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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옮겨오는 기록들,

KNACKHEE 2023. 7. 15. 21:36

 

불가리 세르펜티 75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번 순회전은 일종의 아트 마케팅으로 볼 수 있을 테다. 그렇다면, 불가리는 이번 기획으로 무엇을 얻으려는 걸까.


세르펜티는 클레오파트라의 보석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이는 그 자체로 대담한 여성상을 반영한다. 불가리 세르펜티 75주년을 기념하는 캠페인 중 하나인 이번 전시는 마드리드, 런던, 뉴욕, 상하이, 서울 등 세계 여러 도시에서 선보이는 순회전이다.(서울 이후에는 밀라노, 도쿄, 베이징에서 전시가 이어질 예정) 도시마다 작가를 정해 세르펜티의 헤리티지와 시그니처 디자인 코드를 활용하는 커미션을 준 듯했다. 뱀은 신화에 기반을 두어 탄생, 재생, 힘, 부, 영원, 탈바꿈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신화보다 성경이 더 익숙한 내게는 좀 낯선 의미들이었다.


서울 전시를 구성하는 세 개의 전시관 중 마지막 K3는 마치 백화점 내의 브랜드관처럼 꾸며져 있었다. 앞서 K1, K2에서 기존 갤러리 형식의 전시를 본 후에 도달한 곳이어서인지 국중박에서 본 신라시대 장신구들이 떠오르며 유물 같기도, 또는 앞선 전시의 연장선으로의 조각품 같기도 했다.
한 기사에서는 이번 전시의 핵심을 이렇게' 표현했다. "the preservation of history and culture." 그렇다면 이 전시 역시 '전시'라는 형식으로 브랜드 헤리티지를 강화하는 동시에 스테디 제품의 이미지를 환기하려던 것일까. 역사를 내세우면서도 요즘의 감성에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 마치 설화수, 더 후 같은 한방 화장품들이 2030세대 셀러브리티를 광고 모델로 내세워 신뢰할 수 있으면서도 트렌디한 브랜드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함경아 작가님의 자수 회화 연작은 갤러리를 나와서도 그 잔상이 오래 남았다. 색감이나 역동적인 구조로 시각적 자극 자체가 강하기도 했지만, 더 강렬했던 건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이었다. 작가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이미지와 텍스트를 만들면 중간자가 이를 제3국을 경유해 북한의 자수 공예가들에게 전달해 작품을 완성하게 한다고 했다. 디자인과 공예로 시각화한 정치적 특수성이라니. 최재은 작가님의 작품들이 놓였던 공간은 어딘가에 그대로 옮겨 명상 프로그램을 열어줬으면 싶었고.
사실 이번 전시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전시장 바닥과 층층의 계단에까지 꼼꼼하게 깔아 둔 사프란 카펫이었다.

 

 

감상이 어려울 땐 자료 조각 모음 01|정상화(b. 1932)

면과 공간의 발견
"면과 공간을 알게 된 건 대학교 3, 4학년 때였다. 작업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파괴할 것과 제거할 것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 안 되는 것은 지우고 다시 한다. 그대로 두지 않는다. 지우고 다시 하는 과정에서 면과 공간이 생기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이는 화면에서 형상을 없애버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창조성의 발견
"작가는 자기 작품의 프로세스 안에서 새로움을 발견해야 한다. 또 그 발견을 확인해야 하고, 확인된 것을 시대성에 부합시켜보기도 해야 한다. 외부의 새로움은 바람같이 흘러가는 것이기에 위험하다. 작가와 외부 세계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이때 외부의 것을 인정은 하더라도 내 것으로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으려 한다. 창조성은 작가 내부에 있는 것이기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백색의 발견
"색이 내용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에 점점 억제해다 보니 백색으로 '돌아가게' 됐다. 캔버스라는 평면 뒤에 무한으로 확장되는 공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캔버스를 모두 색으로 메우지 않는 선택은 그러한 이유다. 그걸 메우면 전혀 다른 언어가 된다. 이런 식의 작업들이 백 마디 말보다 내 마음을 더 잘 대변해준다. 캔버스를 메운 백색은 색이면서 톤이다. 같은 색이지만 부분부분 색이 다르고 퀄리티도 다르다. 이것이 만들어지는 과정 전반을 봐야 한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발걸음을 붙잡고 생각을 머무르게 한다면 내 그림은 완전히 성공한 것이다."

추상적 생활의 발견
"생활 속에서 언젠가 본 사람을 통해 내 그림을 생각하게 된다면 그건 틀림없이 좋은 것이다. 추상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니겠나. 생활 속에서 그림을 생각하는 사람. 내 생활은 곳곳이 추상으로 이뤄져 있다. 그게 작가라고 생각한다. 작품에도 계획된 순서와 질서와 단계가 있다. 작가의 일이란 그런 것이다. 절대 단시간 내에 되지 않는다."

내 이야기의 발견
"작가는 이야기로 남을 설득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림을 통해서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 작가다. 들어내고 메우고,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작업을 한다. 높이가 드러나고 두께가 생기고 요철이 나오고 선이 보인다. 하얀 그림 속 면의 높이가 다 다르다. 그저 하얗게 변하는 게 아니라 무수한 백색이 춤추고 장난치며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짧게 말하자면, 그게 나의 이야기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의 발견
"요즘엔 여러 이유로 버려진 종이들을 활용해 작업한다.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버려진 것,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보는 데에서 작업이 시작된다. 이게 무척 중요하다. 색이 들어간 작품은 사실 사람들의 선호에 의해 작업한 경우가 많다. 커미션이 많이 들어와서 많이 그렸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런데 이건 또 나만이 할 수 있는 거다. 흰색을 내던 프로세스로 청색을 내니까. 그걸 또 누가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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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MMCA 작가화의 대화|정상화 작가 / MMCA Artist Talk|Chung Sanghwa"(2021.01)

 

 

 

 

와. 이런 시각적 즐거움이라니. 전시를 보는 내내 '발상'이라는 건 바로 이런 걸 지칭하는 단어구나, 하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배우인 카호 님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마치 책의 추천사 페이지와도 같았던 유명인사들의 코멘트 존에서는 양태오 님의 텍스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진정성 있으면서도 담백하고 뾰족한 문장들.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수작업을 중시하는 요시다 유니의 작업물은 마치 공예와 같은 모습으로 자신만의 철학적 사유와 시간을 담아 만들어집니다. 그녀의 작품은 동시대적인 관찰의 시선과 그에 상응하는 다양한 내러티브들을 기발하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비주얼 디렉터를 넘어 새로운 사고를 제안하는 예술가 본연의 역할까지 함께 보여주는 요시다 유니의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분들이 즐거움과 시선의 확장을 가져가실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_ 태오양 스튜디오 대표 양태오"

 

 

인서타에 먼저 적어 두고 옮겨오는 기록들. 전시 기록을 일기에서는 좀 분리해야 할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또 그걸 시작하자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 일기도 밀리고 있는 판에 그걸 언제 또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모르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