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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SUGA DAY, 본문
스티븐 해링턴의 세계에 덕통사고를 당한 건 지난여름의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 <APMA, CHAPTER FOUR>였다. 그때부터 내내 작품 속 멜로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스티븐 해링턴의 작품을 더 보고 싶었다. 전시를 보고 한 계절이 흐른 후에는 경복궁 옆의 회사 건물 로비에서 그의 조각 작품을 발견하기도 했다. 너무 반갑더라고.
그러다 지난 12월 3일, APMA의 전시 라인업 포스팅에서 스티븐 해링턴의 이름을 발견했다. 와. 그때부터 해외 밴드를 덕질하는 팬의 마음으로 그의 (작품의) 내한을 기다렸다. 작가는 SNS를 통해 자신이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작업해 나가고 있는지 계속해서 보여줬다. 콘텐츠가 풍부한 덕질은 지루할 틈이 없지.
그리고 오늘 마침내. 마침내! 와.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지만, 너무 신이 나서 전시장 안을 조금 뛰어다녔다. 아니 뭐가 이렇게 또 행복이야.
전시 공간에는 그의 초기 판화 작품도 함께 놓여 있었는데, 지금 회화 속 요소들이 곳곳에 담겨 있는 것을 보며 그 누구의 세계도 하루아침에 구축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그러다 마지막 전시실에 있던 그의 인터뷰에서 그의 관심사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느린 여정, 삶을 찬양하는 것, 작은 시작' 등에 있다는 이야기를 마주해서 조금 더 즐거워졌지.
그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부터 '색이 정말 선명한데 그게 또 엄청 쨍한 느낌은 아니네, 그래서 그런지 색도 요소도 많은데 어지럽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가 햇빛에 바랜 중간색을 주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햇빛과 가장 가까운 곳'인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것이 지금과 같은 컬러 팔레트 구축에 영향을 주었다고.
멜로를 작품 속 캐릭터이자 동시에 작품 자체에 관여하기도 하는 타자화된 요소로 설정한 것도 흥미로웠다. 이러한 설정을 바탕으로 똑같은 두 개의 작품을 나란히 놓고 한쪽에만 형광색으로 멜로의 흔적을 남겨 놓는 식의 작업 앞에서는 정말이지 소리를 지를 뻔했다. 와. 너무 즐거워. 조각 작품을 찍을 때는 어쩐지 멜로의 인생샷을 찍어주고 말겠다는 마음이 되기도 했다. 야자수의 모습을 한 룰루라는 캐릭터도 작품에 함께 등장하는데, 이는 작가가 환경에 두고 있는 관심과도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했다.
멜로를 애니메이션화 하면서는 모션 작업자와 함께 캐릭터의 걸음걸이부터 설정해야 했다고 이야기한 작업기도 즐거웠다. 이런 디테일들은 언제나 좋지. 작품 앞에서 멜로처럼 리듬감 있게 걸어가는 전시 숏폼 챌린지 유행했으면 좋겠다,... 휴. 앞으로 누가 최애 캐릭터 물으면 멜로랑 룰루라고 해야지. 흔들리는 현실을 딛고 서서 같이 흔들리면서도 사회적 이슈를 고민해 보려 하고 자신의 내면을 살피며 균형을 잡아 나가려 애쓰는 캐릭터를 어떻게 안 좋아해요. 흑흑.
작품에는 포털과 같은 시공간의 문이 있었고, 애니메이션 속 멜로는 이러한 포털을 직접 그려서 세계를 옮겨 다녔다. 이런 식이라면 멜로의 세계관은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을 테다. 재작년 김리아갤러리의 마중물아트마켓에서 본, 차원 이동 장치가 있던 김예지 작가님의 작품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연결되고 확장되는 세계관은 못 참지. 전시장 곳곳에 숨겨진 캐릭터들을 발견하는 일도 절거웠고.
2014년부터 명상적 행위로 해오던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건 팬데믹 시즌이라고 했다. 팬데믹 정말 뭘까. 일전에도 몇몇 작가들의 인터뷰에서 그 시기를 기점으로 사이드잡으로 해오던 작품 활동을 본업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팬데믹이 무척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삶의 방향성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계기가 되어 주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너무 즐거워서 전시장에서 살고 싶었다. 전시가 끝나기 전까지 두 번은 더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계속해서 좋은 걸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더 스마트한 방식으로."
아니 그런데 전시에서 이니스프리 광고 엄청 열심히 하고 있어서 조금 놀랐다. 하지만 사실 컬래버 제품 나왔다고 하자마자 텤마머니, 해버린 새럼 나야 나,...
미뉸기 생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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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예전에 쓴 글들을 꺼내 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매번 놀란다. 아니 저거 쓴 사람 어디 갔어. 누구야, 누가 이렇게 글을 잘 썼어! 웃기지만 진심이다. 지금의 나도 미래의 내가 놀랄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면 좋겠네. 그리고 특히 예전에 쓴 ㅍㅍ 볼 때 자주 이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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