 자리도 아닌데 거기 있던 애들 잘못도 있는데 만약에 그랬으면 엄마들은 나를 쥐잡듯이 잡았겠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나는 일부러 들으라고 /뭘 쳐다봐./ 하며 카페를 빠져 나왔다. 우리는 여행 코너 앞에서 /대만/이 없는 것에 당황하며 검색을 통해 대만이 타이완인 것을 알고 민망해했다. 서너 권을 뽑아서 대략적인 예산을 잡았다. 그리고 코스는 B에게 추천을 받는 걸로. 헤헷. 아, 안타깝게도 알바생은 퇴근을 했는지 볼 수 없었다.

 

 


'DAILY 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비한 동물 사전, 라라랜드  (0) 2016.12.09
그들이 노래하는 삶과 희망  (0) 2016.12.04
딱딱  (0) 2016.11.29
UE8  (0) 2016.11.27
봠&망원  (0) 2016.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